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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킬러 플루’가 한국 사정 봐주나

백신과 치료제 확보 요원, 진단 기간도 늦어 … 보건당국 ‘총체적 부실’ 논란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킬러 플루’가 한국 사정 봐주나

‘킬러 플루’가 한국 사정 봐주나

신종 인플루엔자는 올겨울과 내년 봄이 더 문제다.

어린이날인 5월5일 이후 국내 언론은 “전 세계를 2주일 이상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A형 H1N1 인플루엔자(신종 인플루엔자)가 소강상태를 보인다”며 “이제 막바지 대비만 철저히 하면 더 이상의 감염은 없을 것 같다”는 식의 보도를 연일 내놓고 있다. 반면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각국 보건당국에 경고 메시지를 타전한다.

“전염병 경고 수준을 현재의 5단계에서 변종 인플루엔자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pandemic)을 의미하는 6단계(경고 최고단계)로 상향 조정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은 경계를 늦추지 마라.”

이런 차이는 신종 인플루엔자의 발원지인 멕시코 미국 캐나다 등 북미대륙과 유럽에서는 확진환자(사망자 포함) 및 추정환자가 매일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반면, 국내에선 확진환자 3명의 증상이 모두 사라져 퇴원한 데다 이들의 전파력이 거의 없고 의심환자 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데 기인한다.

보건당국은 “현재 상태로 볼 때 신종 인플루엔자의 전염력은 높지만, 치사율과 독성은 계절성 인플루엔자(A형 또는 B형 인플루엔자)보다 현저히 낮다”며 국민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려 하고 있다.

이에 반해 비판적인 감염 전문가들은 치사율이 낮다는 사실엔 동의하면서도 “국내 최초로 사람 대 사람 간 감염을 일으킨 변종 인플루엔자로, 언제든 독성이 높은 ‘킬러’ 바이러스로 변이해 치명적 팬데믹을 일으킬 수 있는 무서운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백신 만들 달걀이 없다

양측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듯하지만, 공히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 치명적 인플루엔자의 세계적 대유행이 멀지 않은 미래에 찾아오리라는 점, 그리고 이번 신종 인플루엔자 사태는 다빈도 발생국에서 유입되는 환자만 잘 관리하면 별 피해 없이 종식되리라는 점이 그것이다.

문제는 올겨울과 내년 봄이다. 이미 겨울이 시작된 남반구 지역은 태풍의 핵이다. 지금껏 세계적 대유행 인플루엔자는 대부분 봄에 발생해 계절성 인플루엔자보다 못한 치사율을 보이며 일단 사라졌다가, 그해 늦가을과 겨울 무서운 ‘대학살자(킬러 인플루엔자)’로 변모해 되돌아왔다. 이 기간에 인체나 조류에서 변이를 일으켜 무서운 전염력과 독성을 얻게 된 것. 5000만명이 죽은 1918년 스페인 대유행이 그랬고, 1957년 아시아 대유행(200만명 사망)과 1968년 홍콩 대유행(100만명 사망)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으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날씨가 추워지면 전파력과 독성이 모두 커진다.

따라서 지금 당장이 아니라 올겨울에 일어날지도 모를 변종 인플루엔자의 대유행에 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보건당국은 어떤 대비책을 갖고 있을까. 그 대비책은 제대로 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이번 신종 인플루엔자 대응 과정에서 정부가 약속한 각종 예방대책을 점검해보면 자연스럽게 나온다.

먼저 백신 준비상황을 살펴보자. 변종 인플루엔자의 대유행을 조기에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백신을 개발해 국민에게 미리 예방접종하게 하는 것. 보건복지가족부 유영학 차관은 4월30일 국회에서 “6개월 이내에 650만명분의 신종 인플루엔자 백신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간동아’의 취재 결과, 유 차관의 장담은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 독감백신을 생산하는 곳은 녹십자 화순공장이 유일하다. 유 차관의 발언이 있기 사흘 전인 4월27일 녹십자는 WHO 협력기관인 영국국립생물기준통제연구소(NIBSC)에 신종 인플루엔자 백신 제조용 균주를 요청해 3주 안에 공급받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균주를 주입해 이를 인공 배양할 무균 유정란(달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

녹십자가 올해 말까지 가용할 수 있는 유정란은 200만명분으로, 이마저도 계절성 일반 독감 수요를 맞추기 위해 주문해놓은 것이다. 유정란 생산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은 국내에 한 곳밖에 없어 그 많은 무균 유정란을 6개월 이내에 추가로 생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대유행 인플루엔자 백신은 일반 백신과 달리 1인당 2회 접종해야 하므로, 650만명분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항바이러스제제 공급사 “우린 모르는 일”

더욱이 보건복지부는 녹십자와 구입 단가도 협상하지 않은 채 대유행 인플루엔자 백신 구입용 예산을 182억원 마련해놓았는데, 이는 수입 백신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다. 녹십자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보건당국의 연락을 받은 바 없다. 만일 올해 안에 대유행 인플루엔자 백신 200만명분을 생산하려면 일반 독감백신 생산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라고 밝혔다.

유정란이 확보된다고 해도 여기에서 몇 인분의 백신이 나올지, 균주의 배양이 제대로 될지, 임상실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다가올 대유행 인플루엔자에 대비하는 두 번째 대책은 빠른 시간 안에 치료제인 항바이러스제제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질병관리본부는 4월27일 “수일 안에 250만명분의 비축량 외에 추가로 250만명분을 확보하겠다. 비축분과 추가 확보분을 합하면 전 국민의 10%분을 확보하는 셈으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밝혔다. 현재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효과를 보이는 항바이러스제제는 로슈의 ‘타미플루’와 GSK의 ‘리렌자’ 두 가지. 하지만 GSK 관계자는 “정부와 논의하고 있지만 수량은 확인된 게 없다. 6개월 이내에 공급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로슈 측도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 주문이 들어오면 선착순 원칙에 따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감염 전문가들은 2004년 조류 인플루엔자(AI) 발생 이후의 대유행 인플루엔자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와 정부 용역조사 보고서 등을 인용하면서 “적어도 전 국민의 20%분은 확보해야 한다”고 줄곧 강조했다. 하지만 국회의 계속된 예산삭감 조치로 지난해 겨우 국민의 5%인 250만명분을 확보했다. 현재 미국은 전 국민의 50%, 영국은 30%, 일본은 25%분을 확보해놓고도 이번 사태가 터지자 항바이러스제제를 추가 주문해놓은 상태. 반면 우리 정부는 아직 제약사와 구입 수량조차 결정하지 못했다. 한 감염 전문가는 “대유행 인플루엔자와의 싸움은 총만 안 들었지 자국민을 지키기 위한 국가 간 전쟁과 다를 바 없다. 다국적 제약사가 누구에게 먼저 항바이러스제제를 주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실제 팬데믹이 일어났을 때 보건당국이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감염 환자를 확진하느냐도 해당 킬러 인플루엔자의 대유행을 조기에 막는 하나의 관건이다.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항바이러스제제의 약효는 증상 발생 48시간 이내가 가장 좋은 데다, 진단이 빠르면 빠를수록 인플루엔자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비록 근 한 달간 신종 인플루엔자 의심환자를 방치했지만, 4월24일 추정환자가 발생하자 캐나다 질병관리본부에 의뢰해 5시간 만에 확진 판정을 내렸다. 반면 우리 질병관리본부는 멕시코에 다녀온 51세 수녀(4월28일 추정, 5월2일 확진), 이 수녀를 돌본 44세 수녀(4월30일 추정, 5월5일 확진), 같은 비행기에 탄 62세 여성(5월2일 추정, 5월7일 확진) 3명의 추정환자를 확진하는 데 5~6일이나 걸렸다. 질병관리본부의 ‘신종 인플루엔자 예방 및 관리지침’에는 확진환자 확인에 걸리는 소요시간이 ‘~1일’로 돼 있다.

병원에 가면 오히려 전염된다?

하지만 이 정도의 ‘뒷북’ 진단도 과거 AI나 사스 때와 비교하면 진일보한 것이다. 2003년 사스, 지난해 AI 추정환자 발생 때 질병관리본부는 확진 여부를 판정하는 데만 수개월을 허비했다. 자체 진단을 하지 못해 환자의 바이러스 검체를 미국 질병관리센터(CDC)로 보내 확진 판정을 기다렸기 때문. 정부는 이번 51세 추정환자가 발생했을 때도 “미국 CDC에 환자 바이러스 검체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확진까지는 2주일이 걸린다”고 말했다. 한 감염 전문가는 “미국 CDC가 4월25일 공개한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염기서열과 추정환자의 바이러스 유전자 염기서열을 PCR 검사를 통해 대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시간 정도다. 확진에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의심환자에 대한 초기 진단과 진료에도 개선의 여지가 많다. 질병관리본부는 “신종 인플루엔자와 관련된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각 병·의원과 보건소를 찾아가 다른 환자보다 우선적으로 진료받으라”고 안내하지만, 현재 1차 의료기관 중에는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제대로 차단하는 N-95 마스크가 비치된 곳이 거의 없다. 신종 인플루엔자는 특히 비행기와 건물 내부 등 밀폐된 공간에서 확산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만일 실제 환자가 병·의원을 방문한다면 다른 사람뿐 아니라 의료진도 감염시킬 수 있는 것. 따라서 바이러스 차단 장비가 확실하게 구비되고 격리 수준이 높은 병·의원과 보건소를 각 시·군·구에 몇 군데 정한 뒤 의심 증상이 나타난 환자는 별도의 진료실에서 문진하는 시스템 도입이 절실하다. 적어도 멀쩡한 사람이 병·의원과 보건소에 갔다 전염되는 사태는 막아야 하는 까닭이다.

2004년 AI 창궐 당시 발생 사실을 쉬쉬하다 전 세계의 비난을 받고 인적, 경제적으로 대규모 피해를 입은 중국은 요즘 신종 인플루엔자와 관련해 작은 사실 하나까지도 국영방송 CCTV를 통해 그대로 알리고 있다. 또한 지난해부터 1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신종 인플루엔자 조기 예방과 치료에 쏟아붓고 있다. 5월7일 현재까지 홍콩(1명 발생)을 제외한 중국 본토에서는 신종 인플루엔자 확진환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주간동아 2009.05.19 686호 (p58~59)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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