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9

2009.03.31

“500만 관람객 불러모을 미술관 프로젝트 있다”

‘배순훈 브랜드’의 국립현대미술관, 어떻게 변할까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9-03-27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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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만 관람객 불러모을  미술관 프로젝트 있다”
    대우전자 사장 시절 출연한 ‘탱크주의’ 광고(1992년) 한 편으로 일약 ‘스타’가 된 배순훈(66·사진)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 그를 만나러 갔다.‘세계에서 가장 접근성이 떨어지는’ 국립미술관으로 알려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관장 취임 3주가 지나서였다. 스타 최고경영자(CEO)답게 그는 많은 언론매체와 숨 가쁘게 인터뷰를 가졌다. 대우전자 회장, 정보통신부 장관, 한국과학기술원 부총장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그가 ‘겨우’ 2급(실장급 별정직) 공무원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 ‘탱크주의’ 광고에 함께 출연한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의 천거‘설’ 등에 대한 해명이 주를 이뤘으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 섭섭한 점은 없는지를 묻는 질문도 적지 않았다(궁금해할 독자들을 위해 다시 옮기자면, 그는 미술관장 임명을 놓고 ‘유 장관과 아무런 사전 교감이 없었으며 대우그룹과 김 전 회장에게 많은 현장 지식을 배웠다’고 답했다).

    역대 어떤 미술관장보다 많은 인터뷰를 하는 것 같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유명해져야 하는데, ‘배순훈’이란 관장이 더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 내가 먼저 나섰다. 지나던 등산객들이 알은척을 할 정도다. 광고 한 편의 위력이 참 대단하다.”

    여러 차례의 설명에도 미술인들은 여전히 ‘비(非)미술인인 배 신임관장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관장직 공모에 지원했는지’를 궁금해한다.

    “바꿔서 물어보자. 국립현대미술관이 어떤 미술관이 되길 원하나?”



    일반 국민이라면 뉴욕현대미술관(MoMA)이나 구겐하임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경영인을 미술관장에 임명한 이유도 그런 점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보인다.

    “관람객이 연 500만명은 돼야 세계에서 눈에 띄는 미술관이 된다. 그러려면 서울 종로구 기무사 터에 새 국립현대미술관을 지을 때 500만명이 접근할 수 있도록 교통, 건설, 문화재 문제 등을 통합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현 관료체제로는 어렵다. 2급 공무원이 높은 사람 한번 만날 수 있나? 세계적 미술관을 짓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려면 정부와 미술계 모든 관계자가 비전을 갖고 협력해야 한다. 건설회사에도 있어봤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을 안다.”

    ‘500만 관람객’이란 상징적인 숫자인가(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관람객 수는 57만명 정도다).

    “아니다. 실제로 계산해본 수치다. 500만명을 오게 할 아이디어를 낼 테니, 그때 다른 이유를 들어 반대만 하지 말아달라.”

    어쩐지 ‘당한’ 기분이다. 미술인들의 우려가 바로 그런 점이다. 미술계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현대미술 발전을 위해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하고, 교육하는 소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신임관장이 ‘건설’보다 내부적 발전안을 내놓길 기대할 거다.

    “우리 미술계의 문제 중에는 미술전문가가 해결할 수 있는 것과 전문경영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나를 임명한 이유는 경영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맡으라는 뜻이다. CEO는 ‘우리 회사의 당면 문제가 뭐지? 왜 과거엔 풀리지 않았을까? 이제 어떻게 풀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의 문제는 미술사적 지식이나 예술적 능력으로 풀 수 없다. ‘여건’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미술관장이 상업적인 말만 한다고 하겠지만.”

    그런 점에서 비판을 받을까봐 걱정되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미술계에 왔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업적이 있거나 기여한 사람에게 보상 차원에서 관장직을 줘야 한다는 잘못된 관념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세계 미술계에 내놓을 만한 연구와 기획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20명 정도의 학예실 직원이 있다. 주니어급이 많다. 어느 정도 관록이 붙으면 다른 데로 가더라. 이들이 평생의 일로 생각하고 창의적인 연구를 통해 전시를 해야 하는데, 시간과 돈이 없고 자료실도 빈약하다. 또 세계적 큐레이터와 조인트 워크를 한 적도 없다. 이는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2008년 16건의 전시를 열었는데, 이는 너무 많다. 1년에 3~4회면 된다.”

    학예실의 미술전문가들이 그런 문제점을 알고 있는데 왜 해결되지 않았을까.

    “미술관을 평가하는 곳에서 ‘전시 횟수’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가’하는 사람들도 미술전문가들이다. 미술인들이 일치단결해 이런 조건하에서는 1년에 3~4회가 적당하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게 바로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무원적, 관료적이라는 뜻 아닌가.

    “철밥통을 좋아하며 살다 보면 철밥통도 해진다. ‘사고만 치지 말고 30년 살자’고 하면 후회하게 된다는 게 내 경험이다.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 왜 머리 좋은 사람들이 여기서 공무원을 하냐고 말했더니, 그들이 다 나가서 벤처를 하더라. 그것 때문에 국회에 불려갔다. 우리는 밥통이 커지길 원한다. 학예실 운영에 문제가 되는 관료적 시스템이 존재한다면 정리하는 게 내 일이다.”

    배 관장의 임명 소식에 구겐하임의 토머스 크렌스 관장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경영인으로서 세계 곳곳에 분관을 내고, 기업과 조인트하며, 다른 미술관들과 파트너십을 이뤄 구겐하임의 명성을 세웠다. 그 역시 미술인들에게 종종 비난을 받는다.

    “나와 비교하려면 토머스 크렌스 관장이 엄청난 사람이어야 할 거다. 나는 잭 웰치도 대단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농담이다. 특정 미술관을 모델로 했다기보다 ‘2030년쯤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6만 달러가 될 텐데 미술관이 이 정도 수준이면 행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 있겠다, 문화에 내가 기여할 일이 있겠다’는 생각으로 미술인들의 욕을 먹으면서 지원한 거다.”

    기무사 터의 새 미술관에 대해 구겐하임처럼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짓겠다고 했다.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있나.

    “세계적인 건축가 5명을 ‘컴피티션’(경쟁 공모)시킬 거다. 컴피티션에만 500~700만 달러가 들어가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미술관 운영에 대단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그 자신감은 과거의 경험에서 오는 거다.”

    한국 미술계에 대한 인상, 지식을 갖게 한 미술 작품, 또는 작가나 책이 있다면.

    “작가 친구들이 많다(그의 부인은 서양화가 신수희 씨고 아들 정완 씨는 설치작가다). 그들에게서 많은 얘기를 듣는다. 생각보다 아는 바가 많을 거다.”

    어떤 인상을 받았나.

    “좀 떨어져 있어야 문제와 방법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는 한국 미술계의 문제 가운데 하나로 ‘떡이 너무 작다’는 점을 들었다. 떡이 작아 누가 그 떡을 갖느냐를 놓고 싸우게 된다는 것. 그는 현재 6400점에 불과한 미술관 소장품을 3만점 정도로 늘리면 고질적 스캔들이 돼버린 미술품 ‘수집’ 문제도 덜 첨예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역시 ‘예산’ 문제이긴 하다.

    개인적으로 미술품을 컬렉션하나.

    “미술관에서 보면 되는데 왜 모으나. 컬렉션은 소유욕이라 생각한다.”

    배 관장은 최근 다시 찾아본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사랑은 풍덩 빠지는 게 아니라 촉촉이 젖는 것’이란 대사가 마음에 남았다며, 미술도 사랑처럼 느리게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다들 이렇게 말한다. ‘기업도 정부도 아니었다, 배순훈에게는 미술관이 꿈의 직장이다’라고. 이것이 나를 아는 전 국민의 생각이 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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