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9

2009.03.31

머리 빠질 때 전립샘약 먹어라?

일부 의사 처방 도덕성 논란 … 허위청구 관리·감독 체계 구멍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9-03-27 12: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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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빠질 때 전립샘약 먹어라?

    성분과 가격 면에서 프로스카(오른쪽)는 프로페시아보다 절대적 우위에 있다.

    회원 수가 수만명이 넘는 탈모 관련 인터넷 카페나 커뮤니티에는 회원들이 탈모치료제 프로페시아에 관한 정보와 복용 후기를 공유하는 방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일한 경구용 탈모치료제라 그런지 약의 정보와 효능을 궁금해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 실시간으로 수없이 올라온다. 그런데 요즘에는 회원들의 질문과 답변이 프로페시아보다 전립샘 비대증 치료제로 쓰이는 프로스카에 집중돼 있다. 최근 A 탈모 카페에 올라온 글을 보자.

    “동네 비뇨기과에서 (프로스카 처방을) 쉽게 해주네요. 28일분 1만4100원이에요. 아버지 주민번호로 처방받았습니다.”(ID·메니아^^*)

    “내과에 갔다 혹시 하는 마음에 프로스카를 처방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버님이나 큰형님 주민번호를 알려주면 해주겠다고 하더이다.”(ID·개밥그릇)

    카페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일부 병원에서는 여전히 프로스카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처방되고 있다. 전립샘 비대증 진료를 했다며 허위로 건강보험을 적용해 탈모 환자에게 프로스카를 처방해주고 있는 것. 이는 명백한 의료법 위반 행위다.

    탈모 치료 권위자인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심우영 교수는 “피부과가 아닌 과에서 전립샘 비대가 있지도 않은 환자에게 프로스카를 처방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이는 약물의 오남용, 건강보험 재정 관리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아무리 탈모 환자의 주머니 사정이 어렵다 해도 의사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약물 오남용에 건보 재정 관리 혼란

    한국MSD에서 판매하는 프로스카와 프로페시아는 둘 다 탈모 예방과 억제 효과가 있는 피나스테리드 성분을 함유한다. 그중 프로페시아는 탈모 치료 효능과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연구 개발된 전문 의약품. 그럼에도 탈모 환자들이 프로스카를 더 많이 찾는 이유는 프로페시아가 건강보험 비적용 의약품이라 비싸기 때문이다. 피나스테리드 1mg을 함유한 프로페시아 1정의 가격은 2000원 선. 보통 피부과에서는 한 달치(28정) 기준으로 약을 처방하기 때문에 환자는 약국의 마진을 포함해 5만5000~6만원의 약값을 지불해야 한다.

    이에 비해 프로스카 1정의 가격은 1500원 선. 한 달치를 처방받는다면 4만~5만원이 든다. 가격만 비교하면 프로페시아보다 조금 저렴한 셈이다. 그러나 프로스카 1정에는 피나스테리드가 5mg 함유돼 프로페시아에 함유된 양의 5배에 이른다. 더구나 전립샘 비대증 치료제로 건강보험까지 적용받으면 본인부담금은 약값의 30%밖에 되지 않는다. 성분과 가격 면에서 프로스카가 절대적으로 비교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

    경제적 부담을 덜고 꾸준히 탈모 치료를 받길 원하는 환자 처지에선 당연히 프로스카를 처방받고 싶을 수밖에 없다. 이런 환자들을 단골고객으로 유치하려는 일부 병원이 암묵적으로 이에 영합함으로써 탈모치료제로 공인된 프로페시아보다 프로스카가 탈모 환자들에게 더 익숙한 약이 돼버렸다. 탈모 환자 가운데 한 번쯤 프로스카를 프로페시아의 피나스테리드 함유량에 맞춰 4조각을 내서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탈모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 프로스카 절단용 칼까지 비치해둔 약국도 있다.

    프로스카 처방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커지면서 이에 부담을 느낀 일부 병원들은 아예 다른 질환의 치료제와 묶어 비보험으로 프로스카를 처방하기도 한다. 최근 탈모 관련 각종 인터넷 카페나 커뮤니티, 탈모관리센터 홈페이지에는 비뇨기과뿐 아니라 내과 외과 가정의학과 등 탈모와 관련 없는 과(科) 의사들에게 프로스카를 비보험으로 처방받았다는 글이 수두룩하게 올라와 있다. 심지어 프로스카를 판매한다는 글도 꾸준히 올라온다.

    “집 근처 가정의학과에 가서 선생님한테 잘 말씀드렸더니,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처방전을 싼 것으로 해주는 것밖에 없다면서 (…) 감기로 처방(처방전 3500원)하고, 약은 감기약이랑 프로스카로 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약국 가서 감기약은 처방 안 받는다고 말하고 프로스카만 받으라고 하셨어요. 다들 이렇게 하시는 거 맞죠?”(B 탈모 카페/ ID·탈모야이놈아)

    “슬쩍 프로스카 처방도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된다면서 바로 처방해주시네요. 물론 비보험이지만 흔쾌히 해주셔서 정말 좋았습니다. 프로스카를 처방받으실 분 여기로 가세요. 강남역 ○○○○○피부과입니다.”(C 탈모 카페/ ID·영원한××)

    마구잡이식 프로스카 처방전 발급을 놓고 의료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 광화문의 한 비뇨기과 원장은 “진료와 처방은 의사의 고유 권한이지만 특정 약물이 해당 증상이 아닌 다른 질환에 쓰일 것을 알면서도 처방하는 일은 권한 내에서 평가할 수 없는 문제”라며 프로스카 혼용 처방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혔다.

    대체 처방 심각성엔 공감, 대책은 부실

    머리 빠질 때 전립샘약 먹어라?

    탈모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프로스카, 프로페시아 구입 요령, 사용 후기와 탈모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을 호소하는 글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당국은 탈모 환자에게 전립샘 비대증 치료제 프로스카를 대체 처방하고 있다는 심각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실질적인 개선 조치는 미비한 수준이다. 2007년 7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전립샘 비대증 치료제가 탈모치료제로 둔갑하는 사례를 분석하고 의사와 환자들의 허위청구를 중점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이후 깜깜소식이다.

    당시 심평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02년 106억원에 그치던 전립샘 비대증 치료제 청구금액이 2006년에는 279억원으로 163%로 상승했다. 자연 증가분과 함께 탈모 환자의 허위청구 증가분이 포함됐다는 게 당시 심평원의 분석이었다. ‘주간동아’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에 요청해 받은 ‘전립샘 비대질환 진료 실적 현황’에 따르면, 진료 지급 건수는 2006년 169만 건에서 지난해 267만 건으로 2년 사이 100만 건이나 늘었다. 총 진료비 대비 공단부담금 역시 366억원에서 473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2007년 심평원의 분석 결과에 미뤄보면, 자연 증가와 함께 허위청구 액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관계 당국 어디에서도 자연 증가분과 허위청구 액수에 대한 구체적인 실사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평원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허위청구) 실사권이 없다”는 이유로, 보건복지가족부는 “전립샘 비대증 허위청구 건만 특정해 실사하는 것은 어렵다”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형국이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따로 전립샘 비대증 허위청구에 대해 실사를 벌인 적은 없다. 보험평가과 관계자는 “보통 일반 병원의 여러 허위청구 건을 조사하다 한두건이 섞여 나올 수 있는 정도”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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