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9

2009.01.13

마돈나 vs 장미희 “날아라 슈퍼걸!”

58년 개띠 동갑 ‘당당한 여성’ 아이콘으로 등극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입력2009-01-07 1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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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돈나 vs 장미희  “날아라 슈퍼걸!”

    지난해 열린 월드투어 ‘Sticky & Sweet’의 프랑스 니스 공연 무대에서 섹시미를 선보이는 마돈나.(좌) 2008년 ‘코리아베스트드레서 백조상’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백조상’을 받은 장미희. (우)

    2008년 두 50대 ‘언니’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날로 농염해지는 자태로 섹시한 월드 투어 장정을 마친 마돈나와 KBS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를 통해 한국 여성들의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장미희가 주인공들이다. 58년생(마돈나는 8월16일생, 장미희는 1월27일생)인 이들은 50대의 여자도 여성성을 거세당하지 않은 채 여전히 섹시하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인생 여정도 활동무대도 다르지만 이 둘에게는 큰 공통점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여성팬들의 환호가 거세진다는 사실이다.

    ◆ 마돈나의 힘

    마돈나는 데뷔 이래 한순간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50세를 맞이한 2008년 이룬 ‘업적’들은 ‘마돈나 다시 보기’ 붐을 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2008년 말까지 세계 17개국에서 열린 월드 투어 ‘Sticky · Sweet’ 공연을 통해 마돈나는 총 2억82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솔로 가수로는 팝 역사상 최고의 성적이다. 성적보다 놀라운 것은 그가 생물학적 나이에도 아랑곳 않고 검은색 브래지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스루(see-through) 상의와 원더우먼을 연상케 하는 삼각팬티, 그리고 검은색 망사 스타킹을 신고 무대를 누볐다는 사실이다. 망사 사이로 드러나는 허벅지 안쪽 근육의 ‘노골적인 굴곡’은 그의 성적 에너지가 20대 못지않음을 만방에 과시했다. 그는 투어 일정에 포함된 이탈리아 로마 공연에서 자신의 히트곡 ‘라이크 어 버진(Like a virgin)’을 교황에게 헌정한다는 ‘깜짝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슈 메이커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키기 위한 고도로 계산된 언행이었다. 사생활에 대한 대중의 끊임없는 관심도 그녀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최근 두 번째 남편인 영화감독 가이 리치와 이혼을 발표한 것과 동시에 33세의 뉴욕 양키스 3루수, 20세인 브라질 모델(포르노 배우로도 활동했다)과 염문설을 이어가 식지 않는 정력을 확인시킨 것이다.

    그는 2009년 봄여름 시즌,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크 제이콥스는 파리에서 열린 콘서트를 직접 본 뒤 그의 에너지에 매료됐다며 “이번에는 대담하고 관능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연출하고 싶었는데 이를 모두 갖춘 최고의 연기자로 마돈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마돈나 vs 장미희  “날아라 슈퍼걸!”

    나이가 들어도 식지 않는 에너지의 소유자 마돈나는 올 봄여름 시즌,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의 광고 모델로 선정됐다. (위) 2007년 7월 부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에서 선글라스를 모티프로 한(브래지어로 오해받았던) 상의를 입어 패셔니스타로 신고식을 올린 장미희.(아래)

    초등학생 때부터 팬이었다는 패션홍보대행사 비주컴 김민정(34) 차장은 마돈나를 볼 때마다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처럼 자신의 욕구와 생각을 직설적으로 털어놓는 것을 터부시하는 사회에 살다 보니 마돈나의 거침없는 언행에 제 속이 다 시원해지거든요. 같은 팀 댄서와 자고 싶다고 스스럼없이 얘기하고, 동성인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딥키스를 하고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는 아슬아슬한 막말들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죠.”

    한편 주부 김영미(가명·51) 씨는 그의 성적 에너지에 주목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작년에 딸아이가 대학에 입학한 이후 잠시 우울증을 앓았어요. ‘숙제’를 끝내놓고 스스로를 돌아보니 여성으로서의 제 삶은 이미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그런데 동갑내기 마돈나가 아들뻘인 모델과 연애를 한다고 하니 왠지 모를 ‘희망’이 솟더라고요.”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마돈나가 ‘워너비’ 여성팬들을 거느리게 된 것은 그가 데뷔 초부터 페미니즘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데뷔 초기인 1980년대, 남성들의 마음을 영악하게 들었다 놨다 하면서(Like a virgin), 아버지에게 잔소리는 그만하라고 소리친(Papa, don’t preach) 명곡들과 이후의 히트곡들을 통해 여성에게 드리워진 모든 벽을 온몸으로 깨왔기 때문이지요.”

    여성학계에서 마돈나는 이미 주요 연구 대상 중 하나다. 미국의 프린스턴 하버드 콜로라도 대학 등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에서는 마돈나와 관련된 여성학, 사회학 강의가 개설됐을 정도다. 마돈나의 출현과 이것이 여성학, 소수자(동성애자 등)에 끼친 영향을 다룬 마돈나학(Madonnology)은 미국에서는 이미 낯설지 않은 학문 주제다. 프랑스의 대중문화학자 조르주 클로드 길베르는 저서 ‘포스트모던 신화 마돈나’(들녘출판사)를 통해 “마돈나는 그녀의 1세대 워너비들이 스스로를 해방시켜 옷차림, 성경험, 직업 등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여성으로 자신의 삶을 장악할 수 있게 도왔다”고 말했다.

    ◆ 장미희의 힘

    한편 장미희는 ‘루비(RUBY)족’이라는 신조어를 빚으며 우리 사회의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상쾌하고(Refresh), 평범하지 않으며(Uncommon), 아름답고(Beauty), 젊은(Young)’의 앞 글자를 조합해 만든 이 신조어는 실제 나이는 50대지만 외모는 30대, 마음은 40대인 여성을 뜻한다.

    그는 지난해 연말 ‘2008 스타일 아이콘 어워드’에서 가수 비(27)와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코리아베스트드레서 백조상’ 시상식에서 이동건(29)과 함께 탤런트 부문상을, 전체 수상자 가운데 최고상을 받는 등 패셔니스타로서 눈부신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또 패션잡지 ‘바자’의 화보에서는 소파에 앉은 채 다리를 90도로 들어올리는 아크로바틱한 포즈를 취하면서 군살 없이 탱탱한 피부와 관능적인 자태를 선보이기도 했다. 장미희 담당 스타일리스트 조윤희 실장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까지 ‘장미희 패션’이 인기를 끄는 모습을 보고 내심 놀랐다”며 “이들은 장미희 씨가 곱고 우아하고 패셔너블하게 늙고 싶은 여성들의 이상향을 제시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씨에게 드라마와 시상식용으로 고급 보석을 협찬한 프랑스 명품 보석브랜드 ‘프레드’의 이아연 대리는 “타깃 소비자 연령대와 일치하는 배우가 보석을 걸치고 나오자 고객들의 반응이 다른 때보다 더 뜨거웠다”고 말한다. 또래 여성들에게도 스타일 ‘롤모델’이 된다는 뜻.

    한편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랑콤’ 역시 지난 11월, 최고가 라인인 ‘세크레 드 비’ 제품의 모델로 장미희를 기용하면서 매출이 전년 대비 100% 성장했다.

    패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50대 여성에게 명품 브랜드 협찬이 줄을 잇고 패션상이 몰리는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증언한다.

    홍익대 패션디자인학과 간호섭 교수는 이를 시대의 변화로 해석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에이지리스(ageless)’ 콘셉트가 이제 말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나타난다는 뜻이지요. 나이 대신 자기관리와 노력의 결과 그 자체로 평가를 내리는 때가 온 것입니다.”

    럭셔리 패션지 편집장 출신의 홍보대행사 컴플리트 김지영 이사도 같은 의견이다. 그는 “지금까지 30대 이상 여성들이 미적 면에서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선배나 언니 세대 ‘멘토링 그룹’이 없었기 때문에 ‘장미희 신드롬’이 한층 힘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장미희의 팬인 CNP홀딩스 김유경(42) 이사는 “나도 앞으로 10년, 20년 후에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줬다는 것이 장미희가 ‘인생 후배’들에게 인기를 얻는 큰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장미희 신드롬’이 장미희만의 힘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10매거진’ 백은하 편집장은 “매력적인 드라마 속 캐릭터가 그 역할에 가장 적합한 촉매(배우)를 통해 꽃을 피웠을 뿐”이라며 “지금까지 50대 여배우가 젊은 여성들의 동경이 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장미희만한 여배우가 없어서였다기보다는 장미희 신드롬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여건이 이제야 마련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마돈나와 장미희가 각기 속한 문화 속에서 여성들의 ‘워너비’ 모델로 인기를 유지하게 됐다는 사실은 ‘팩트’는 같으나 그 본질은 매우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마돈나가 페미니즘의 상징이라면 장미희는 반(反)페미니즘의 상징’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장미희가 갑자기 전성기를 누리게 된 계기에 대해 “50대에도 여성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매개체가 결국 미모와 돈(명품 패션 아이템으로 치장)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 여배우가 그 나이대까지 스타일리시한 모습으로 ‘생존’했다는 사실 자체에 후한 점수를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김은실 교수는 “개인적인 어려움을 딛고 자기관리를 통해 자력으로 성공한 ‘셀프메이드(self-made)’된 여성상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마돈나와 장미희 모두 성공이 키워드가 되는 시대에 여성에게 드리워진 ‘희생자 이미지’를 극복하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빚어냈다는 점에서 현대 여성들의 희망과 욕망을 모두 담아내는 ‘아이콘적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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