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9

2009.01.13

‘딸기’는 면목동,‘은하’는 588로 그래도 ‘안마방 거리’에선 ‘2차’ 횡행

서울 장안동 성매매 단속 150일, 빛과 그림자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9-01-07 17: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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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기’는 면목동,‘은하’는 588로 그래도 ‘안마방 거리’에선 ‘2차’ 횡행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안마방 거리’(서울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에서 장안동 네거리까지 1.2km)에선 10년 넘게 수건 빨 때 쓰는 세제 냄새가 났다. 안마를 콘셉트로 삼은 성매매 업소 ‘힐탑’과 ‘스카이’가 이 거리에 있었다. 두 업소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몹쓸 문화’를 선도했다. ‘스카이’가 오럴섹스 때 쓰는 구멍 뚫린 의자를 새로 들여놓으면 ‘힐탑’은 가면 쓴 여성이 등장하는 스리섬(2+1)으로 응수하는 식이었다. 특급 호텔급 월풀 욕조, 공기를 넣은 비닐침대로 특화한 업소도 있었다.

    ‘현금 10만원, 카드 11만원’에 포르노그래피가 현실이 되는, 1km 남짓한 거리에 똬리 튼 61개의 업소에선 1000명 넘는 여자들이 일했다. 안마+마사지+목욕+스페셜 서비스+섹스는 술 취한 남자들의 욕망을 일으켜 세웠고, 덕분에 이 거리는 밤늦도록 불야성을 이뤘다. 업소들의 상상력은 때로 포르노그래피를 넘어섰으며, 몸 부벼 돈 버는 여자들의 일은 고됐다. 동틀 무렵 감자탕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이따금 호스트바에 들러 스트레스를 푸는 ‘언니’들은 업소의 쪽방에서 자거나 오피스텔을 빌려 살았다.

    ▶장안동 H오피스텔엔 ‘못난이 3자매’가 살았다. “못생긴 여자 셋이 자매처럼 붙어다닌다”며 사람들이 붙인 이름. “안마방서 난봉질하는 놈들이 난 당최 이해가 안 돼. 지저분한 놈들. 한마디로 눈이 뼜어. 대낮에 한번 만나보라고 그래. 하고 싶은 마음이 드나, 안 드나”라고 H오피스텔에서 장사하는 한 아주머니는 말했다.

    ‘장안동 아가씨’ 중엔 아이 키우면서 몸을 파는 서른 살 넘은 ‘엄마’들도 있었다. 보증금 1000만원, 월세 55만원인 H오피스텔 13평형은 언니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신용이 불량해 금융기관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언니들은 다른 사람 명의로 사글셋방을 계약했다. 일수쟁이들은 보증금 혹은 보증금의 일부를 언니들에게 빌려주고 원금을 모두 갚을 때까지 하루에 1만원씩 이자를 받았다. 이 ‘몹쓸 카르텔’ 덕분에 장안동엔 돈이 넘쳐났다. 퓨전 중국음식점으로 위장한 성인오락실은 사람들로 북적였으며, 단속에 걸렸을 때 진짜 업주 대신 죄를 뒤집어쓰는 안마방의 ‘바지사장’은 매달 200만~250만원의 불로소득을 거뒀고, ‘삐끼’로 일하며 호구하는 ‘삼춘’ ‘깍두기’도 많았다.

    ‘몹쓸 카르텔’ 덕분에 한때 돈 넘쳐



    ▶2008년 8월 말, 72타석-210m 비거리를 자랑하는 H(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인도어 골프 연습장.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렁였다.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C 사장이 자살했대.” “그이가 왜?” “안마방 사장이었대. 그런데 단속이 심해 빌린 돈을 갚을 길이 없어 자살했대.” “정말? 헛소문인 것 같은데….” 경찰의 안마방 집중단속 탓에 먹고살기 어렵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C(사망 당시 49세) 씨는 이 골프연습장에서 ‘매너 좋고 돈 잘 쓰는’ 사업가로 통했다. 회원들은 C 사장이 안마방을 운영했다는 사실을 쉽게 믿지 못했다. J(62·여) 씨는 “C 사장이 죽기 하루 전 함께 수다를 떨었다. 사람 보는 눈이 꽤 정확한 편인데 ‘몹쓸 짓’하는 남자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라운딩을 같이 나간 사람들도 많은데…”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딸기’는 면목동,‘은하’는 588로 그래도 ‘안마방 거리’에선 ‘2차’ 횡행

    경찰이 지난해 7월28일부터 성매매 집중단속을 벌인 장안동 유흥가.

    11월1일엔 안마방 여종업원 A(사망 당시 26세)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전날엔 또 다른 여종업원 C(사망 당시 36세) 씨가 ‘못난이 3자매’가 살던 오피스텔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업주들은 “막무가내식 단속으로 사람이 죽었다”고 반발했으나 경찰은 물러서지 않았다.

    ▶Y(30) 씨는 2006년 교도소에서 나온 뒤 장안동에서 호객꾼으로 일하다가 경찰의 안마방 단속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또다시 ‘몹쓸 짓’을 하다 철창에 갇혔다. 택시를 훔친 뒤 부녀자를 납치해 수백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지난해 12월 경찰에 붙잡힌 것.

    2008년 7월부터 시작한 경찰의 단속으로 이 지역 안마방은 일소됐다. 12월31일 오전 1시. 여느 때 같으면 취객으로 붐볐을 안마방 거리는 썰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볼썽사납던 ‘안마’ ‘1+2’라고 적힌 에어라이트 문구도 사라졌다. ‘스카이’는 발마사지로 업태를 바꿨고 ‘힐탑’은 문을 닫았으며 ‘비누방울’은 ‘타임모텔’로 업종을 바꿨다. 중국음식점으로 위장해 영업하던 성인오락실을 노래방으로 개조하는 공사가 밤까지 이어져 소란스러웠다.

    경찰과 동대문구청은 안마방 거리에 CCTV를 설치했다. 공급은 단속으로, 수요는 감시로 막겠다는 뜻. 경찰의 단속은 국지적으론 성공한 듯 보였다. “학원가와 상업지구가 공존하는 형태로 이 지역을 일신하겠다”는 게 동대문구의 구상이다.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 ‘풍선 효과’

    ▶보증금 10억여 원에 매달 수천만원의 임대료를 받고 안마방 업소에 건물을 빌려준 일부 빌딩주들도 철퇴를 맞았다. 검찰이 기소한 한 건물주는 성매매를 비호하면서 범죄수익금을 챙긴 혐의로 26억원짜리 건물을 몰수당할 처지다. 또 다른 건물주 9명에 대해서도 건물에 대한 몰수, 추징보전 절차가 진행 중이다. 성매매 업소에 빌려준 건물이 몰수되는 것은 장안동의 사례가 처음.

    투자자, 조직폭력배, 안마방, 성인오락실이 기업형으로 결탁해 ‘범죄수익’을 거두던 ‘몹쓸 카르텔’이 해체 절차를 밟으면서 자산가치와 관련한 주민들의 기대도 커졌다. 장안동 R아파트 100㎡형(30평형대)의 거래가는 4억3500만원(2008년 12월 현재). 중랑천변을 따라 R, H 등 인기브랜드 아파트 7000여 가구가 들어섰는데도 이 일대 집값은 3.3㎡당 1400만원 수준에 머물렀다. 부동산 활황기 때도 서울의 다른 지역과 달리 오름세가 크지 않았다. 주민들은 안마방 일소를 계기로 부동산값이 오르리라고 기대한다. R아파트에 사는 박준규(38) 씨는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 학원가가 들어섰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그러나 부동산중개인 U 씨는 “안마방은 자취를 감췄으나 매물로 나온 업소는 거의 없다. 업주들은 단속이 느슨해지기를 기다린다”고 밝힌다. 동대문경찰서와 서울경찰청 소속으로 뇌물과 성접대를 받은 인사의 명단을 공개한다며 으름장을 놓던 업주들은 일부 부도덕한 경찰의 이름을 아직 공개하지 않으면서 ‘때’를 기다린다. 한 업소 주인은 “단속을 주도한 이중구 동대문경찰서장이 다음 경찰 인사 때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언니들이 안마+마사지+목욕+스페셜 서비스+섹스를 팔던 일부 안마방의 쪽방은 ‘달방’(다달이 돈을 내고 빌려 쓰는 방의 은어)으로 바뀌었다. 주변 유흥업소 등에서 일하는 이들이 달방에 둥지를 틀었다. 오피스텔, 모텔, 달방에서 장안동식 서비스가 이뤄진다는 소문도 나돈다.

    호객꾼들은 장안동을 찾아온 손님들을 승용차를 이용해 다른 곳으로 실어날랐다. 한 호객꾼은 “모텔에서 안마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며 취객을 꼬드겼다. 안마방이 물러선 거리에 똬리 튼 주점에선 ‘2차(성매매)’가 횡행한다. U 씨는 “학원가가 들어서리라는 헛된 바람은 품지 않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딸기(가명)는 바뀐 환경이 어색하다. 구멍 뚫린 의자도, 공기 넣은 비닐침대도, 월풀 욕조도 없다. “처음에 왔을 땐 황당했어요. 이런 곳에서 일할 수 있나 싶었죠. 이젠 적응해서 그런지 그럭저럭 할 만해요. 손님들도 사정을 잘 알아서 책잡지 않고요.” 그는 장안동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서울지하철 7호선 사가정역 ×번 출구 앞의 이곳으로 옮겨왔다. 지하 1층에 자리잡은 이 업소는 ‘스포츠마사지’라는 간판을 입구에 내걸었다. “1~2주일 여기서 일하다가 장안동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단속이 심해 아직도 못 가고 있어요. 시설은 거지 같아도 서비스는 똑같아요.” 택시 기사들이 “장안동 장사하느냐”고 묻는 손님을 이곳으로 데려온다고 한다. 택시 기사들은 업소에 손님을 넘기고 1만원을 받는다.

    ‘딸기’는 면목동,‘은하’는 588로 그래도 ‘안마방 거리’에선 ‘2차’ 횡행

    장안동 상인들은 상권 재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장안동 언니들은 딸기처럼 스포츠마사지, 휴게텔, 대딸방, 다른 지역의 안마방으로 흩어졌다. 한 사채업자는 “김포와 고양(일산)으로 가장 많이 옮겨갔다. 두 지역이 안마방 업계에선 뜨는 곳”이라고 전했다. 아파트촌으로 바뀔 예정인 ‘청량리 588’(서울 동대문구 전농동)도 ‘풍선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1km만 벗어나면 경찰 단속 전무

    ▶옛 안마방 거리에서 ‘공적(公敵) 1호’는 이 지역이 지역구인 홍준표 의원(한나라당 원내대표)이다. 안마방 업주들은 집중단속의 ‘배후’에 그가 있다고 믿는다. R, H아파트 주민들도 홍 의원의 노력 덕분에 안마방이 사라졌다고 여긴다. 장안동에서 자영업을 하는 K 씨는 “지난해 총선 때 민병두 후보(민주당)가 안마방을 뿌리뽑겠다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교차로마다 내걸었다. 원래는 민주당을 지지하는데 상권이 죽을까봐 홍 의원을 찍었다. 그가 유권자를 배신한 것이다”라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4월 총선 때 “한나라당이 국회의원에 연거푸 당선돼 이 지역이 성매매의 온상이 됐다”고 주장했다.

    청량리 588도 홍 의원의 지역구. 2007년 홍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선 “성매매 업소를 없애달라”는 시위도 벌어졌다. 실제 이번 집중단속의 ‘배후’에는 홍 의원이 있다. 동대문구청, 동대문경찰서에 집중단속을 요구했고 CCTV를 설치해 수요를 막겠다는 아이디어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R아파트의 한 주민은 “잘했다. ‘모래시계 검사’답다”며 그를 치켜세웠다.

    ‘딸기’는 면목동,‘은하’는 588로 그래도 ‘안마방 거리’에선 ‘2차’ 횡행

    학원가와 상업지구가 공존하는 형태로 ‘안마방 거리’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주민들의 바람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을 발효한 후 4년여가 지났다. 여성부는 성매매 근절과 관련해 800억원에 달하는 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성매매 총량이 줄었다는 통계는 어느 곳에서도 발표하지 않는다. 해법은 벌써부터 나와 있다. △전국 규모의 반복적인 동시다발적 장기·집중단속 △성매매 여성의 재활 프로그램 확충 △성매매 남성들에 대한 처벌 강화가 그것이다.

    동대문경찰서가 장안동 유흥가를 상대로 집중단속을 시작한 때는 2008년 7월28일. 그 후 150일 동안 안마방 거리의 ‘몹쓸 풍경’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이 거리에서 1km만 벗어나면 경찰의 단속은 없다. ‘뺑뺑이등(燈) 2개’가 함께 돌아가는 퇴폐이발소, 안마시술소가 취객을 기다린다. 택시 기사들은 장안동을 찾던 이들을 ‘포섬(3+1)’도 가능하다는 중랑구 면목동, 광진구 중곡동, 송파구 신천동의 안마방으로 실어나른다. 청량리 588에서 몸을 파는 은하(가명)는 “예전엔 5개(‘1개’는 15분 서비스 한 단위를 가리키는 은어)도 못하는 날이 많았는데 요즘엔(장안동 단속 이후엔) 14개, 15개를 하는 날도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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