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5

2008.10.07

뉴타운, 금융위기 뇌관인가

고분양가에 대출이자 감당 못해 완공 후에도 입주 못한 급매물 이어져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8-09-29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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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타운, 금융위기 뇌관인가

    1차 뉴타운으로 지정된 서울 은평뉴타운은 올해 6월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재건축 상담’ ‘분양권 문의 환영’. 9월22일 서울 지하철 4호선 미아삼거리역 5번 출구로 나와 시장길에 들어서자 기자를 맞이한 것은 한 집 건너 자리한 부동산 중개업소였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횡단보도 건너편에서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그 집 파실 거죠?”

    “지금 가격에 내놓을 수 있겠어? 더 기다려봐야지.”

    공인중개사와 주민 간에 오가는 이런 대화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을 만큼 너나 할 것 없이 뉴타운 개발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입주권을 쥐고 있다가 재개발 아파트에 들어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제6구역 주택재개발정비조합 이운호 조합장은 “실제 살던 주민이 지금까지 입주권을 갖고 있는 경우는 20% 미만”이라고 말했다.

    분양권 매매는 현재 뜸한 상태다. K부동산의 김지호 공인중개사는 “최근 분양권 매매도 줄었다”며 “정부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 보니 아직은 관망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고 전했다.



    집값 폭락 땐 대출담보와 은행 부실 불 보듯

    급등세를 보인다는 정부와 언론의 지적에도 강북지역 주민들은 같은 평형의 강남 아파트를 거론하며 아직도 오를 여지가 크다고 주장한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박모(46·여) 씨는 “뉴타운을 개발해도 아직 강남 아파트 가격의 절반도 안 된다”며 “비슷한 수준이 되려면 더 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뉴타운 분양가는 서민이 사기엔 올라도 너무 올랐다. 미아동에서 만난 회사원 김태완(30) 씨는 “20평형대 아파트가 뉴타운으로 개발되면 분양가가 4억원에 육박한다. 연봉 3000만원 이하의 샐러리맨은 10년 넘게 일해야 겨우 분양권을 살 수 있을 텐데 그동안 집값은 더 오르지 않겠느냐”며 “결국 서민은 상당 부분을 대출에 의존해 분양권을 살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 대목에서 ‘뉴타운발(發) 금융위기’ 시나리오가 제기된다. 금리 상승으로 인한 금융비용 부담과 경기침체로 인한 실질소득 감소는 채무자로 하여금 과도한 주택담보대출을 감당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 위기설의 출발이다. 실제로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결정 기준인 CD(양도성 예금증서) 금리가 상승하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최근 한 달간은 금리 변동이 없었지만 여전히 8% 수준에 육박할 만큼 높다. 고정형의 경우에도 9% 수준으로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의 뉴타운 아파트가 급매물로 나올 경우 집값이 폭락해 대출담보가 부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자금을 대출해준 은행의 부실을 낳고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처럼 금융 전반의 위기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하나의 시나리오에 지나지 않지만, 개발이 완료돼 입주가 시작된 뉴타운에서도 금전적 문제로 입주하지 못해 급매물이 나오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9월23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를 나와 10여 분을 걷자 은평구 진관내동의 은평뉴타운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미아뉴타운의 들뜬 분위기와 달리 입주 4개월째 접어든 은평뉴타운은 흐린 날씨 탓인지 적막함이 흘렀다. ‘중도금 대출 문의’ ‘급전세’ 등의 간판은 미아뉴타운과 묘한 대조를 보였다.

    현재 은평뉴타운 1지구의 입주율은 73.9%. 3600가구가 공급돼 2668가구가 입주했다. 하지만 이런 수치와 달리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듯한 인상이었다. 출근시간 이후라지만 마을버스 안에서도 노인 한두 명만을 만났을 뿐 아파트 주변에서 사람과 차량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뉴타운 중심부에도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와 초고속 인터넷이나 케이블을 깔아주는 가게들만이 활기를 띨 뿐 비어 있는 상가가 많았다.

    은평뉴타운 1지구 입주율 73.9% 그쳐

    뉴타운, 금융위기 뇌관인가

    철거를 앞둔 서울 수색뉴타운 지역.

    은평뉴타운의 한 공인중개사는 “입주하고 4개월이 지났지만 학교와 도로 등은 여전히 공사 중”이라며 “높은 분양가를 감당 못해 급전세, 급월세 물량이 계속 나오면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분양가가 높다 보니 은행 대출에 전세까지 놓아 잔금을 치르지만, 은평뉴타운 108㎡(33평)형의 전세금은 1억7000만원에서 2억원 사이로 예상보다 낮기 때문에 전세금으로 중도금과 잔금을 치르려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뉴타운발 금융위기는 아직까지 가능성 수준에 머물고 있다. 스피드뱅크 부동산연구소 김광석 실장은 “한국의 경우 조건에 따라 LTV(주택담보인정 비율) 60%, DTI(총부채상환 비율) 40%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이자만 낼 수 있으면 주택 명의를 주던 미국과는 차이가 있다”면서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급매물로 뉴타운 아파트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은행들 역시 소득 수준과 상환능력을 고려해 대출 여부나 금액을 결정하기 때문에 ‘묻지 마 대출’로 인한 과도한 대출 부담은 없다는 주장이다. 미아뉴타운에서 중도금 대출을 담당하는 한 은행지점 직원은 “일반 분양가인 경우 전체 금액의 40%가 적용되지만 조합원 분양가는 기존 주택에 대한 평가금액을 제외한 나머지의 40%가 적용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20% 안팎에서 대출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주택담보대출을 하더라도 은행들이 1순위 채권자가 되기 때문에 주택담보가 부실화돼도 은행에 끼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1%의 가능성조차 무시할 수 없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뉴타운 거품이 붕괴될 경우 연쇄적인 부실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1순위 채권자인 은행과 달리 세입자들은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 무리한 계획에 투기세력 어우러지면 위기 현실화

    건국대 고성수 교수(부동산학)는 “현재 금리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소득은 떨어지는 상황에서 금융비용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심리적 불안까지 확산될 경우 부동산런이 발생할 수 있다”며 “한국의 LTV, DTI 수준이 안정적이라고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치상의 예측에 불과하다. 심리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은 1920년대 대공황 당시 주택담보비율이 50%였지만 부동산 가격이 50% 이하로 떨어졌다.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 역시 1990년대 초반 1년 사이 자산 가격이 절반 이하로 빠졌고, 유엔 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외환위기 당시 부동산 가격이 45% 가까이 폭락했다.

    뉴타운발 금융위기는 어떻게 보면 과장된 시나리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말의 가능성도 우리가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노후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뉴타운 건설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기존 뉴타운이 지지부진한 원인에 대한 분석, 그리고 실수요자들이 뉴타운에 살 수 없을 만큼 분양가가 높은 점과 전세가 부족한 점 등에 대한 고민이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주택산업연구원 김덕례 박사)

    김 박사의 말처럼 냉정한 원인 분석 없이 뉴타운 추가 지정을 통해 25만호를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계획과 아파트를 주거가 아닌 재테크 수단으로만 보는 투기세력이 어우러진다면 뉴타운발 금융위기는 현실화될 수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미리 외양간을 점검하는 시기가 된 게 아닐까.

    뉴타운 추가 지정 가능할까

    정부는 “추가 공급”, 서울시는 “생각 없다” 누구 말 믿나


    뉴타운, 금융위기 뇌관인가

    서울 은평뉴타운의 한 주민이 부동산 중개업소에 걸린 급매물 정보를 보고 있다.

    정부는 ‘9·19 주택공급정책’을 통해 2011년까지 수도권 뉴타운을 25개 새로 지정해 25만 가구를 추가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 발표와 달리 서울에 추가로 뉴타운이 들어설지는 오리무중이다.

    먼저 정부 발표와 별개로 서울시는 여전히 뉴타운 추가 지정은 없다는 견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4월21일 기자회견을 통해 “뉴타운 추가 지정과 관련한 서울시 입장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면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뉴타운 사업은 필요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불안정한 지금은 선정을 고려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뉴타운 추가 지정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런 오 시장의 생각을 반영하듯 서울시 주택 라인도 뉴타운 추가 지정은 안 된다는 분위기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뉴타운은 집값 상승을 전제로 한 프로젝트인데, 지금도 각종 규제로 사업 수익성이 나지 않는 실정”이라면서 “기존 35개 뉴타운도 정상적으로 추진되겠느냐는 말도 나온다”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대신 서울시는 지난 5월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 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뉴타운에 대한 종합점검과 부작용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분석 중이다. 서울시 문홍선 주택정책과장은 “15명의 외부 인사와 서울시 국장급 인사 3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가 오는 11월까지 뉴타운,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과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대책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서울시의 반응에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도 살짝 발을 빼는 모양새다. 국토부 김일환 주택정비과장은 “25개 수도권 뉴타운 중에는 올해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경기·인천 뉴타운 10곳이 포함돼 있다”며 “나머지 15곳이 서울 경기 인천 중 어디에 지정될지는 지방자치단체와 계속 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역세권 개발, 그린벨트 해제 등 9·19 주택공급정책 곳곳에서 정부와 서울시 간의 미묘한 견해 차이가 드러난다. 서울시의 협조가 뒤따르지 않는 한 정부의 야심찬 주택공급 계획은 차질이 예상된다. 시장(市場)의 반응 역시 경기·인천 위주로 뉴타운 추가 지정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로 모아지며, 서울 시내의 추가 지정은 관망하는 분위기다.

    Tip 서울시는 2002년 은평 길음 왕십리 세 곳의 시범 뉴타운을 지정한 뒤 지금까지 3차에 걸쳐 뉴타운 35개를 지정했다. 서울시는 이를 통해 32만 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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