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5

2008.10.07

밥벌이 들숨 일상의 날숨 길게 누웠다

대도시 현대인들 헐거우면서 바쁜 나날 … 네온사인과 간판 불빛은 삶 위로

  •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08-10-01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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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벌이 들숨 일상의 날숨 길게 누웠다
    대도시의 헐거우면서도 긴박한 일상은 때로 혼자서 밥을 먹도록 강요한다. 홀로 식사하는 시간은 적요하면서도 고통스럽다. 친구 혹은 동료 사원들 사이에 끼어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쪽이나 대구 동성로의 번잡한 빌딩 속에서 점심을 먹을 때, 그 우악스러운 광경들에 끼어들어 마치 전투를 치르듯이 4인 식탁을 점령한 후 짐짓 일평생 모든 것을 함께하노라는 듯 찌개냄비에 저마다의 숟가락을 퍼넣을 때, 저만치서 누군가는 혼자 밥을 먹는다.

    그게 아니라면 또 이런 생각은 어떠한가. 오후 3시쯤 때늦은 점심을, 꼭 배가 고픈 것은 아니지만 해 저물기까지 버틸 수 없는 시간의 엄살에 못 이겨 혼자 식당으로 들어가 ‘식사 되죠?’라고 물으면서, 그 답이 부정문으로 끝날 것을 염려하여 재빨리 의자에 앉아 뻘건 김칫국물 밴 신문부터 집어들 때, 우리는 이 한세상 사는 일의 버거움을 실감한다. 황지우는 시 거룩한 식사에서 이렇게 썼다.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점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 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하략)

    밥벌이 들숨 일상의 날숨 길게 누웠다
    홀로 식사, 한세상 사는 일 버거움 실감


    이런 일에 대하여 김훈은 비장한 자세로 ‘밥벌이의 지겨움’이라고 표현했던가. 아무튼 그런 일을 마치고 거리로 나서면 이 도심의 거리는 제 몸을 좌판 삼아 번다한 일들을 아래위로 좌악 벌려놓고, 또 마치 제 몸의 겨드랑이나 옆구리들에 간판이며 노점상이며 파라솔 내건 핸드폰 판매대 같은 것을 끼고 길게 누워 있다. 추석이 지나고도 한참 동안 30℃를 오르내리는 열섬의 공간 안에 이 모든 것이 부대끼면서, 아차 그만 멀미가 날 것 같은 풍경에 압도되는 것이다. 높은 사무실이나 육교 같은 먼 곳에서 한가로이 완상하면 건조하고 권태로운 풍경이되, 가까이 내려와 숨 막히는 지열을 느끼면서 거리의 속살을 훔쳐보면 이 긴박한 일상이 우리의 들숨과 날숨 사이를 턱! 가로막아버린다.



    소설가 김원우가 있다. 시인 김정환은 그를 ‘문장은 물론 일류고 작품 짜임새가 탄탄하고 예술성도 무지근하다’고 기억한다. 형 김원일이 분단문학의 강타자이고 아들 김좌영이 록밴드 ‘앰프’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는, 말하자면 예술가 집안의 중추인데, 아직도 컴퓨터 대신 원고지에 한 글자씩 채워나가는 ‘최후의 근대인’이라 할 만한 작가다. 그의 객수산록(客愁散錄)은 지금 이 시대에 중년 가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마치 가겟방 의자에 앉아 십자수 놓는 심정으로 공들여 쓴 소설집이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에 반풍토설초(反風土說抄)는 작가 ‘김 선생’과 시인이자 국어전문 입시학원을 운영했던 ‘나’가 주고받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우리가 ‘소설’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어떤 ‘줄거리’ 자체를 거의 갖고 있지 않은, 담화 그 자체만이 부피를 이루는 작품인데, 공들여 읽다 보면 주술에 사로잡히는 듯하다. 무병신음기(無病呻吟記)는 현대의 가정 살림에 속한 자라면 벗어던질 수 없는 의무, 곧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지독한 형벌에 갇혀 “멀쩡한 육신을 갖고서 생병을 앓는” 중년을 보여준다. 이 ‘무병신음’은, 김원우에 따르면 “불가해한 어떤 멍에에 닿는 것인지. 피멍 들게 만드는 그 멍에 때문에 다들 시난고난하는 난민처럼 어디에서든 오막살이 신세”를 면키 어려운 현대의 병이다.

    표제작이 되는 객수산록은 명퇴를 앞둔 은행지점장의 시선으로 살핀 그와 그 주변 사람들의 복잡한 사연들을 소묘한 것이다. 김원우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중후한 산문으로, 언뜻 한가롭고 화평한 듯하면서 순식간에 불덩이처럼 타오를 것 같은 이 도심의 삶, 멀미 나는 거리의 삶, 오갈 데 있긴 하여도 그곳이 안식의 처는 아닌 삶에 대한 축약도를 그려낸다.

    오갈 데 넘쳐나도 안식처는 아닌 곳

    밥벌이 들숨 일상의 날숨 길게 누웠다
    그런 도심의 거리에서 우리는 일을 하고 바삐 걸어다니고 때로는 혼자서 밥을 먹는다. 그 순간에도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독촉을 하거나, 바로 그런 사정 때문에 누군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한사코 회피한 다음 다시 거리에 나선다. 도심 거리의 네온사인은 화려하고 큰 건물의 이마에 걸린 거대한 간판 불빛이 우리 어깨로 내려와 가만히 위로한다. 그럴 때 문득 올려다본 도심의 저녁 풍경은 때로 묵시록
    밥벌이 들숨 일상의 날숨 길게 누웠다
    적인 광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우리가 쉽게 벗어버릴 수 없는 익숙한 서정이 되었다. 마치 시인 이성복의 시 서시가 들려주는, 쓸쓸하고 애틋한 전언처럼….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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