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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의 휴대폰 문화인류학

전원을 꺼라, 내공이 커진다!

전원을 꺼라, 내공이 커진다!

전원을 꺼라, 내공이 커진다!

거리를 걸어가며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여성. 휴대전화는 이제 전기, 수도, 휘발유 같은 현대사회의 필수적인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

예전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지만 이따금 일어나는 정전(停電)은 사회와 생활 전반에 엄청난 혼란과 손실을 가져온다. 만일 통신시스템이 일시적으로 마비되거나 심각한 교란이 생긴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불미스러운 사고나 모종의 테러 공격으로 휴대전화 기지국이 모두 파괴된다면? 아마도 정전 못지않게 곳곳에 막대한 지장이 생길 것이다. 우리에게 통신은 전기, 수도, 휘발유, 식량 등과 함께 현대사회의 필수적인 인프라로 자리잡았다. 정보 네트워크는 이제 문명의 신경망 또는 생명줄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외출하면서 깜박 잊고 두고 나오면 하루 종일 불편한 물건으로서 휴대전화는 거의 지갑과 맞먹는다. 휴대전화에 교통카드나 신용카드 칩을 넣어두는 경우가 많아 지갑이 없어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 그런데 휴대전화 없이 돌아다니면 매우 허전하고, 수전증에라도 걸린 듯 손이 불안하다. 그보다 훨씬 당황스러운 것은 분실이다. 버스나 택시에 휴대전화를 두고 내린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순간 패닉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것을 되찾거나 새 단말기를 마련할 때까지의 생활은 반쪽짜리 신세다. 하필이면 그 사이 중요한 전화들이 걸려온다. 연락이 안 돼 불편했다고 지인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그러나 의외로 ‘별일’이 없었던 경우도 있다. 집에 두고 온 휴대전화를 귀가하자마자 확인해봤는데 한 통화도 걸려오지 않았다거나, 외국 출장에서 돌아와 곧바로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스팸문자만 가득한 경우다. 이럴 땐 중요한 연락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는 것이 섭섭하다. 공적인 업무와 사적인 교신이 모두 이뤄지는 휴대전화는 자아와 사회가 만나는 접점이다. 세상으로 드나드는 커다란 관문이다.

휴대전화는 참으로 편리한 기기다. 권태와 고독으로 일상이 몸부림칠 때 언제든 버튼 하나로 간단히 탈출할 수 있으니 말이다. 딱히 할 말이 없어도 일단 전화를 걸어 말을 붙인다. 통화가 안 되면 전화번호부에 올라 있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뒤진다. 별 내용이 없는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그동안 주고받은 메시지를 훑어보기도 한다. 어느덧 우리에게는 그런 온라인의 연락망이 현실세계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한국인들의 휴대전화 집착에 대한 강준만 교수의 견해를 들어보자.

“사람들이 휴대전화에 미치는 건 스스로 미치고 싶어서가 아니다. 셀룰러 이코노미라는 동력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자 ‘삶의 문법’의 가공할 위력 앞에서 홀로 저항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 휴대전화 덕분에 우리는 소통의 풍요를 만끽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도 우문임이 틀림없다. 휴대전화는 소통을 위한 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이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판타지를 공급하는 나의 주인이다.”(강준만 ‘휴대전화 노예공화국’ 한겨레21 2005년 11월9일자)



생각해보면 휴대전화가 고독을 잊게 해줬지만, 거꾸로 휴대전화 때문에 고독감이 더욱 짙어지는 면도 분명히 있다. 언제 어디서든 연락할 수 있는 환경이 소통 자체에 대한 양적인 기대치를 높이고, 외로움에 대한 내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가 조용한 몰입(flow)을 방해한다. 그것이 싫어서 휴대전화를 아예 갖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인문학계열 교수들이나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이들 중에 특히 많은데, 번잡함과 속도에 휘말리지 않고 내면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라고 한다.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만 일정한 시간에 반드시 꺼놓는 사람도 있다. ‘부모로 산다는 것’의 저자 오동명 씨는 가족들 사이의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휴대폰과 인터넷 없는 날’을 제정한다고 한다. 그와 비슷하게 프랑스의 어느 도시에서는 ‘화면 없는 이틀’이라는 이름으로 청소년들이 컴퓨터, 텔레비전,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48시간을 지내보게 하는 운동이 벌어진다. 자신이 거기에 얼마나 의존하고 탐닉하는지를 자각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삶의 질 높이려면 세상에서 격리된 시간을 확보하라

휴대전화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을 원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그런데 꺼놓은 사이 중요한 용건을 전하려는 누군가가 불편해할까봐 오랜 시간 꺼놓지 못한다. 이런 이들을 위한 서비스 하나를 통신회사에 제안한다. 하루 중에 자신이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입력해놓고, 단말기가 꺼져 있을 때 누군가 전화를 하면 자동적으로 그 사람의 화면에 그 시간이 안내되는 것이다. 매일 똑같은 시간대에만 켜놓는 사람이거나 일주일 단위로 수업시간이 똑같이 반복되는 대학생의 경우 자동으로 설정해놓으면 해당 시간마다 자동적으로 꺼지고 켜지면서 외부에 안내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런 시스템이 생긴다면 언제 통화가 될지 몰라 계속 전화를 걸어대는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되고, 받는 사람도 정해진 시간에만 집중적으로 외부와 연결할 수 있다. 대학 교수들이 ‘오피스 아워’라는 것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만 사무나 학생 면담을 보고 나머지 시간에 연구에 집중할 수 있듯, 휴대전화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을 확보한다면 업무 효율은 물론 휴식의 질도 크게 높아질 것이다.

‘하루를 쉬다’는 말을 영어로는 ‘take one day off’라고 표현한다. 전등이나 휴대전화를 끄는 것을 ‘turn off’라고 한다. ‘off’라는 부사는 무엇으로부터 떨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활 속에 얼마만큼의 시간은 세상과 타인에게서 완전히 격리될 필요가 있다. 고독 없이는 창조할 수 없고, 심심한 시공간을 스스로 메울 수 있는 내공이 있어야 타인과도 충만한 교류를 할 수 있다. 휴대전화가 도구가 아닌 주인 행세를 한다고 느껴질 때, 잠시 전원을 끄고 조용히 자신에게 말을 걸어보자.



주간동아 2008.07.22 645호 (p6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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