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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러브 액추얼리’

폭발한 영국인들의 反美 감정

  • 이명재 자유기고가

폭발한 영국인들의 反美 감정

폭발한 영국인들의 反美 감정

‘러브 액추얼리’

형형색색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 ‘러브 액추얼리’.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제목처럼 ‘10쌍 10색’의 만화경을 보여준다.

모든 커플이 다 흥미로운데, 그중에서 엄청난 신분 차이를 뛰어넘어 결실을 맺는 파격성에서는 단연 총리와 비서 간 사랑 이야기가 꼽힌다. 새로 부임한 매력적인 미혼의 영국 총리 데이비드와 총리실의 귀엽고 발랄한 여직원 나탈리. 아직도 옛 신분제적 전통이 남아 있는 영국에서 너무나 거리가 먼 두 사람이지만 서로 호감을 갖게 되면서 이 동화 같은 얘기는 시작된다.

이 영화는 결코 정치적 메시지를 띤 영화가 아니지만, 남자의 직업이 일국의 총리인 만큼 정치적 사안이 끼어들었다. 데이비드는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더는 미국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데, 여기에는 나탈리가 원인을 제공했다. 영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이 나탈리에게 추파를 던진 걸 알게 된 데이비드가 질투심과 분노를 품으면서 미국에 대한 ‘독립선언’을 결심한 것이다. 기자회견장에서 데이비드는 ‘오만하고 무례한’ 미국 대통령을 옆에 두고 작심한 듯 말한다.

“양국관계는 악화됐다. (미국) 대통령은 자국에 필요한 것만 취하려 들고 영국이 원하는 건 무시했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영국이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지를 역설한다. “우리에겐 셰익스피어, 처칠, 비틀스, 숀 코너리, 해리 포터도 있고 데이비드 베컴의 오른발, 아니 왼발도 있습니다.(웃음)”

“위협하는 자는 친구가 아니고, 힘에는 힘이며, 영국도 강해질 것이니 미국은 대비하라”는 웅변. 영국인들은 이 장면에서 속이 후련했을 것이다. 블레어 정권의 친미를 넘어선 대미 맹종에 치를 떨어온 영국인들에게 영국을 대표하는 감독과 배우가 출연한 이 영화는 한바탕 카타르시스를 주었을 것이다. 데이비드 총리를 연기한 휴 그랜트가 영국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영국 총리감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영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불쾌감은 미국 자체보다는 부시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전 유럽인이 반기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부시는 공화당에서도 예외적 존재라고 할 정도로 유례없는 함량미달의 지도자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러브 액추얼리’에 나오는 미국 대통령처럼 무지하고 경박하며 오만한 사람이다.

유럽인들은 이미 이를 알고 있었으나, 정작 미국인들은 뒤늦게야 깨달았다. 지금은 그런 사람을 뽑은 걸 후회하고 수치스럽게 여긴다. 20%대의 사상 최저 지지율이라면 사실상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다. 그런 이가 곧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한미 동맹도 좋고 선린도 좋지만, 부시와 어떤 관계를 맺는 게 진정한 실용주의인지 냉정한 타산이 필요하다.



주간동아 2008.07.15 644호 (p76~76)

이명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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