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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이 만난 영화, 영화인

가족해체 시대, 여성들이 사는 법

경순 감독의‘쇼킹 패밀리’

  • 하재봉 영화평론가

가족해체 시대, 여성들이 사는 법

가족해체 시대, 여성들이 사는 법

경순 감독은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 ‘쇼킹 패밀리’를 촬영했다. 그는 가족 이기주의를 벗어나자는 뜻에서 성을 쓰지 않고 ‘경순’이라는 이름만 쓴다.

독립 다큐멘터리 ‘쇼킹 패밀리’는 가족해체 시대 여성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감독 경순을 중심으로 ‘쇼킹 패밀리’ 제작부와 그 주변 인물들의 삶까지 화면에 전개된다. 이혼 후 딸과 함께 사는 감독 경순의 삶이 영화의 중심이지만, 경순의 삶을 찍는 ‘쇼킹 패밀리’ 제작부원들, 사진 스크랩을 맡은 경은, 촬영감독 세영의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 인물들의 삶이 전개되면서 우리 시대 여성들의 삶을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연결방식에 미학적 야심이 부족하고 전개방식이 치밀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가 던지는 문제의식은 중요하다. 즉 주제의 착지점이 좋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또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무엇인가. 영화는 우리 시대에 꼭 이야기돼야 할 이런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쇼킹 패밀리’ 제작진은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돼 있고, 영화 속 등장인물도 거의 여성이다. 그들의 성생활을 비롯해 사생활이 솔직하게 노출되기 때문에 관객들은 저절로 타인의 삶에 개입하게 된다. 관객들은 그들의 생활을 노골적으로 엿보며 낄낄거리다가도 여성들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가부장제 사회의 권위와 질서가 아직까지 유효한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손으로 여성들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 사회가 전개돼온 인류 역사에 가장 도전적인 사고는 페미니즘이다. 남녀의 성적 차이는 인정하지만, 성의 차이에 따른 차별은 하지 말자는 것이 페미니즘의 기본 정신이다. 삶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제작진·등장인물 대부분 여성 … 성생활 등 사생활 솔직하게 노출

‘미망인’(1956년)을 만든 박남옥 감독의 뒤를 이어 ‘여판사’(1962년)의 홍은원 감독, ‘민며느리’(1965년)의 최은희 감독, ‘첫 경험’(1970년) ‘슬픈 꽃잎이 질 때’(1971년)의 황혜미 감독, ‘수렁에서 건진 내 딸’(1984년)의 이미례 감독 등 그동안 여성 감독들이 활동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여성 영화인들의 활동은 인적 자원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활동 영역에서도 전방위적이다. 특히 여성의 시각으로 여성의 삶에 접근한 작품을 많이 만들고 있다.



개중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다룬 ‘낮은 목소리’ 시리즈를 만든 변영주 감독처럼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극장용 장편 상업영화(‘밀애’ ‘발레교습소’ 등)로 장르를 옮긴 감독도 있다. 그러나 ‘쇼킹 패밀리’의 경순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고집하고 있다. 그는 서른 살이 넘어 영화에 입문한 늦깎이지만 그의 활동은 눈부시다. 그의 영화동지라고 일컬어지는 최하동하 감독과 ‘빨간 눈사람’이라는 독립영화제작소를 만들어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를 발표했다. 최하동하 감독과는 번갈아가면서, 한쪽이 영화를 찍을 때 다른 사람은 아르바이트하면서 영화 찍을 자금을 모은다고 한다. 각종 지원금을 받아도 실제 영화 찍을 제작비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를 찍기 위해 고깃집에서도 일하고 신문배달도 한다.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 소속 어머니들의 활동을 찍은 경순 감독의 데뷔작 ‘민들레’는 자식의 억울한 죽음 이후 잘못된 사회체제에 눈뜨고 변화를 요구하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때 강한 모성주의를 바라보면서 경순 감독은 이미 ‘쇼킹 패밀리’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지난해 9월 열린 베를린 아시아여성영화제에 초청됐다.

가족해체 시대, 여성들이 사는 법
경순 감독의 영화가 갖는 특징은 문제의식 못지않게 그 방법론에서 유머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실제 ‘쇼킹 패밀리’ 홍보전단에는 ‘미국에 마이클 무어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경순 감독이 있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쇼킹 패밀리’라는 제목부터가 모든 가족이 다 ‘쇼킹 패밀리’이기 때문이란다. 다큐멘터리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그의 성격이기도 하다. 경순 감독의 말을 들어보면 무엇 하나 머뭇거리지 않는다. 그는 시원시원하게 질문에 대답한다.

“나는 개인주의를 주장한다.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아니라, 개인을 존중하자는 개인주의다. 나는 이것이 이기적인 가족주의가 갖는 폐해를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가족 혹은 어느 집단의 구성원으로만 존재한다. 소통은 하지만 막상 일대일로 만나면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에서 너무나 서툴다.”

지난해 베를린 아시아여성영화제에 초청

그래서 그는 성을 쓰지 않고 ‘경순’이라는 이름만 쓴다. ‘쇼킹 패밀리’의 다른 스태프도 경은, 세영, 이렇게 이름만 쓴다. 가족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자는 뜻이다. 지금 우리의 가족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억압하고 구속하지 않는가? “섹스는 하고 싶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나고 싶을 때만 만날 수 있는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쇼킹 패밀리’에서 경순 감독은 고백한다.

‘쇼킹 패밀리’는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모성에만 기대지는 않는다. 가족 내에서 아버지 등 남자들과의 관계도 있는 그대로 담겨 있다. 영화 소품 일을 하는 경순 감독의 아버지가 대종상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을 때나 경순 감독의 남동생이 결혼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경순 감독 가족 내부의 남녀관계로 시선이 옮겨간다. 이혼한 경순 감독의 친어머니는 자신의 아들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다. 경순 감독의 아버지는 전부인이 자식의 결혼식에 오는 것을 완강히 반대한다.

현재 경순 감독은 ‘레드 마리아’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역시 여성의 삶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는 여성해방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주간동아 2008.05.13 635호 (p80~82)

하재봉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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