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5

2008.05.13

전북 완산갑 이무영 당선자 외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8-05-07 15: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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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30일 임기가 시작되는 18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금배지를 다는 초선의원은 137명. 그중 ‘차세대 리더’ ‘주목받는 초선’으로 꼽히는 28명을 7주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전북 완산갑 이무영 당선자 외

    1944년생<br>전주상고<br>동국대 행정학과, 경찰 간부후보 19기<br>경찰청장

    전북 완산갑 이무영 당선자“정치문화 개혁에 온몸 던질 터”

    18대 총선을 통해 정계에 진출하기까지 이무영(63) 당선자에게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당선자는 전북 출신으로는 최초이자 유일한 경찰청장이다. 1999년 11월 경찰청장에 오른 이후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잘나가는’ 각료그룹의 선봉장이었다.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던 경찰의 근무환경을 혁신해 경찰 내부의 절대적인 지지도 받았다.

    이 당선자는 또 신(新) 집회 및 시위관리대책을 마련하고 비폭력 시위를 유도하기 위해 여성경찰을 시위현장에 투입했다. 경찰 안팎의 인기에 힘입어 그는 유력 경제지인 ‘비즈니스 위크’에서 선정한 아시아 스타 50인에 선정되는 영광도 안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2001년 11월 수지 김 사건에 연루돼 30년 경찰공직 생활을 불명예스럽게 접어야 했던 것. 당시 이 당선자는 수지 김 수사에 대해 내사중단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구속 기소됐다. 2003년 9월26일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기까지 2년여 간 이 당선자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 당선자는 “사건이 불거졌을 때까지도 분당 옆 수지는 알았어도 수지 김이라는 사람은 전혀 몰랐다”고 당시 답답했던 심경을 전했다.

    그가 2004년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명예회복을 위해서다. 열린우리당 장영달 의원을 상대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나서 정면대결을 펼친 것. 하지만 당시 전국을 강타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역풍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4년간 지역기반을 다진 그는 18대 총선을 앞두고 통합민주당 공천심사 과정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지역 민심에 직접 호소하고 나선 것.

    이 당선자는 “선거기간 내내 하루에 2만보씩 걸었다. 구두 두 켤레가 다 해졌다. 전국 어느 후보도 나만큼 걷지 않았을 것이다. 그 덕분에 지역주민들이 기회를 준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거기간 만난 사람들에게서 이제 더는 이념싸움을 하지 말고 민생을 살릴 수 있는 생활정치를 해달라는 주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이 당선자. 그는 “낙후된 지역발전과 경찰문화를 개혁했던 것처럼 정치문화 개혁에 온몸을 던질 계획”이라고 다짐했다.

    전북 완산갑 이무영 당선자 외

    1964년생<br>서울대 치과대학<br>제38회 사법시험<br>대외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전현희 당선자“사회적 약자 위해 헌신하겠다”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7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전현희(43) 당선자는 ‘치과의사 출신 변호사 국내 1호’라는 타이틀로 잘 알려진 법조인이다. 전 당선자는 그간 전공을 살려 보건의료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혈우병 환자들의 집단적 에이즈 감염에 대한 무료 변론과 적십자사 혈액관리 부실에 대한 문제제기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보건복지 관계자들은 “야당의 새로운 여전사(女戰士)가 등장했다”며 벌써부터 높은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 정치입문 계기가 있다면?

    “그간 소비자운동에 참여하면서 보건의료 관련 법률과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국회의원들을 만나 설득해보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자연스레 ‘내가 직접 문제를 해결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보건의료복지 정책 전반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 제시에 전념하겠다.”

    - 민주당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당이 사회적 약자에 배려하는 당이라고 판단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그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 정치 철학으로 해석해도 될까.

    “그렇다. 한 가지 추가하자면 정치란 좋은 정책을 가지고 국민에게 행복을 주어야 한다.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생활정치라는 틀 속에서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고,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 국민의 손에 뭔가를 쥐어줄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고 싶다.”

    - 꼭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

    “소외계층의 의료복지 확대에 중점을 둘 생각이다. 암환자를 비롯해 만성질환 국민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싶다. 또한 고령화 사회를 맞아 기초노령연금, 노인 일자리 사업 창출 등을 통해 노인의 소득보장 강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경북 구미 출신인 전 당선자는 민주당으로서는 영남지역 인재 수혈과도 무관치 않다. 특히 전 당선자의 남편은 현직 검사(수원지검 김헌범 검사)이고 남동생은 변호사, 남동생의 아내 역시 약사 출신 변호사일 정도로 법조 집안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전북 완산갑 이무영 당선자 외

    1965년생<br>서울대 외교학과<br>제22회 외무고시, 제35회 사법시험<br>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

    부산 북·강서갑 박민식 당선자“서민의 삶 개선 위한 생활정치 다짐”

    박민식(42) 당선자가 건넨 총선용 홍보명함에는 ‘사법·외무고시 2관왕, 전(前) 국정원장을 구속한 불도저 검사!’라고 새겨져 있다. ‘불도저’라는 별명은 한번 사건을 맡으면 안 놓는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별명에 걸맞지 않게 박 당선자의 눈매는 선하다.

    박 당선자의 아버지는 그가 일곱 살 때인 1972년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했다. 갑작스레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는 6남매를 이끌고 경남 거창을 떠나 부산으로 향했다. 그가 부산에서 가장 낙후됐다는 ‘북구 구포’와 연을 맺게 된 계기다.

    - 왜 외교관도, 검사도 아닌 국회의원인가?

    “어릴 때부터 정치에 꿈이 있었다. 현실적인 측면도 있었는데, 내가 졸업한 100년 역사의 구포초등학교가 이제껏 국회의원 당선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우리를 대변할 정치인이 없다’는 지역민들의 소외감도 클 수밖에 없었다. 지역민들에게 주목받는다는 느낌도 총선 출마 결심에 도움이 됐다.”

    박 당선자는 특수부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 시절 국가정보원 도청 사건의 주임 검사로 국정원을 사상 최초로 압수수색하고 임동원, 신건 두 전직 원장을 구속시킨 주인공이 바로 그다. 공천 과정에서는 친(親)이명박계의 중진이자 법조 선배인 정형근 의원을 밀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고향에 내려갔다. 그런데도 고향분들은 특정 계보가 아니라는 점이 오히려 참신하다고 평가해주더라.”

    - 세대상으로는 386인데, 데모는 해봤나?

    “물론이다. 하지만 386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대학시절에는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이다. 참여는 했지만 주도적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비겁하게 수업에 참여하는 스타일도 못 됐다.”

    - 지금 갖고 있는 정치적 화두는 무엇인가?

    “어릴 때부터 보수적이었다. 특별한 이념을 좇기보다는 서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생활정치가 맞다고 생각했다. 검사를 11년이나 했기 때문인지 아직도 검사 마인드가 강하다. 검사 시절 ‘나쁜 놈들이 발 뻗고 못 자게 하고, 피해자를 위해 울 수 있는’ 검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정치인이 되고 싶다.”

    전북 완산갑 이무영 당선자 외

    1969년생<br>서울 서문여고<br>서울대 공법학과, 제38회 사법시험<br>변호사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이정희 당선자“여성인권·한미관계에 의정활동 초점”

    이정희(39) 당선자는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2000년부터 줄곧 한미관계와 미군범죄, 호주제 폐지 등 여성문제에 앞장서 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여성복지위원회 위원장과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공동대표도 지냈다. 호주제 폐지, 매향리 미군 폭격장 주민 집단피해소송사건, 군산 성매매 업소 화재사건, 호주제 위헌심판 청구 등이 그가 해결한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서울대 공법학과 출신인 이 당선자가 사회운동가의 삶을 살게 된 계기는 우연하게 찾아왔다. 학생운동을 하던 때인 1992년, 이 당선자는 동두천에서 한국인 성매매여성과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6세 여자아이를 만난 뒤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그해 10월 동두천에서 발생한 기지촌 여성 윤금이 씨 피살사건은 이 당선자가 인권변호사와 사회운동가로 나설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이 당선자와 민주노동당의 인연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올 3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으로부터 비례대표 출마 제안을 받은 뒤 입당과 출마를 결심한 것. 그의 말이다.

    “남북관계, 한미관계 등에 대해 민주노동당과 비슷한 처지에서 일해왔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이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여성인권, 한미관계 등 그동안 관심 갖고 해왔던 사회문제들을 법정이 아닌 정치영역에서 실천한다는 생각으로 의정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이 당선자는 언제나 현장을 강조한다. “집회보다는 현장에 많이 가야 하고, 현장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환경미화원 출신의 홍희덕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당선자와 역시 현장의 삶을 살아온 강기갑 의원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1살, 9살짜리 아이 둘을 둔 엄마이기도 한 이 당선자는 18대 국회 재경위원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전공분야인 한미관계를 다룰 수 있는 국회통일외교통상위원회를 지원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욕심과 계획은 여전하다.

    “민주노동당은 의원 수가 적어 한 사람이 몇 개 상임위를 맡아야 하는 상황이다. 재경위원의 일도 열심히 하겠지만 한미관계, 성매매 여성들과 관련된 일에도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다. 특히 성매매 방지법의 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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