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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성화 대신 자연보호 현수막 봉송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올림픽 성화 대신 자연보호 현수막 봉송

올림픽 성화 대신 자연보호 현수막 봉송

지난해 10월 환경보호 행군 중 잠시 쉬고 있는 ‘조롱박 부자(父子)’ 김창현씨(오른쪽)와 아들 영규 군.

베이징올림픽 성화(聖火·Olympic torch) 봉송 주자가 성화 대신 ‘현수막 봉송’에 나섰다.

대전에서 수학학원을 운영 중인 김창현(44) 씨는 최근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뛸 수 있는 기회를 포기했다. 신문에서 티베트 독립시위를 진압하는 중국 공안의 곤봉세례를 피하는 승려들의 사진을 보고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우리도 일제강점기를 겪었잖아요. 티베트 사람들을 도와주진 못해도 최소한 항의 표시 정도는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이 불편했거든요.”

4월27일(국내 성화 봉송일)을 기다리며 준비한 유니폼과 신발은 이미 ‘용도 전환’됐다.

“저의 (성화 봉송) 포기가 중국에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다 보면 바위를 뚫을 수도 있고….”



성화 봉송 주자가 된 사연이 궁금했다.

“지난해 대전에서부터 금강하구까지 ‘지구에서 종이컵을 몰아냅시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약 77km를 걸었거든요.”

2004년부터 ‘종이컵 대신 조롱박 쓰기’ 환경운동을 펼쳐오고 있는 그는 지난해 아들 영규(10) 군과 2박3일간 환경보호 ‘행군’을 했다. 이 사실이 신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한 올림픽 후원 기업이 성화 봉송 주자 제의를 했고,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환경운동을 시작한 계기를 묻자 “돈이 없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충남대 농업기계학과를 졸업한 그는 제주도에서 8년여 동안 학습지 교사를 했다. 이때 아이들에게 수학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 교구가 필요했는데, 교구를 살 돈이 늘 부족했다. 결국 골판지 등 버려진 물건을 교구로 재활용하면서 환경보호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쓰레기 재활용 교구’는 버려진 피자 박스를 이용해 주사위를 만들어 정육면체를 설명하는 식이다. 당시 자신의 교수학습 경험을 토대로 4년여의 연구 끝에 최근 교구수업 프로그램인 ‘우뇌 기록법’을 완성했고 출판도 앞두고 있다.

그리고 또 한 번 환경보호 강행군을 시작했다. 아들과 함께 현수막을 들고 4월19일 대전을 출발해 1번 국도를 따라 상경, 25일 서울에 도착하는 ‘2차 환경보호 대장정’에 돌입한 것. 서울시청과 대전시청에서 무료로 ‘조롱박’도 나눠준다. 올림픽 성화 봉송보다 자연보호 현수막 봉송이 더 값지고 행복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제 소변이 강으로 흘러 수증기로 변하고, 구름이 돼 지구를 돌아요. 인류의 모든 것은 하나의 물을 먹고 사는 ‘한 생명’인 거죠. 그래서 다 같이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조롱박 부자(父子)’도 마찬가지예요.”

인터뷰 끝 무렵 다소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참, 기자님. 조롱박은 옛날 호리병박으로 만든 바가지가 아니에요. 스테인리스 컵이에요!”



주간동아 2008.04.29 633호 (p94~94)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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