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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

로봇 한의사 진맥 편작(중국 전국시대 명의)도 울고 간다

한국한의학硏 ‘명의’ 프로젝트 눈부신 발전 … 설진·체질정보 등 진단 과학화 박차

  • 대전=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로봇 한의사 진맥 편작(중국 전국시대 명의)도 울고 간다

로봇 한의사 진맥 편작(중국 전국시대 명의)도 울고 간다

‘로봇 한의사’ 의 진맥 결과를 설명하는 김종열 책임연구원(왼쪽). 기자에겐 ‘땀나는 운동’ 처방이 내려졌다.

한국한의학연구원 김종열 책임연구원(한의학 박사)이 PC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린다.“편안하시죠? 진맥을 시작하겠습니다. 왼쪽 손목을 올려주세요.”

혈압측정기를 이용하듯 ‘로봇 진맥기’의 손목 거치대에 손목을 올리자 막대 센서가 ‘윙~’ 하는 작은 기계음을 내며 천천히 손목 근처로 다가온다. 자리를 잡았다는 뜻일까. 센서가 손목의 맥 위치로 내려온다. 지그시 누르는가 싶더니 이내 센서는 강약을 조절하며 맥을 짚는다. 때론 위로, 때론 아래로 조금씩 자리를 이동하며 마치 천천히 내려갔다 올라가는 재봉틀 바늘처럼.

28자리 맥 중 10자리 짚어내는 수준

“센서가 움직이면서 맥을 짚는 촌(寸), 관(關), 척(尺) 세 자리를 진맥한 거예요. 한의사들이 진맥할 때 보통 세 손가락으로 하는 것도 이 세 자리 때문이죠.”

옆에 있던 김근호 선임연구원(공학박사)이 조용히 설명한다.



2분여 지났을까. 열심히 진맥하던 센서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모니터에는 각종 그래프가 그려졌다. “음.” 나지막한 소리를 내며 유심히 모니터를 지켜보는 김 선임연구원의 표정이 사뭇 무겁다. 검진 결과를 기다리는 환자의 마음이 이럴까.

“200mmHg(압력 단위)에서 맥이 가장 커졌네요. 기(氣)를 쓰기보다 저축을 더 잘하는 체질이고…. 기를 활성화하는 게 좋아요. 땀나는 운동을 하는 게 보약이네요.”

‘로봇 한의사’의 진맥은 기를 잘 돌게 하는 ‘운동 처방’으로 이어졌다.

로봇 한의사 진맥 편작(중국 전국시대 명의)도 울고 간다

설진기에 ‘메롱’ 하고 있는 기자.

잠시 뒤, 진맥기 옆 ‘설진기 한의사’ 앞에 앉았다. 혀의 색깔, 형태, 설태(舌苔·혓바닥에 끼는 흰색이나 회색, 황갈색의 이끼 물질) 등을 보고 질병을 진단한다는 ‘설진(舌診)’은 간단했다. 대형 망원경처럼 생긴 설진기 진입부에 이마를 대고 ‘메롱’ 하고 있다가 두세 번 플래시가 터지면 끝. 모니터에 혀 사진이 뜨고 ‘설태보기 샷’을 ‘클릭’하니 혀뿌리 부분에 일부 황태가 나타났다.

“황태는 열사(熱邪·병의 원인이 되는 뜨거운 기운)가 혀 표면에 반영된 상태예요. 열이 좀 있네요. 한방 처방을 한다면 열을 내리는 약을 쓰겠죠.”

김 선임연구원의 처방이다. 그는 흔한 설태는 한의사마다 같은 소견을 보이지만 백태 홍태 황태 등이 섞인 혼합태의 경우 소견이 크게 달라진다고 했다. 한의사의 몸 상태와 주변 분위기에 따라 ‘보는 눈’이 달라지기 때문인데, 기계가 오히려 설태를 정확히 구별해준다고 한다.

두 로봇 한의사의 검진 결과는 ‘통합 한방진단 시스템’으로 옮겨져 종합 분석됐다.

“‘로봇 한의사’들의 검진 결과에 ‘인간 한의사’들의 깊이 있는 진료가 더해지면 한의학 진료 수준은 몇 단계 올라갈 겁니다.”

김종열 책임연구원의 얼굴에 자신감이 비쳤다.

4월16일 찾은 대전 한국한의학연구원 의료연구부 연구실에는 로봇 진맥기와 로봇 설진기 등 ‘로봇 한의사’들이 ‘개업의’를 꿈꾸며 내공을 키우고 있었다. 지도교수는 김종열 김근호 연구원. 김 책임연구원은 ‘한의학의 과학화’를 주장하며 2004년부터 한 벤처기업과 로봇 진맥기를 개발해왔는데 최근 시제품을 선보였다. 현재는 알려진 28자리의 맥 가운데 10자리를 짚을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문제는 정밀도. 반복 측정을 하더라도 로봇 진맥기의 진맥 결과가 정확히 같게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 김 책임연구원은 1996년부터 8년간 전북 익산시의 익산원광한의원장으로 일하면서 수집한 1만2000여 환자의 체질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화했다. 설진기는 3000여 명의 임상자료를 활용했다.

로봇 한의사 진맥 편작(중국 전국시대 명의)도 울고 간다

로봇 설진기가 분석한 기자의 혀. 선홍색 설질(A)과 혀 뿌리 부분에 나타난 설태(舌苔)를 보며 내장 기능과 위장 질병 예후를 판단한다.

지난해부터 체질정보은행 운영

“로봇 한의사의 머리는 연구팀이, 손은 벤처기업이 만든 거죠.”

기업은 장치 등 하드웨어를, 김 책임연구원은 핵심 진맥과 설진 알고리즘을 개발했다는 얘기다.

“진맥은 맥파의 압력과 주파수만 측정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28자리의 모든 맥을 로봇이 짚을 수 있으려면 맥파의 폭과 길이, 최대 맥압이 느껴지는 깊이(부침)까지 측정하고 이에 대한 파동학적 분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여기에 성별, 연령별 데이터를 수집해 영역 데이터별로 표준점수를 구하고 질병 상태에서 어떤 변수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분석이 이뤄져야 비로소 한방진단 콘텐츠가 완성된다고.

“한의사들이 2000명을 치료했다고 해도 근거가 없습니다. 한의사의 그날 컨디션에 따라 처방도 달라지죠. 객관화할 자료가 없다는 게 한의학 연구의 걸림돌입니다.”

그는 경험상 3명의 한의사가 한 사람을 진맥해 각자 기록한 뒤 진맥 결과를 맞춰보면, 3명의 (진맥 결과) 일치율은 30% 미만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다면 언제쯤 ‘일치율 100% 로봇 한의사’를 만나볼 수 있을까. 김 책임연구원은 객관화된 데이터가 언제 수집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진맥기와 설진기를 개발하면서 느낀 ‘데이터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체질정보 수집체계 구축을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의 체형과 사진, 음성, 성격, 약리반응, 질병력, 생물학적 혈액검사 자료 등을 ‘체질정보은행’으로 DB화하는 작업이다. 현재 전국의 한방병원 9곳, 한의원 2곳과 협약을 맺어 정보를 수집 중이다. 일부 병원에는 로봇 진맥기도 보냈다.

“최소 5만명 정도의 체질정보를 모으려 합니다. 한의학 과학화의 시금석이죠. 10년 정도에 걸쳐 이런 방대한 작업이 완성되면 세계 의학계도 깜짝 놀랄 겁니다.”

작업이 끝나면 체질이 정확히 판단된 사람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사상체질, 체질의 유전 경향, 체질 유전자 발견 등에 이용할 수 있으며 세상이 공인하는 ‘객관적인’ 한의학 임상 논문도 쓸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로봇 한의사’들의 정밀도를 높일 수 있는 것도 ‘일언지하(一言之下)’다.

‘얼굴 분별기’ 도 조만간 개발 가능

지난해 개발을 시작한 로봇 한의사 세 번째 버전인 ‘얼굴 분별기’의 개발도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단다. 얼굴 분별기는 안색과 이목구비 생김새로 병을 진단하고 예측하는 기기로, 현재 1000여 명의 자료를 확보했다. 콧날이 낮은 사람의 심폐기능이 떨어진다는 등의 한의학 소견을 활용한 것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체질정보 은행을 활용한 ‘업그레이드’형 로봇 한의사와 유비쿼터스 기반을 활용하면 ‘1가구 1한의사 시대’도 머지않았다고 예상했다. 평소 지병이나 몸 상태를 입력해놓은 뒤 침대 옆에는 진맥 센서를, 화장실 세면대에는 설진기를 설치해 매일 몸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는 것. 갑자기 건강지수가 떨어지면 병원을 찾으면 된다.

‘로봇 명의(名醫)’가 대거 등장하면 한의사들은 어떻게 될까.

“진맥이나 설진 테크닉만 가지고 (진료)하는 한의사들은 오래 못 갑니다. 한의사라면 모든 검진 결과를 고려해 어떤 처방을 할지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있어야죠.”

걱정은 없을까. “국내만으론 (시장이) 작습니다. 그래서 서양 의사들도 대체의학 기구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 제품을 만들 계획입니다. DB작업도 그래서 더 필요한 거고요.”

그의 열정은 한 의학전문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도 읽을 수 있다.

“서양의학도 청진기 같은 도구로 소박한 진단을 했고, 지금도 X-레이 판독은 사람 눈에 크게 의존한다. 하지만 공학 발달로 다양한 영상 진단기와 생화학적 분석법이 개발되면서 지금처럼 진단이 과학화되고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된 것이다. 우리도 한의학 진단을 과학화해야 한다….”

김종열 책임연구원은 누구?

공대 출신… 개척하는 삶 진행형


로봇 한의사 진맥 편작(중국 전국시대 명의)도 울고 간다

김종열 책임 연구원은 로봇 한의사와 유비쿼터스 기반을 접목한 ‘1가정 1한의사’ 시대를 예고 했다.

다소 ‘루틴’한 답을 예상했다. 김종열 책임연구원에게 “한의사가 된 계기가 뭐냐”고 물으면서다. 그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창의력으로 개척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의아했지만 그의 경력을 듣다 보니 이해가 됐다. 서울대 건축학과와 카이스트(KAIST) 대학원 토목과를 나온 그는 한국건설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런데 어느 날 축구를 하다 발목을 다쳐 한의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사상의학에 따른 처방을 받으면서 만성질환인 설사병까지 나았다. ‘소음인 김 박사’의 30년 지병은 그렇게 완치됐다. 이후 한의학에 푹 빠졌고, 결국 ‘괜찮은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그때 병을 고쳐주신 한의사 선생님은 ‘당신 같은 사람이 한의학을 배우면 공부 못한다’ ‘한의학은 체계화가 안 돼 커리큘럼도 엉터리다’며 말렸습니다. 그래서 더욱 한의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한 뒤 1996년 전북 익산으로 갔다. 원불교 재단인 익산원광한의원 원장으로 일하며 1만2000여 명의 체질정보를 DB화했다. 연구를 위해 임상 데이터가 필요했던 것. 8년간 모은 데이터를 들고 한국한의학연구원에 입성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2005년에는 우연히 만난 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현 건국대 총장)에게 “30초만 말하겠다”며 면담 시간을 얻었고, 그 자리에서 ‘한의학 과학화의 필요성’을 주장해 지원을 얻어냈다. ‘개척하는 삶’은 그렇게 진행형이었다.김종열 책임연구원은 로봇 한의사와 유비쿼터스 기반을 접목한 ‘1가정 1한의사’ 시대를 예고했다.




주간동아 2008.04.29 633호 (p64~66)

대전=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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