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5

2017.02.15

정치

박근혜 대통령의 산실? TK는 정중동 변신 중!

탄핵정국 맞아 보수의 아성에서 여야 결투의 장으로 변모

  • 박재일 영남일보 편집국 부국장  ·  정치부문 에디터 park11@yeongnam.com

    입력2017-02-10 16: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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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TK(대구·경북)에서 기록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는 데 성공한다. 이른바 ‘8080’이라고 해서 80% 투표율에 80% 득표율을 거머쥐었다. 대선 승리의 큰 밑천이었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TK에서 표차는 201만 표였다. 전국 표차 108만 표를 생각하면 그 위력을 짐작할 만하다.

    TK는 보수의 적통, 보수의 심장으로 불린다. 역대 대선에서도 그랬고, 또 총선에서도 줄기차게 보수성향을 보여왔다. 대구의 경우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59.6%·정주영 19.4%)을 필두로 97년 이회창(72.7%), 2002년 이회창(77.8%), 2007년 이명박(69.4% · 이회창 18%), 그리고 2012년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보수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상대적으로 호남의 몰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득표수는 훨씬 많았다. 총선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한때는 ‘27 대 0’이었다. 2012년 총선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이 TK 27개 선거구 전 의석을 휩쓸었다.



    복잡 미묘한 TK 민심

    지역사회에서는 ‘일당독점’의 폐해가 우려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TK가 흔들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가 기름을 부었다. 그 종착점이 어디일지는 현재로서는 가변적이다. TK가 정치적 아노미에 빠졌다는 말도 나온다.

    대통령 권력을 둘러싼 희귀한 국정농단 사태는 TK라고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었다. 믿고 싶지 않은 사태가 목도되고 있다고나 할까. TK의 정치적 정서가 일거에 흔들렸다. ‘영남일보’가 신년 기획으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박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해 대구·경북민은 ‘찬성’ 48.1% 대 ‘반대’ 39.5%를 나타냈다. ‘잘 모름’은 12.4%였다(대구·경북민 1022명 대상. 조사기간 12월 27~29일. 자동응답 및 무선전화응답 방식 혼용.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늘 50%를 넘어 전국에서도 최고치를 기록하던 것과는 상황이 반전됐다.



    그나마 촛불집회 초기 탄핵 찬성 쪽 기운이 우세하던 분위기가 시간이 흐르면서 찬반양론이 팽팽해지고 있는 것. 양측 주장이 점차 견고해지며 격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찬반이 48 대 47로 딱 갈렸다.

    대구 여론조사 전문기관 폴스미스의 이근성 대표는 “여러 번 조사를 해보지만 찬반이 반반 수준을 오가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젊은 층과 중·장년층의 세대 간 격차가 크고, 특히 최근 탄핵 찬성 쪽은 좀 느슨해지는 반면, 탄핵 반대 쪽은 결집도가 강하게 나타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현장 목소리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대구에서 개업한 50대 변호사 A씨는 탄핵사태에 대해 “애초부터 탄핵은 무리한 사실관계가 무수했다. 어느 것 하나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있는 결정적 사안이 없다”며 “무슨 재단을 설립했다고 하지만, 대통령이 그 정도 일도 못 한다면 어떡하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탄핵 찬성 쪽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공박한다. “박 대통령에 대한 일방적 충성도는 지역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얘기에서부터 “정치적 찬반을 떠나 합리적 상식으로 이번 사안을 판단해야 한다”는 논거까지 다양하다. 찬반 격론은 다른 지역보다 대구·경북에서 유독 거센 것으로 짐작된다.



    우파의 조직화 현상?

    탄핵이라는 대파도가 덮친 지난 수개월간 수세에 몰려 있던 강성보수가 최근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른바 태극기집회(탄핵 반대 집회)다. 일각에서는 대구·경북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박 대통령 탄핵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우파의 조직화’란 새로운 현상까지 엿보인다고 진단한다. 우파가 관제 동원 수준의 데모에서 벗어나 일정 수준 자발적인 조직화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설 이틀 전인 1월 26일 대구의 명동인 동성로 일대에서는 이른바 박 대통령 탄핵반대를 주장하는 태극기집회가 있었다. 정치집회에 비교적 인색한 보수도시 대구에서 열린 이날 집회는 열기와 참여 인원 면에서 굉장히 이례적이고 규모도 컸다. 경찰은 논란이 있다며 집회 참가 인원을 아예 발표하지 않았지만, 대략 2000~3000명으로 추산된다. 주최 측은 이날 집회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를 놓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적잖은 논쟁을 낳았다. 언론이 태극기집회를 의도적으로 축소한다는 주장과 함께 집회 참가자들을 ‘어르신 친박(친박근혜) 보수세력’으로 축소해 규정한다는 것. 주최 측은 일반시민도 가세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촛불이든, 태극기든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지지만 태극기집회의 경우 그 동력이 일정 부분 TK에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집회에는 대구를 지역구로 둔 친박 핵심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대구 달서병)과 김진태 의원(강원 춘천)에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도 모습을 보였다. 정 전 아나운서는 집회에서 “국가를 위해 불철주야 헌신해온 대통령을 온갖 추잡한 조작으로 탄핵안을 가결하고, 청와대에 감금해놓은 채 모욕을 주고 국격을 떨어뜨린 자들이 누구인가. 사드보다 북핵이 더 좋다는 자들이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탄핵정국에서 공개적인 언급을 꺼려오던 조원진 의원은 작심 발언을 했다. 조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거짓과 조작과 선동으로 만들어졌다”며 “태극기집회가 인원도 많고 요구도 많은데, 정치권이 전혀 받아주지 못하고 있다. 보수의 중심 대구·경북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태극기집회의 반격은 박 대통령이 인터넷언론과 한 전격 인터뷰에서 ‘탄핵이 큰 거짓말로 쌓은 기획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면서 불붙은 측면이 있다. 태극기집회는 2월 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탄핵 반대 태극기 집회’로 이어졌다.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와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을 비롯한 친박계 인사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새누리당 대구 수성갑 당협위원장)까지 가세했다. 김 전 지사는 한때 박 대통령에 대한 즉각적인 탄핵소추와 출당 조치를 공식 촉구한 바 있지만 최근 입장을 180도 바꿨다.



    고심에 찬 TK 정치인들

    조 의원의 태극기집회 참가에도 새누리당 TK 의원들의 입장은 미묘하다. 조 의원 외 현장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은 없다. 그만큼 TK 민심이 복잡 미묘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딜레마에 빠진 대표적인 인물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이다. 그는 지난해 총선 당시 공천파동 속에서 대구 동구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했다. 스스로 TK 적자라고 자부하지만, 대선가도에서 그 자부가 시험대에 올랐다. TK 출신이지만 TK 지지율이 아직은 민망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TK에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물론, 안희정 충남도지사에게도 못 미치는 수치가 나온다. 여지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대선가도에서 지역적 자산을 바탕으로 눈덩이를 불려야 하는 그로서는 애가 타는 상황이다.

    TK에서 예상외 부진 뒤에는 역시 박 대통령과 유 의원의 이른바 ‘배신의 정치’가 자리한다. 그는 2015년 6월 박 대통령이 지목한 배신의 정치 당사자다. 박 대통령은 국민이 심판해달라고 했다. 유 의원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응수하며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상황은 역전돼 유 의원이 박 대통령 탄핵을 사실상 주도했다.

    이런 얽힌 만남은 유 의원의 대선가도에 걸림돌이 됐다. 그를 따라 나온 TK 의원은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대구 수성을)밖에 없다. 당초 강석호(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김상훈(대구 서구), 곽대훈(대구 달서갑) 의원의 바른정당행이 점쳐졌지만, 이들은 탄핵정국의 추이를 지켜보며 미동도 않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의 다소 ‘신중한 행보’도 대구의 탄핵정국 기류를 상징한다. 권 시장은 탄핵안 가결 이후 새누리당 내에서 탄핵파들이 이탈해 바른정당을 결성하자 곧바로 탈당할 것으로 관측됐다. 권 시장은 행정관료 출신(행정고시)인 문희갑, 조해녕, 김범일로 이어지는 전임 대구시장과 달리 첫 정치인 출신 시장이다. 서울 노원구에  3번 출마해 한 번 이긴 초선의원이었다. 정치적 기류를 읽고 판단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또 국회의원 시절 개혁성향을 보인 데다 바른정당의 사실상 유력 대권후보인 유 의원과도 가깝다.

    권 시장은 최근 들어 탈당을 거의 보류한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권 시장 측근은 “대구시장이 당적 이탈로 표현되는 정치적 행보를 정국 흐름에 맞춰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250만 대구시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또 그리 신중한 처신도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정국 추이를 봐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당장의 탈당과 바른정당행은 ‘전혀 아니올시다’라는 뜻이다.

    입장 선회는 소신의 발로이기도 하겠지만 지역의 강고한 보수성향 흐름, 박 대통령 탄핵정국을 바라보는 대구의 미묘한 여론 변화와도 맞물려 있는 것이 틀림없다. 자칫 잘못 움직였다가는 회복할 수 없는 정치적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은근히 작용한다고 봐야 한다. 그만큼 TK 정서는 가변적이다.

    탄핵정국이 TK의 정치지형을 백지 상태로 만드는 측면도 있지만, 앞서 TK는 새로운 정치 다원화를 실험해왔다. ‘27 대 0’이란 일당독점은 신세대의 출현과 시대정신의 변화에 따라 점차 퇴색되고 있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대구는 이미 정치 다원화 길로 들어섰다. 경북에서는 13석(선거구 조정으로 의석이 줄었다) 모두를 새누리당이 석권했지만, 보수의 심장 대구는 정치적 분화의 기치를 들었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근 30년 만에 정통 야당의원으로 당선한 것이다. 그의 상대는 김문수 전 지사였다. 역대급 결투였다. 여기다 민주당에서 축출돼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의락 의원(대구 북구을)까지 당선하며 기염을 토했다. 1960~70년대 대구는 야당도시로 불렸지만 80년대 이후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전통이 사라졌다. 이들의 등장은 대구시 구호인 ‘컬러풀 대구’를 구현하는 새 출발이란 평가도 나왔다.
     


    대선의 흥미진진한 대변수

    또 다른 한 축은 ‘대구 적자’를 자임한 유 의원의 승리였다. 새누리당 공천파동은 사실상 유승민을 둘러싼 전쟁이기도 했다. 그는 동구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결국 살아남았다. 공천 탈락한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을)도 무소속으로 도전해 새누리당 후보를 꺾었다. 박근혜 정권의 흔들림은 어쩌면 이때부터 시작됐는지 모른다. 이들 바른정당 주역의 가세가 없었다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조기 대선을 실시한다면 TK는 지금 예측불허 상태다. 역대 이런 현상이 없었다. 야권 후보가 지지율 선두를 형성하는 이례적인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보수 측인 황교안 권한대행의 지지세가 있지만, 그의 출마는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측면을 감안하면 TK 대선구도는 상전벽해다. 당장 대선을 치른다면 ‘보수의 아성 TK’는 옛말이 될 수 있다.

    연합뉴스와 K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2월 6일 발표한 여론조사(성인 2016명 대상. 조사기간 2월 5~6일.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2%p) 결과, TK에서 지지율은 황 권한대행 20.4%, 문재인 전 대표 17.3%, 안희정 지사 9.4%, 유승민 의원 3.8%,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3.7% 순이었다. 앞서 리얼미터가 MBN 의뢰로 2월 1~3일 조사해 같은 날 발표한 결과에선 문 전 대표가 30.8% 지지율로 TK에서 처음 1위에 오르기도 했다. TK는 이제 한쪽의 패권장이라기보다 대결투의 장으로 변했다는 의미다. 정당 지지율에서는 민주당이 새누리당과 대등한 수준까지 육박했다.

    TK가 이대로 분화된다면 범야권의 대선가도는 한결 쉬워질 수 있다. 물론 과거와 다른 TK 표심은 대선의 흥미진진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TK의 정치적 변화에 대해 두 가지 시각이 병존하는 듯하다.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미래를 위해 잘됐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한쪽에서는 “어떻게 쌓아온 보수 아성인데 이대로 무너지면 안 된다. 대한민국이 무너진다”고 걱정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TK도 이제 실리를 취해야 한다. 대권을 가져와도 지역발전은 없었다. 다양성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주창한다. 2017년 대선이 그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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