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4

2007.12.11

“쉿! 당신 사무실에도 사이코패스 있다”

‘직장으로 간 …’ 저자 폴 바비악 박사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 망보며 기생적 포식”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7-12-05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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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쉿! 당신 사무실에도 사이코패스 있다”

    ‘직장으로 간 …’의 저자 폴 바비악 박사.

    겉으로는 호감이 가지만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사람.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하고 책임감도 없지만 상사에게는 유능한 인재로 비치는 사람. 동료들을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길 뿐 타인의 감정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 혹시 이런 인물이 당신 회사에도 있는가?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등장 이후 양심 없고 동정심이나 죄의식을 느낄 줄 모르는 ‘인격장애자’ 사이코패스(Psychopath)가 일반에게도 널리 알려진 용어가 됐다. 미국에서는 연쇄살인범의 90% 이상이 사이코패스인 것으로 보고된다. 그러나 사이코패스는 교도소나 어두운 뒷골목에서만 발견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세계에서 사이코패스들은 유능하고 잘나가는 기업인이나 전문가로 활개를 치고 다닌다. 갈수록 증가하는 화이트칼라 범죄의 상당수가 바로 이런 ‘양복 입은 독사들’에 의해 자행되는 것으로 의심된다.

    최근 출간된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원제 Snake In Suits·랜덤하우스코리아)는 우리가 알고 있거나 언젠가는 맞닥뜨릴지 모를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의 특성과 대처법을 소상하게 알려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사이코패스에 관한 오랜 연구 끝에 이 책의 저자들은 사이코패스가 일반 조직에서는 1% 정도지만, 직장 내에서는 그 이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반 조직 1%보다 훨씬 높은 3.5% … 회사 속이고 돈·권력 노려

    이 책의 메인 저자 폴 바비악 박사와 e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바비악 박사는 저명한 산업심리학자로 기업 내 사이코패스의 행동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그는 이 책의 공동저자이자 사이코패스 범죄자 연구의 대가인 로버트 D. 헤어 교수(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와 함께 유능한 직장인과 사이코패스를 구분해내는 도구인 비-스캔(B-Scan)을 개발한 바 있다.



    -사이코패스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오래전 내가 컨설팅하던 회사에서 사이코패스를 발견한 이후 이 주제에 대해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주변 사람들을 조종하고 동료를 이용하며, 상사들에게 자기 재능을 설득해 승진하는 그의 능력을 지켜보며 매우 놀랐다.”

    -직장 내에 사이코패스가 얼마나 숨어 있다고 보는가.

    “헤어 박사가 개발한 사이코패스 진단표 ‘PCL : SV’를 가지고 200여 명의 기업 임원과 임원 승진이 유력한 이들을 평가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이들 가운데 3.5%가 사이코패스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사이코패스가 1% 정도로 나타나는 일반 조직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직접 사이코패스들을 만나고 있는가.

    “헤어 교수와 함께 몇 가지 연구를 위해 사이코패스 기업 임원들과 접촉하고 싶다는 광고를 낸 적이 있다. 응답이 적었는데 그중 몇 사람은 연구에 참여하기보다 우리를 속이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주로 비즈니스 파트너나 고객이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고 있다.”

    바비악 박사는 오늘날의 기업 환경이 사이코패스가 활동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고 본다. 빠르게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거의 모든 기업이 인수·합병(M·A)이나 합작, 구조조정, 조직개편 등의 혼돈스런 상황에 자주 놓인다. 이러한 조건은 사이코패스들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이들은 자극을 추구하는 자(Thrill Seeker)들이기 때문이다.

    “쉿! 당신 사무실에도 사이코패스 있다”
    -사이코패스가 직장에서 얻으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이코패스들은 돈뿐 아니라 권력, 섹스 등을 노린다. 이들은 기생적 포식자(Parasitic Predator)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이 나올 만한 곳을 향해 항상 망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회사에서 사기 치는 사람은 모두 사이코패스인가.

    “아니다. (회사를 속이는) 많은 사람들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단지 탐욕스러울 뿐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을 잘 속이거나 정직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슬프지만 인간 본성일 뿐이다.”

    -사이코패스가 기업에 미칠 수 있는 해악은 무엇인가.

    “최악의, 그리고 가장 명백한 피해 형태는 물론 완전한 사기다. 그러나 사이코패스들은 보이지 않는 방법, 즉 심리적이고 감정적으로도 해를 미친다. 예를 들면 그들의 부도덕한 행동이 조직 내 도덕의식을 낮추고, 동료끼리 싸우게 만들며, 생산성과 생산물의 질을 떨어뜨린다. 또한 사이코패스들은 팀 플레이어가 아니다. 때문에 팀 전체가 고통받는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사이코패스의 먹잇감이 될까. 바비악 박사는 책에서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현재 위치가 불안정하고 외로움을 타며 친구나 가족에게서 고립된 여성이 가장 매력적인 사냥감으로 꼽힐 수 있다’고 썼다. 사이코패스가 먹잇감을 다루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이용가치 평가하기→속이고 조종하기→버리고 떠나기.

    -사이코패스는 어떤 이를 먹잇감으로 고르는가.

    “사이코패스들은 당신이 가진 가치를 쉽게 파악한다. 당신이 자신에게 유용한 존재라고 판단하면 당신에게 접근한다. 다음에는 당신의 두려움과 약점을 파악한다. 이렇게 하고 나면 그들은 자신이 필요할 때 당신의 버튼을 눌러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

    -사이코패스의 속셈을 미리 알아차릴 수는 없나.

    “그들이 내뿜는 매력은 치명적이어서 쉽지 않다. 사이코패스의 속임수를 간파할 가능성은 그가 당신에게 관심이 없을 때 커진다. 이용가치가 없는 상대에게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바비악 박사가 권하는 사이코패스 대처법은 다음과 같다. 입사지원자가 사이코패스라고 의심된다면 이력서에 게재된 모든 사항을 확인하라는 것. 시간 여유가 없다면 학력과 전문자격증만이라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만약 사이코패스가 당신의 상사라면 그의 모든 구두 지시를 문서로 그대로 옮겨 보관할 필요가 있다. 대결은 피하고 공식적으로 항의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회사를 떠나라. 사이코패스가 부하직원이라면 그의 이간질에 대처하기 위해 다른 부하직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눈길을 끄는 사건이나 쟁점을 모두 자세히 기록해두며, 필요한 경우 인력관리 부서에 도움을 청하라.

    -최근 한국사회에서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의심되는 인물들이 주인공이 되는 사건이 여럿 있었다. 거짓 논문을 세계적 과학잡지에 발표한 과학자, 학력을 위조하고 고위공무원을 이용한 예술인, 수백억원대 금융사기를 친 젊은이 등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이들을 사이코패스라고 보는가.

    “나는 뉴스에 나온 인물들이나 공인, 유명 인사들에 대해 코멘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터넷 문화가 특히 발달한 한국사회에 하고 싶은 조언은 있다. 인터넷은 사이코패스가 이용하기 아주 좋은 도구다.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사이코패스로 간주되는 소아성애자(pedophile)들이 인터넷을 통해 우리 자녀들에게 접근할 수 있다. 부모들은 이러한 포식자들에게서 자녀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이코패스는 누구인가.

    “내게 사이코패스 연구를 결심하게 한 바로 그자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M·A에서도 살아남았다. 상사들을 설득해 누가 회사에 남고 누가 떠날지 결정하는 구조조정팀에 들어가 경쟁자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그에 의해 제거된 직원들은 그가 사이코패스적인 본성을 가졌음을 알아챈 이들이었다. 나는 최근 그가 유명 대학에서 기업경영을 가르친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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