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3

2007.12.04

의사들 종신면허제 갱신하라!

지속 검증 없어 의료인 질 담보 미흡 … 급변하는 의료환경, 경쟁력 강화 최소한의 장치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7-11-28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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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들 종신면허제 갱신하라!

    국내 의사 면허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06년도 신규 의사 면허 수여식.

    “그래요? 그거 정말 문제네.”

    11월 중순 기자가 탄 택시의 운전기사는 우리나라 의사들의 면허가 이른바 ‘종신 면허’라는 기자의 말에 무척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사안이긴 하지만, 막상 종신 면허라는 말을 듣자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그처럼 의사 면허가 평생 유지되는 것임을 뜻밖의 사실로 받아들일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들이 자격시험(필기시험)에 합격해 일단 면허를 따기만 하면 갱신 등의 후속 절차 없이 평생 효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에서 면허를 발급받은 이후 장기간 휴직하다 의료 현장으로 복귀한다 해도 면허를 재인증받거나 갱신하는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다.

    단 한 번 필기시험 평생 보장 … 올 6월 현재 9만1373명

    복지부의 보건의료인 면허종별 등록 현황에 따르면, 2007년 6월30일 현재 국내 의사 수는 9만1373명. 문제는 한 번의 필기시험 합격만으로 면허가 평생 유지되는 현행 의사 면허제도가 의료인력의 질을 지속적으로 담보하기엔 미흡하다는 데 있다.



    의사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핵심 전문인력이다. 따라서 현행 의사 면허 관리에 대한 개선은 의료 신기술과 지식 습득 등 끊임없는 의사 재교육을 통해 급변하는 보건의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건강권 보장과 의료서비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의사들에 대한 지속적인 검증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의료인력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가 어렵다.

    사실 의사 면허제도 개선은 수차례 검토돼온 사안. 그럼에도 그동안 의료법 개정 문제를 둘러싸고 이해당사자인 의료소비자, 의사, 보건의료 관련 시민단체, 관계기관의 의견이 엇갈려 공통된 견해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등 진통을 겪어 개정 자체가 표류했다. 1951년 제정돼 73년 전면개정된 뒤 30여 차례에 걸쳐 부분개정만 시행된 현행 의료법은 변화된 의료환경을 따라잡지 못하는 측면이 많아 전면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와 관련해 의사 출신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안명옥 의원(한나라당)은 10월 말에 낸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보건복지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자격증제도 선진화 방안’에서 국내 의사 면허제도의 개선을 위한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안 의원이 현행 의사 면허제도의 보완책으로 내세운 것은 면허갱신제와 면허재등록제. 이중 면허재등록제는 면허를 취득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기적으로 교육이수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면허 효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면허를 재등록하지 않을 경우 면허가 취소되는 게 아니라 그 사용만 금지되고, 이후 재등록 요건을 갖추면 다시 면허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안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복지부엔 보건복지 관련 면허들을 관리하는 전담부서조차 없는 형편”이라며 “면허 등록에서부터 보수(補修)교육, 면허 갱신, 면허 재등록까지 총괄하는 보건복지 면허관리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외국 면허를 가진 의사들이 의료 연구·개발 인력으로 국내에 근무할 수 있게 되고, 경제특구 병원에서도 진료가 허용되는 등 의료환경이 글로벌화되면서 국내 의사 면허제도 또한 개선돼야 함은 분명하다.

    의사들 종신면허제 갱신하라!

    선진 외국과 달리 국내 의사들의 면허는 평생 유지된다.

    미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은 의사 면허 획득에서 필기시험만 치르는 우리나라와 달리 실기시험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년 안에 실기시험에 합격해야 진료행위나 개업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특히 미국은 1, 2차 시험에 합격하고 졸업 후 1년 동안 수련을 거친 뒤 3차 시험까지 합격해야 의사 면허를 준다.

    한편 현행 종신면허제가 자질 미달이거나 비윤리적인 의사들을 걸러내는 데 걸림돌이 되므로 면허갱신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올 6월 경남 통영시의 한 40대 의사가 수면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온 여성 환자들을 마취한 뒤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에서는 해당 의사에 대한 통영지역 여성단체들의 면허취소 촉구가 쟁점화되기도 했다. 또한 최근엔 환각제를 복용한 뒤 200여 차례나 임신중절 수술을 집도한 40대 산부인과 의사가 법정에 서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국회 보건복지위 김춘진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10월 국정감사에서 의사들에 대한 면허취소는 사실상 3년간의 면허정지에 그치는 효과밖에 없으므로 좀더 강력한 영구 면허취소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료법상 면허취소 조항의 실익이 없다는 것. 면허 취소 및 재교부에 대해 규정한 현행 의료법 제65조는 자격정지 처분 기간에 의료행위를 하거나 3회 이상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경우, 면허증을 대여해준 경우, 태아 감별 등을 한 경우엔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면허가 취소된 자라도 취소 원인이 된 사유가 없어지거나 개전(改悛)의 정이 뚜렷할 때, 각 위반 사유에 대해 최소 1년 최대 3년이 경과하면 면허를 재교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질 미달 비윤리적 의사 퇴출 걸림돌

    문제는 ‘개전의 정이 뚜렷하다’는 주관적 판단을 복지부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실제 의사 면허 취소 및 재교부 현황을 살펴보면, 최근 면허가 취소돼 재교부에 필요한 기간을 미처 채우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곤 취소된 면허 모두가 재교부됐다(최근 7년간 의사 면허자격 취소 재교부 현황은 표 참조). 게다가 앞서 언급한 통영 사건의 경우 성폭행은 형법상 죄여서 현행 의료법상 의사 면허 취소 사유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범죄 전력이 있어도 의사 면허를 재교부받을 수 있는 맹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의학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학계는 대체로 면허 갱신제 도입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박인숙 교수(소아심장과)는 “일부 의사들의 진료비 부당청구, 보험 사기, 허위진단서 발급 등 비윤리적 행위로 국민들의 반(反)의료계 감정이 극에 달했지만, 이들에 대한 징계 등 후속 조치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의료계가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면허갱신제 도입을 제시했다. 의사에게 요구되는 특수한 윤리가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의료윤리와 도덕성을 지키는 의사들에게만 면허를 재교부함으로써 의사의 질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의사 면허를 갖고 있는 박 교수의 부연이다.

    학계도 찬성 … 가시적 조치는 없어

    “미국 텍사스주 의사면허국 소식지는 총 24쪽 중 18쪽이 의사 징계에 관한 세세한 사항들로 채워져 있다. 징계받은 의사들의 실명, 지역, 날짜, 징계 사유, 징계 방법들이 여과 없이 보도된다. 그 사유는 성폭행, 마약 복용 같은 심각한 범죄에서부터 연수평점 허위신고, 보험금 부당청구, 허위서류 제출, 의무기록 사본 발행비용 과다징수, 진단 오류, 수련의 폭행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은 어떤가. 의사 윤리교육 강화 못지않게 일부 파렴치하고 도덕 불감증에 걸린 의사들이 의료현장에 서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면허갱신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국내 의사들에 대한 면허 정지 및 취소 건수는 2003년부터 2007년 상반기까지 모두 1278건. 면허 위반 현황을 살펴보면 ‘진료기록부 허위 작성·미서명·미기재·미보존’이 247건, ‘의료기사 등의 업무 범위를 일탈하도록 지시’한 경우가 213건, ‘진료비 허위·부당청구’가 210건, ‘(의료기관의) 개설자가 될 수 없는 자에게 고용되거나 개설 신고 없이 운영하거나 2개소 이상 개설’한 경우가 140건 등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내 의사 면허제도에 ‘메스’를 대려는 가시적 조치는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복지부 의료자원팀의 한 직원은 “면허 갱신 문제는 복지부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검토하는 수준일 뿐, 이렇다 할 만한 진척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의사 면허제도 개선을 위해선 이해당사자인 의사들의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지만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그들의 반응 또한 미온적이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김주경 대변인은 “몇 년 전 의협 내부에서 면허 관련 사안을 검토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연로한 의사들의 낡은 면허증 재발급 문제였지 면허갱신제 도입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본래 취지가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등 외부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면허갱신제 도입 논의로 변질됐다”며 “아직 의협 내부에선 면허갱신제 도입에 대한 명확한 의견을 정리한 게 없다”고 밝혔다.

    ‘한번 의사는 영원한 의사(?).’ 의사들의 면허는 철옹성이어도 좋은 걸까.

    ▼ 의사 면허자격 취소 재교부 현황 (단위 : 건수)
    위반 사례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34 - 1 2 1 8 7 15
    진료비 허위 청구 및 허위 진단서 작성 1 - - - - - - 3
    의료인에게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하게

    하거나 무자격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함
    6 - - - - 1 2 3
    무자격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하고

    허위·과대 광고를 행함
    - - - - - - - -
    무자격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하고

    의료기사가 아닌 자로 하여금

    의료기사의 업무를 하게 함
    - - - - - - - -
    무자격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하고

    진료비를 허위로 청구함
    1 - - - - - - 1
    무자격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하고

    진료기록부 허위 작성
    - - - - - - - -
    무자격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하고

    의료기관의 개설자가 될 수 없는 자에게

    고용되어 의료행위를 함
    - - - - - - - -
    진단서·증명서 등 허위 작성·교부 등 5 - - - - 3 - 2
    진단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의료기관의

    개설자가 될 수 없는 자에게 고용
    - - - - - - - -
    진단서 허위작성 및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 유인
    1 - - - - 1 - -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 유인 1 - - - - - 1 -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 유인하고

    3개소의 의료기관 개설
    1 - - - - 1 - -
    진단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의료기사가 아닌 자로 하여금

    의료기사의 업무를 하게 함
    1 - - - - - - 1
    면허 대여 5 - - - - 1 2 2
    태아 성감별 행위 - - - - - - - -
    낙태 2 - - - - 1 1 -
    파산선고 10 - 1 2 1 - 1 5
    의료기관의 개설자가 될 수 없는 자에게

    고용되어 의료행위를 함
    - - - - - - - -
    3회 이상 면허자격 정지 - - - - - - - -
    출처 :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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