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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독서노트

오타쿠의 창으로 일본사회 들여다보기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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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아즈마 히로키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이은미 옮김/ 238쪽/ 8800원

‘오타리맨’을 아는가? 이기는 일이 거의 없는 한 남성의 코믹 에세이인 ‘오타리맨, 가끔 싸우고 가끔 진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급부상한 이 신조어는 일본 남자의 속성을 나타내는 ‘오타쿠’와 ‘샐러리맨’ 두 단어를 조합해 만들었다. 이중 오타쿠는 지금 일본의 특성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오타쿠란 고도 소비사회의 문화 상황이 낳은 새로운 인간형으로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오타쿠에 대한 일반의 시각은 그리 좋지 않다. 1989년 체포된 엽기적 연쇄유아 살인범의 방에서 6000여 개의 애니메이션과 공포영화 비디오가 발견되면서 오타쿠가 사회적으로 크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부제는 ‘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사회’다. 오타쿠가 주로 즐기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같은 역사가 짧은 ‘탈(脫)사회적’ 서브컬처의 변천에서 현대사회의 정신구조를 탐색한다.

나는 라이트 노블에 대한 일본 신문기사를 읽다가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됐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2’라는 부제가 달린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은 현재 일본에서 떠오르고 있는 라이트 노블, 즉 중고생을 주요 독자로 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일러스트를 곁들인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분석을 통해 일본사회를 진단한다.

프랑스 철학자 알렉상드르 코제브는 헤겔적인 역사가 끝난 뒤 미국적 생활양식의 추구, 즉 동물로의 회귀와 일본적 스노비즘의 두 가지 생존양식만 남았다고 했다. 인간이 인간적이기 위해서는 주어진 환경을 부정하는 행동, 즉 자연과의 투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은 동물처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포스트모던은 문자 그대로 ‘근대 이후에 오는 것’을 의미한다.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록 음악, SFX 영화, 팝아트, LSD와 PC 등 새로운 장르가 급부상하며 정치와 문학이 실추하고 전위개념이 소멸되는 문화적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현대사상이나 문화연구에서 폭넓게 쓰인 말이다. 그런데 포스트모던화의 특징은 이렇다.

“포스트모던화는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관과 이데올로기, 즉 커다란 이야기의 쇠퇴라는 특징을 보인다. 18세기 말부터 1970년대까지 계속된 ‘근대’에서 사회질서는 커다란 이야기의 공유, 구체적으로는 규범의식과 전통의 공유로 확보됐다. 한마디로 말하면 확실한 어른, 확실한 가정, 확실한 인생설계의 모델이 효율적으로 기능하고 사회는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70년대 이후의 포스트모던에서는 개인의 자기결정과 생활양식의 다양성을 긍정하면서, 커다란 이야기의 공유를 압도하고 있다고 느끼는 별개의 감성이 지배적이 된다.”

이것이 두 책이 갖는 시대인식이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질문은 오리지널과 복제(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를 연상해보길)의 구별이 없어진 포스트모던에서 시뮬라크르는 어떻게 증가하는가다. 근대에서 오리지널을 창출하는 것이 작가였다면, 포스트모던에서 시뮬라크르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를 소비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70년대는 커다란 이야기를 잃어버렸고, 80년대는 그 잃어버린 이야기를 날조하는 단계(이야기 소비)에 이르렀으며, 90년대는 날조의 필요성조차 폐기하고 단순히 데이터베이스를 욕망하는 단계(데이터베이스 소비)를 맞이했다. 작품(작은 이야기)이나 그 배후에 있는 세계관(커다란 이야기), 나아가서 설정이나 캐릭터(커다란 非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심층에 있는 오타쿠계 문화 전체의 데이터베이스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현실(자연주의)이나 선행하는 허구(이야기 소비)가 아니라, ‘모에(캐릭터나 연예인 등을 향한 허구적 욕망)’ 요소의 데이터베이스를 가장 리얼한 것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포스트모던에서는 커다란 이야기가 실종되고 ‘신’이나 ‘사회’도 쓰레기(junk) 같은 서브컬처에서 날조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근대에서 신이나 사회가 인간성을 보증하며 종교나 교육기관이 그 실현을 맡고 있었다면, 그 양자의 우위가 실추된 후 인간성은 어떻게 바뀌는 것일까? 포스트모던의 인간은 ‘의미’에 대한 갈망을 사교성을 통해 충족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을 동물적인 욕구로 환원함으로써 채운다. 세계 전체는 단지 즉물적으로 누구의 삶에도 의미를 주지 않은 채 표류하는 것이다. 의미의 동물성으로의 환원, 인간성의 무의미화 그리고 시뮬라크르 수준에서 인간성의 ‘해리(解離·노마드)’적인 공존만이 있을 뿐이라는 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이다.

일본적 스노비즘 고상한 척하는 속물근성이 원뜻으로, 주어진 환경을 부정할 실질적 이유가 없음에도 ‘형식화된 가치에 입각해’ 그것을 부정하는 행동양식. 명예나 규율이라는 형식적 가치에 집착해 벌이는 할복자살이 대표적이다.

시뮬라크르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가 확립한 철학 개념. 순간적으로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우주의 모든 사건 또는 자기동일성이 없는 복제를 가리킨다.




주간동아 2007.10.30 608호 (p86~87)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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