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0일 열린 행정중심복합도시 기공식.
7월20일 열린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행정도시) 기공식 즈음해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이 내놓은 야심찬 발언이다.
그러나 2005년 3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특별법’(이하 행정도시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2년4개월 만에야 첫 삽을 뜬 행정도시 ‘세종(世宗)특별자치시’(이하 세종도시)의 미래가 명품 도시일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행정도시 건설에 기초가 되는 ‘세종특별자치시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세종시 설치법안)이 제정 단계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마련한 세종시 설치법안은 현재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 법안이 규정해야 할 행정도시의 관할구역 설정과 법적 지위, 지방자치단체 설립 시기 등을 둘러싸고 첨예한 찬반 논란이 불거지고 있어 법안의 연내 국회 통과가 불확실한 상태다. 10월8일 노무현 대통령까지 이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하고 나섰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행정도시가 당초 의도대로 건설되려면 무엇보다도 그 관할구역과 법적 지위부터 명확히 매듭지어져야 한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쟁점 가운데 하나는 행정도시의 법적 지위 문제다. 정부의 세종시 설치법안에는 행정도시의 법적 지위가 정부 직할의 광역자치단체로 되어 있지만, 반대론이 만만치 않다. 이 문제는 현재 해당 지역을 제외하면 언론매체의 관심에서도 벗어나 있다. 하지만 행정도시에 대한 광역단체 지위 부여가 현행 16개 시·도에서 17개 시·도 체계로 변모하는 변곡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결코 가볍게 다룰 사안이 아니다.
정부 직할 광역자치단체로 규정
이와 관련, 충남도의회 의원들은 6월11일과 10월1일 세종시 설치법안 제정과 관련한 건의문을 행정도시 건설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와 국회에 전달하는 등 법안의 조기입법 부당성을 수차례 주장했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5월21일 세종시 설치법안을 정부가 입법예고한 뒤 충남도의회 측이 지역주민 의견을 반영한 나름의 건의안을 제시했음에도, 정부가 이를 반영하지 않은 채 당초 입법예고한 원안(原案)이 17대 정기국회가 끝나기 전에 통과되도록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잔존 건축물 처리 현장.
먼저, 정부가 당초 행정도시의 법적 지위와 관할구역에 관한 연구용역 수행과업으로 세 차례 주민설명회와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로 약속했음에도 지난 5월 사전예고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비정상적 방법으로 공청회만 열었다. 그리고 일방적 홍보만 일관함으로써 법적 지위와 관할구역 문제를 둘러싸고 충남 연기군과 공주시, 충북 청원군의 여론이 사분오열되고 있으므로 해당지역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법안을 심의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현재 건설 초기 단계인 행정도시의 법적 지위가 반드시 광역단체 수준이어야 하는지를 면밀히 검토하라는 것이다. 이는 행정도시가 2030년 인구 50만명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2007년 10월 현재 인구가 4만4000명에 불과하므로, 세종도시 설치 시기인 2010년이 된다 해도 인구가 읍(邑) 규모에 해당하는 5만여 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 뻔한데, 굳이 인구 100만명 수준의 광역단체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주장이다. 즉, 도시가 성장하고 인구가 유입된 뒤 법적 지위를 부여해도 늦지 않다는 게 충남도의회의 견해다.
충남발전연구원 김용웅 원장은 “행정도시는 행정도시특별법에 따라 건설되는 것임에도, 도시 건설 후 관리 측면에서 필요한 ‘세종시’가 설치돼야 행정도시가 제대로 건설될 수 있다는 논리는 목적과 수단을 전도하는 것”이라며 “행정도시는 도시 건설에 관한 전반적 사항을 담은 행정도시특별법을 준용해 건설하면 되므로 도시 관리·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세종시 설치법안은 추후 제정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주장했다.
충남도의회 건설소방위원회 이은태 위원장 역시 “지방자치의 충족요건인 인구와 도시 형태도 갖추지 못한 가상(假想)의 도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광역단체 설치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면서 “현행 제도하에서도 행정도시 건설에 별 지장이 없는데, 혼란스러운 대선정국에 이해당사자인 지역주민의 의사와 상충하면서까지 3년 후인 2010년 발효를 전제로 한 법안의 국회 통과를 서두르는 것은 임기 말 참여정부의 치적을 위한 정치적 의도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또 하나의 쟁점사안은 행정도시 권역에 포함되지 않은 연기군 잔여지역의 처리 문제다. 연기군의 경우 행정도시로 편입되는 이른바 ‘예정지역’과 난개발 및 부동산 투기 방지 등을 위해 계획적으로 관리되는 ‘주변지역’, 이 둘에서 제외된 ‘잔여지역’으로 쪼개져 있다(그림 참조). 이에 대해 연기군과 충남도는 잔여지역까지 행정도시로 포함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불가(不可)’ 주장을 견지해 갈등을 빚고 있다.
충남도·연기군 잔여지역 편입 요구
연기군과 충남도의 요구는 행정도시에 군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을 떼주고 나면 잔여지역만으로는 지방자치 실현이 불투명해 자생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재정자립도가 22%에 불과한 농·산촌 지역인 연기군은 행정도시가 건설되면 군 면적의 51.6%와 인구의 34.5%가 행정도시로 편입돼 지자체 자체가 존폐 기로에 서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 때문에 잔여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행정도시 편입 주장이 갈수록 세(勢)를 얻고 있다.
연기군의회 황순덕 의원은 “연기군은 현재 잔여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전담기구 설치가 포함된 행정도시특별법 개정안을 국민중심당 정진석 의원을 통해 입법 발의한 상태”라며 “잔여지역에 대한 정부 차원의 특별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세종시 설치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행정도시와의 통합을 줄곧 외쳐온 통추위(행정도시와 통합 추진 등 범군민대책위원회)와 함께 상경투쟁을 벌일 것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충남도는 여기서 한발 나아가, 만일 정부가 행정도시를 자치단체로 설치해야겠다면 행정도시와 연기군 잔여지역을 포함해 충남도 관하의 도·농복합 형태 특례시(기초자치단체)로 설치해달라는 의견을 내놨다. 충남도 김용교 행정도시지원단장은 “도·농복합 특례시는 도시와 농촌의 이원적 행태를 효율적으로 관리·운영할 수 있는 자치체계로,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 대다수 시(市)가 이런 형태를 취하고 있다”면서 “지방자치법 개정 없이 현행법으로도 가능한 도·농복합 특례시 설치를 정부에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충남도 역시 도(道) 관할의 땅과 인구를 내주는데도 행정도시가 광역단체화된다면 충남도의 도세(道勢)와 인구가 줄어들게 되므로 세종시 설치법안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어, 법안의 국회 통과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반면 주무부처인 행자부의 입장은 완강하다. 세종시 설치법안의 처리 시기와 관련해 행자부는 12월9일까지로 예정된 17대 정기국회 회기 내에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치면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법안이 이번 회기에 통과하지 못하면 자동 폐기돼 결국 세종시 설치법안 문제가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행자부의 대다수 간부들은 국회 측에 회기 내 통과를 요청하기 위해 동원되고 있다.
이번 회기에 무산되면 설치법안은 원점으로
행자부 정헌율 지방행정정책관은 “충남도민들은 행정도시 건설이라는 총론엔 찬성하면서도 각론에서는 각 지자체별 국지적 이익에 충실하는 모순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미 행정도시 특별법에서 그 관할구역을 예정지역과 주변지역으로 못박고 있는 만큼, 연기군 잔여지역을 행정도시로 편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정 정책관은 또 “공청회를 열지 않았다는 충남 지역 일부 주민들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행정절차법상 공청회는 열지 않았지만, 정부의 세종시 설치법안 연구용역 과정에서 이미 공청회를 가졌으므로 법적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행정도시의 법적 지위를 하루 빨리 결정해야 경찰청 등 지방행정관서의 설치, 지방의원선거구 및 의원정수의 확정, 교육자치 등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참여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의 핵심으로 꼽는 행정도시 건설사업. 논란이 이어지는 한 ‘장밋빛 미래’를 낙관하긴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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