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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 죽음 수수께끼와 중화민족 만들기

  •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도서출판 일빛 편집장

당태종 죽음 수수께끼와 중화민족 만들기

당태종 죽음 수수께끼와 중화민족 만들기
“한낱 주머니 속 소지품(고구려)일 뿐이라고 큰소리치더니 ‘검은 꽃(玄花·눈알)’이 ‘흰 깃(白羽·화살)’에 박혀 외눈박이 될 줄이야(自謂囊中一物耳 那知玄花落白羽).”

고려 시인 목은 이색이 당태종 이세민의 외눈박이 곡절을 읊은 시 ‘정관음유림관작(貞觀吟楡林關作)’의 한 구절이다. 정관은 태종 이세민의 연호다. 그는 당고조 이연의 차남이지만 ‘현무문의 변’을 통해 왕위에 오른 뒤 팽창주의 정책을 펼쳐, 당시 동아시아 최대 라이벌인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해 보장왕 3년(644) 친정에 나선다.

그러나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의 백우장전(白羽長箭·흰 새의 깃털을 단 화살)에 맞아 한쪽 눈을 잃고 철군, ‘고구려는 원정하지 말라던 위징만 살아 있었다면’이라며 땅을 치고 후회했다. 이후 ‘애꾸눈 당태종 임종기’는 고구려 땅에서는 사실이었으나 중국 땅에서는 창피한 야사가 되어버린다. 고려의 김부식도 ‘삼국사기’에 이 일을 기록하지 않았고 중국의 ‘신·구당서(新舊唐書)’에도 보이지 않는다.

‘신·구당서’의 태종본기에 따르면 백전백승의 이세민은 정관 19년 9월 안시성에서 고려(고구려) 미물들에게 패해 철수했다. 정관 20년에는 임금의 병이 낫지 않아 태자에게 정사를 맡기고, 정관 23년 5월 52세의 나이로 죽었다. 강목(綱目)에서는 이질이 다시 악화돼 죽었다고 기록했다. 송나라 사마광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요동에서부터 병이 있었다고 적었다. 하지만 그것이 고구려인의 화살로 인한 병인지 아닌지의 진의는 판가름하지 않았다.

이렇게 당태종의 죽음은 하나의 수수께끼다. 당나라 임상병록은 화살로 인해 곪은 상처는 내종(內腫), 눈병은 항문 병으로 기록했다. 고구려인들과 싸워 얻은 병으로 죽은 영웅의 치욕을 이질과 싸우다 죽은 전설로 위증했는지도 모른다. 2004년 중국에서 출간된 애신각라(愛新覺羅)의 ‘황조비사’(黃朝秘史·해남출판사)는 ‘이세민 폭사의 미스터리(李世民暴死之迷)’라는 장에서 사정이 이렇다고 전한다. 당태종이 정관 21년 중풍이 들어 사방천지에서 불로장생약을 구했는데, 다음 해 그런 약을 제조할 줄 안다는 200살 먹은 인도 승녀에게 장생약을 구해 먹었다. 그런데 과다복용해 다음 해 ‘장로불사약 독’으로 죽었다. 장생약에 의해 죽은 첫 번째 황제란다.



중국의 한족(漢族)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당태종 외에 제갈공명, 강희제(1645~1722), 모택동 등이다. 이들은 영토를 넓힌 공통점이 있다. 제갈공명은 남만(南蠻)의 운남성(현재의 운남성을 완전히 차지한 것은 원나라)과 귀주성을, 이세민은 돌궐족을 중앙아시아로 몰아내면서 감숙성과 청해성 일부를, 모택동은 1949년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뒤 사회주의라는 허울 아래 중세의 청나라 시대로 돌아가 청나라의 옛 영토인 ‘티베트, 신강, 내몽고’ 등을 인민해방군의 총칼로 병합했다. 단지 강희제가 취했던 대만만 어쩌지 못했다.

그런데 강희제는 한족이 아니라 청나라 만주족 황제다. 때문에 그는 1990년대 ‘한족 중화주의’가 아니라 ‘중화민족 중화주의’의 이념적 대리욕망으로 등극한다. 중화민족은 한족, 만주족, 회족, 티베트족, 몽고족 등 56여 민족이 태초에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정말로 그랬을까? 아니면 특정한 시대에 ‘만들어진’ 민족개념일까?

1978년 등소평의 개혁개방 후 사회주의 이념이 연기처럼 사라지자, 중국은 새로운 애국주의(중화민족 제일주의)와 대국주의로 전 인민을 대동단결시킬 필요성이 절실했다. 국부(國父) 모택동에게는 약점이 있었다. 바로 솥단지도 철로 바꿔먹은 대약진운동 탓에 수백만이 굶어 죽고, 자기 입에 숟가락은 달고 나온다는 인구정책 탓에 대륙이 폭삭 주저앉아 아비와 자식, 선생과 제자가 서로 ‘사상 맞고소’를 한 문화대혁명 등의 과오다.

반면 당태종은 인재를 늘 탕탕평평 등용하면서 한족 역사상(진, 한, 수, 당, 송, 명) 가장 훌륭한 정치라는 ‘정관성세’(627∼649)를 열었다. 1980년대 당태종에 관한 수많은 드라마, 연극, 문학작품, 논문이 쏟아져 문화대혁명으로 상처 입은 중국인의 자존심을 달래주었다. 하지만 그는 한족의 영웅일 뿐이었다. 구소련의 예가 보여주듯 이념이 사라진 블랙홀에서 민족이 솟아오른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중국도 점점 사회주의 이념이 퇴색해가자 56개 민족을 대통합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시달린다.

그래서 1990년대에 80년대 한족 영웅 당태종을 제치고 중화민족 최고의 황제영웅으로 등극한 이가 바로 강희제다. 만주족인 강희제와 건륭제가 한족의 명나라 판도를 넘어 처음으로 지금의 중국 영토와 비슷한 만주(동북3성), 내외몽고, 신강, 티베트 등을 평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강희제는 한족이 아니라 만주족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한족과 다른 소수민족은 원래 하나의 민족이라는, 즉 ‘만들어진’ 중화민족 이데올로기에 가장 어울리는 상징영웅이 될 수 있었다. 중국 최고의 역사소설가로 꼽히는 이월하의 ‘강희제’가 기존의 베스트셀러 기록을 갈아치우고 그것을 원작으로 한 역사 드라마 ‘강희왕조’가 공전의 히트를 친 것이 단적인 예다.

신해혁명 이후 푸대접하던 만주족을 삽시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영웅으로 만든 저간에는 한족이 아닌 이민족이 중화민족의 영웅이 돼야 ‘중화민족 대가정주의(통일적 다민족국가론)’라는 상상의 공동체 민족담론이 정당성을 얻는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중국 공산당은 56개 민족이 피도 말도 땅도 풍습도 다르건만, 중화민족이라는 전무후무한 민족개념을 공산당의 국가통치 담론으로 요긴하게 써먹고 있는 셈이다.

영어의 ‘네이션(nation)’을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이 민족(民族)이라는 ‘일본식 한자어’로 번역한 이후 이를 중국에서도 받아들여 19세기 말 손문, 황흥과 함께 신해혁명의 3대 이론가인 장병린이 처음으로 중화민족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이때만 해도 중화민족의 의미는 중국의 ‘중(中)’자와 하화족(夏華族·고대의 한족)의 ‘화(華)’자를 결합한 ‘중국의 한족’이라는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양계초의 중화민족론도 ‘만주족 청나라를 뒤엎고 한족의 나라’를 세우자는 ‘멸만흥한(滅滿興漢)’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중화세계 통일논리’에 일차적으로 복무하는, ‘태초에 56개 민족은 하나의 중화민족’이라는 의미로까지 변질됐지만 말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나남출판)에서 ‘민족’이란 개념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고대로부터 실재한 실체로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와 같은 특정 시기의 문화적 조형물이라고 주장했다. 최근의 중화민족 대가정주의가 좋은 예다. 그래서 고구려 백제 신라는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었다는 동북공정과 장백산 공정은 바로 이 ‘(만들어진) 중화민족의 대가정주의’라는 21세기판 중화주의가 깨지지 않는 한 해결이 요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당태종이 이민족(고구려)이 아니라, 같은 나라의 반란을 진압하다 애꾸눈까지 되었다면 정사(正史)의 본기에 당당히 기록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일본 역사가 진순신의 지적처럼 고구려를 이민족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저간의 사정은 유야무야되고 야사로만 전해지는 게 아닐까.

하지만 고려시대 이곡은 ‘가정집(稼亭集)’에 당태종이 눈에 화살을 맞아 부상을 당하고 회군한 것으로 적고, 조선 성종 때 김종직은 목은의 시 ‘정관음’을 ‘청구풍아’라는 책 속에 넣어 주를 이렇게 달았다. “당태종의 애꾸눈 비사는 중국 정사에 없지만 목은이 시를 지은 것은 그가 중국유학 시절 견문한 바가 있었기 때문 아니겠는가.”

물론 당태종이 고구려인의 화살을 맞고 죽었든 말았든, 불로장생약 과다복용으로 죽었든 말았든, 양귀비와 놀아나던 그의 후손 당고종에 의해 고구려가 망했다는 것만 정사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정사만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논리는 역사학의 교조일 수 있다. 그래서 최근의 포스트모던 역사학 이론은 정사도 하나의 언어 텍스트로 ‘쓰는 자의 입맛대로’ 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의 논·구술 단골주제인 중국의 동북공정도 그래서 더욱 저의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고등학생들을 포함한 수많은 한국인의 머리를 뜨겁게 하고 있다.



주간동아 603호 (p90~91)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도서출판 일빛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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