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2

2007.09.11

혁명적 사유의 노장철학 속으로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7-09-05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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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적 사유의 노장철학 속으로

    <b>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b><br> 강신주 지음/ 그린비 펴냄/ 296쪽/<br> 1만4900원

    인문학이란 본디 과거의 텍스트, 즉 고전과 대화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인문학을 공부하겠다는 사람은 반드시 원전을 읽어야 한다. 그러나 나 같은 중생은 원전 읽기가 쉽지 않다. 지식과 생각의 끈이 짧다 보니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해 고전은 늘 언젠가는 읽고 싶은 대상에 머물 뿐이다.

    그런데 최근 꼭 읽어야 할 텍스트를 안내해주는 책이 적지 않게 출간되고 있다. 덕분에 ‘논어’는 잘 팔리지 않으면서 ‘논어’에 대한 ‘주관적 맥락잡기’의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리라이팅’이니 ‘클래식’이니 하는 이름을 붙여가며 나오는 시리즈가 많다 보니 골라 먹어도 될 정도로 성찬이 차려졌다.

    이런 현상은 동서양에 큰 차이가 없다. 유교 전통이 깊은 한·중·일 동아시아 3국에서는 특히 두드러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논어심득’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1위를 장기간 차지했고, 고전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한 책이 수없이 출간됐다. 이 흐름을 두고 어떤 이는 “학술의 통속화와 문화의 취미화”라고 비아냥거리듯 분석했다.

    198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성행한 이후 새로운 학문의 탄생이나 대사상가의 출현이 이어지지 않자 인문학과 인문출판이 위기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인문학자나 인문편집자는 인류의 지적 유산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으로 위기를 해소하려 했다. 그래서 앞서 말한 출판의 흐름은 시대적 필요성에 따른 듯 보인다. 그런 노력이 세상의 흐름과 부합하면 사회적 화두가 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 흐름 중 하나가 노장(노자와 장자) 읽기다. ‘철학에서 이야기로-우리 시대의 노장 읽기’(책세상) 저자인 김시천에 따르면 노장은 21세기 한국사회의 변화 방향을 보여주는 코드이기 때문에, 현실을 떠나 산속에 은거하는 사람이나 읽는 것으로 치부되던 노장이 공맹(공자와 맹자)과 대등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 사상으로 각광받는 ‘천지개벽’이 이뤄졌다.



    노장이 각광받는 것은 서양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대형서점에는 노장에 관한 책이 수천 권씩 진열돼 있다고 한다. 이것은 김시천의 분석대로 일찍이 조지프 니담이라는 영국 학자가 노장을 “객관적 관찰의 정신을 소유한 자연과학의 토대철학”으로 찬양한 이유도 있겠지만 노장이 불교나 기독교 정신과 쉽게 접목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그린비)은 노장사상을 전공한 동양철학자이면서 서양철학에도 ‘능통’한 강신주가 ‘장자’에 대해 쓴 네 번째 책이다. 저자는 장자를 비트겐슈타인, 데카르트, 들뢰즈, 라캉, 알튀세르 등과 연결하는 전복적 사유를 통해 이 시대에 ‘장자’가 갖는 진정한 의미를 천착하고 있다. 저자는 ‘장자’에 등장하는 아나키즘을 이 책의 화두로 삼았다. 아나키즘은 개인의 삶을 넘어서는 초월적 가치를 거부하는 데서부터 성립한다.

    저자에 따르면 ‘장자’는 노장사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혁명적인 사유, 즉 망각과 연대의 실천철학이다. 그것은 소통이라는 한마디로 정리된다. 소통은 “기존의 고정된 삶의 형식을 극복해 새로운 연결과 연대를 모색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

    장자의 정신은 “도는 걸어가야 이루어진다(道行之而成)”는 말에 응축돼 있다. 진정한 자유는 종교, 국가, 자본 등 초월적 가치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거부하고 우리 삶을 되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이 유쾌함의 전망에 이르려면 타자와의 자유로운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

    이 같은 ‘장자’라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 우리는 세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첫 번째는 ‘장자와 철학’이라는 봉우리다. 장자는 “마음으로 하여금 타자를 자신의 수레로 삼아 그것과 노닐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타자와 만나 소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상상하고 만들어낼 수 없다. 기존의 삶의 규칙이 지닌 문제들은 오직 새로운 삶의 규칙을 통해서만 대상화되고 해소될 수 있다.

    두 번째는 ‘해체와 망각의 논리’라는 봉우리다. 우리가 탈중심적인 존재로서 단독자가 되기 위해서는 망각(비움·虛)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타자와의 소통을 위해서는 맑은 연못처럼 마음을 비워야 한다. 비웠으면 채워지는 것은 숙명, 빈자리가 있기에 타자와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보된다.

    마지막 봉우리는 ‘삶의 강령과 연대의 모색’이다. 맑은 마음을 가졌다면 그 마음을 판단중지의 상태로 만들고, 그런 마음 상태로 타자의 소리에 민감하고 역동적으로 대응하는 양행(兩行), 즉 장자가 던지는 최종적 전언인 “잊어라! 그리고 연결하라”는 강령을 실천해야만 타자와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다.

    저자는 철학자를 여행을 즐기는 여행자에 비유한다. 우리는 이 책에서 한 여행가가 걷는 사유의 길과 문학의 길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보통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사유’를 마치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듯 이야기를 전개해 소설처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요약본이나 입문서는 잊어버리기 쉬우니 꼭 원전을 찾아 읽으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원전 ‘장자’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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