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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인혁당 재건위 유가족 대표 이영교 씨

“피눈물로 보낸 33년 배상판결이 허망합디다”

“남편 올 수 없고, 자식 키웠는데 돈이 무신 소용 있나 생각 들데요”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피눈물로 보낸 33년 배상판결이 허망합디다”

“피눈물로 보낸 33년 배상판결이 허망합디다”

이영교 씨.

“자존심 하나로 살았지요. 그것만큼은 내가 잘한 것 같아요.”

무고한 남편이 ‘빨갱이’로 몰리고 고문과 회유에 시달리며 대법원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된 지 33년. 꽉 다문 입술, 굳은 표정으로 ‘밥알을 모래알 씹듯’ 살아온 인고의 세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생활을 이어오면서도 꿋꿋하게 5남매를 키우고 남편의 혐의를 벗기기 위해 노력해온 이영교(73·고 하재완 씨 부인) 씨.

2007년 1월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이 무죄로 판명났을 때 이씨는 망자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통한의 눈물을 흘렸고, 8월21일 국가배상 판결(총배상액 245억원)이 내려지자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

8월26일 서울 창신동에 있는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사무실 ‘한울삶’에서 그를 만났다. “얼굴이 밝아 보인다”고 했더니 요 며칠 사이 그렇게 바뀐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그랬어요. 제가 겨울에는 마후라 속에서 울고 다니고, 봄에는 스카프 속에서 울고 다닌다고. 반평생을 이카고 살았으이 인상이 다 찌그러졌지. 요즘은 이런 일(무죄, 국가배상 판결) 있으이 밝아야 안 되겄습니까.”



경상도 사투리에 조리 있는 말투가 인상적이다. 빈틈없는 할머니 같다. 그래서 자칭 타칭 인혁당 유가족 대표다. 이번 소송의 변호를 맡은 김형태 변호사는 그를 두고 “부당한 일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끝까지 해결하지만, 한편으로 눈물도 많은 다감한 성격이다”고 귀띔했다.

목욕탕 간다며 집 나선 남편 체포 소식 ‘날벼락’

그해 1974년 그는 서른아홉 살이었다. 큰아들이 열다섯 살, 막내가 네 살이었다. 남편 하재완 씨는 세수한 물로 아이들의 신발을 말끔히 씻어 댓돌에 엎어놓곤 했다. 속 깊은 사랑을 지닌 따뜻한 아빠였다. 건축업자로 열심히 일해 가정부도 둘 만큼 유복한 가정이었다. 그런데 4월 중순 어느 날 남편은 동네 목욕탕에 간다며 집을 나선 뒤 소식이 끊어졌다.

며칠 뒤 남편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됐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는 면회할 수 없었다. 몇 달 뒤에야 그는 수도경비사령부에서 열린 군사재판에 참석해 남편을 볼 수 있었다. 피고인 1인당 가족 한 사람만 출입이 허가된 재판정엔 완전무장한 헌병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수의를 입은 남편은 “지하실에 가둔 채 3일씩 잠도 재우지 않고 고문해 탈장됐고 항문도 빠졌으며, 가까이 지내는 사람 20명을 호명하라며 심하게 때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고, 당시 검사는 “이 ××, 너 덜 맞아서 그 따위 소리 하는 모양인데, 나중에 더 때려주지. 각오해”라고 말한 것으로 참석한 유가족들은 기억했다.

이후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이웃의 눈초리였다. ‘빨갱이’ 집이라고 담벼락에 ‘잡아죽여라, 간첩 집이다’는 문구를 써놓거나, 이웃 가게들은 그에게 물건을 팔지 않아 먼 시장까지 걸어가서 사오기도 했다.

면회는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다. 이듬해 1월 어느 날 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남편 면회를 가자는 거였다.

“새벽에 차에 태워서는 눈을 가리고 서울 남산에 있던 중앙정보부로 데려가더군요. 다른 인혁당 관련 가족들도 끌려와 있었어요. 2박3일 동안 의자에 앉혀놓고 잠도 안 재운 채 엄마 배 속에서 나와서 지금까지 한 모든 일을 적으라고 했어요. 시국이 시끄러우면 피고들에게 더 불리하고 여기저기서 데모하면 진짜 사형시킬지 모른다고 협박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편이 공산주의자라고 적고 나가라고 했어요.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내 남편 하재완을 만나게 해달라, 내 남편이 자기가 공산주의자라고 직접 말하면 적겠다고 거부해서 결국 쓰지 않고 나왔습니다.”

하루 만에 형 집행 하늘이 무너지고 땅 꺼지고

“피눈물로 보낸 33년 배상판결이 허망합디다”

2007년 1월23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무죄판결이 내려진 뒤 울고 있는 이영교 씨(왼쪽에서 두 번째).

1975년 4월8일 오전 10시.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대법원 재판이 시작됐다. 피고는 아무도 없고, 재판관과 가족들만 출석해 10분 만에 끝났다. 항소 기각, 사형 확정. 하루 만인 4월9일 사건 관련자 8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국제법학자협회에서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고 부른다.

“사식이나 넣고 면회나 될까 해서 다음 날 아침 구치소로 갔더니 아침에 형을 집행했다는 거예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는 말을 실감했어요. 그 다음 날 망인의 시신을 인수하러 가서 또 정신을 잃었습니다.”

이씨의 아버지 이봉로 선생은 3·1운동 당시 유림계가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려 했던 ‘파리장서’를 가지고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해요. 아버지는 독립운동하고 그렇게 되찾은 나라는 그 후손을 핍박하고.”

살기 위해 그는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사기그릇 장사, 스카프 장사, 명주이불 장사, 전자제품 장사….

“전자제품 다섯 개 팔면 하나 값이 생겨요. 프라이팬 다리미 보온밥솥 같은 거 신제품 나오면 사와서 조금 이윤 붙여서 내다 팔고. 큰집에서 다시 전셋집으로, 변두리로 옮겨가면서 살았지요. 병들고 지친 몸으로 생활을 꾸려가느라 아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일 수 없었어요. 아이들이 고아 아닌 고아들로 자랐지요.”

그러다 사회가 민주화돼가는 기운을 보고 그는 송상진 씨의 아내 김진생(79) 씨, 도예종 씨의 아내 신동숙(78) 씨 등과 함께 1997년 문정현 신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남편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섰다. 1998년 민주화유가협이 여의도에서 의문사 등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장기 농성에 들어가자 이씨는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이 농성에 참가했다. 그리고 10년5일 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무죄판결을 내리니까 죽이지나 말지, 죽이지나 말지, 왜 이런 일을 저질렀나 싶어 정말 허망했어요. 이번에 배상판결 받아 좋긴 했지만, 남편은 살아 돌아올 수 없고 이제 자식들도 다 키웠는데 돈이 무신 소용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씨는 지금 다리를 절고 있다. 올해 1월 무죄선고가 내려지고, 며칠 뒤 아들 집들이에 가다가 계단에서 넘어졌다.

“마음이 들떠서 발이 땅에 다 안 닿았던가 봐요.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져서 엉덩이 고관절이 부서져버렸어요. 할 수 없이 수술해서 인조관절을 넣었지요. 신부님들이 ‘큰일 해놓고 이제 쉬라고 그런 일 생겼나’라고 농담하시는데, 뭐 이제까지 마음 아팠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이지.”

이씨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정의구현사제단, 문정현 신부, 함세웅 신부 등의 힘이 컸다고 연신 고마움을 나타냈다. 유가족들도 마찬가지 심정이다. 이들은 천주교인권위에 배상금의 상당액을 내놓아 인권과 평화를 위한 추모사업에 쓰도록 할 계획이다.

국가배상금 어떻게 지급되나

당시 관련자에 구상권 행사… “혐의 인정 땐 박근혜 전 대표가 돈 낼 수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8부(권택수 부장판사)는 8월21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관련, 고(故) 우홍선 씨 유족 등 4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희생자별로 27억~33억원씩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총배상액은 245억원(32년치 이자 포함 637억여 원)으로 시국사건과 관련한 국가배상액 중 최고다.

검찰의 항고 여부는 미정이다. 항고는 판결 선고 후 보름 이내에 판결문이 송달되면 그때부터 2주일 안에 결정하게 된다. 검찰이 항고를 포기할 경우 유가족들은 판결에 따라 위자료를 지급받게 된다. 국가가 유족들에게 돈을 지급하면, 국가는 구상권을 행사해 당시 수사에 관여한 이들의 불법행위 정도에 따라 판결금 전액을 나눠 분담시키게 된다.

유가족 측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재판에서 혐의가 인정되면 하급 수사관에서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채무 상속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돈을 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5공 시절 대표적인 간첩 조작사건인 ‘수지 김 사건’과 관련, 국가는 당시 사건을 은폐ㆍ조작한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과 윤태식 씨를 상대로 구상금 소송을 제기해 각각 9억원과 5억5000만원의 지급 판결을 받아냈다.




주간동아 602호 (p57~59)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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