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2

2007.09.11

“뿌린 만큼 못 거두는 私교육”

KDI 보고서 “ 대학진학엔 도움, 인적자원 축적엔 부정적”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7-09-05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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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린 만큼 못 거두는 私교육”

    과외는 필요악인가, 아닌가? KDI는 최근 사교육 문제를 집중연구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조기유학, 교육이민, 부동산 가격 폭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학력위조 사태….

    대한민국 사회에 팽배한 이 극단적인 현상들은 제각기 일정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근원적 해결책의 모색을 한층 어렵게 만든다. 그 근저(根底)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바로 ‘망국병(亡國病)’이라 곧잘 불리는 사교육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8월21일 전격 공개한 ‘사교육의 효과, 수요 및 그 영향 요인에 관한 연구’ 보고서는 사교육 문제를 둘러싼 한국적 특수성의 종합판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번 KDI 보고서는 360여 쪽에 이르는 많은 분량. 그 세부 내용도 △사교육비 문제의 이해 △사교육의 실태, 효과 및 수요에 관한 설문조사 △외국의 과외실태 및 과외정책 △가계특성에 따른 사교육비 분포 △학교의 질, 학업성취도, 과외수요에 대한 실증분석 △사교육이 대학의 학업성취도에 미치는 효과 △대학의 서열구조 변화와 과외 △노동시장 성과로 본 학력·학벌주의 실상 △한국사회의 교육열과 과외수요 창출 요인 등이 망라돼 있다. 연구진도 KDI와 외부 연구자를 통틀어 9명으로 적지 않다.

    이 보고서의 연구 시점은 2004년. 그렇다면 KDI는 왜 지금에서야 보고서를 공개한 것일까. KDI 측은 “비록 연구 시점은 2004년 말까지지만, 보고서 출간을 위한 연구진의 원고 취합이 다소 늦어진 데다 몇몇 부분을 보완하느라 부득이 이번에 발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가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고등학교 1, 2학년 때의 사교육은 유의(有意)하지 않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사교육은 대학 입학 후 되레 학점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나, 사교육이 주로 ‘대학진학 효과’를 갖거나 부정적인 ‘인적자원 효과’를 갖는다는 결과를 도출했다는 점에서다. 이는 ‘뿌린 만큼 거둘 것’이라는 사교육 신봉론자들의 통념을 뒤집는 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주간동아’는 KDI 보고서 내용 중 사교육의 직접적 수요자인 학생, 학부모들과 밀접하게 관련된 핵심사안들을 간추려 소개한다.

    생애기대후생까지 고려한 이색적인 사교육 연구

    먼저 KDI 보고서는 사교육(과외)을 ‘주어진 제약조건하에서 자녀 또는 학생 자신의 평생기대후생을 극대화하기 위한 교육투자의 선택’으로 정의한다. 즉, 과외가 초·중등교육 단계에서 대학진학까지의 학업성취 효과와 대학진학 이후 노동시장에서 지니는 효과까지 감안한 ‘생애기대후생(life-time-expected welfare) 극대화’ 이론을 활용해 사교육비 문제에 종합적으로 접근하고있다.

    연구진은 과외와 개개인의 기대후생을 잇는 연결고리를 ‘과외→학교 내 학업성과→대학입학 성과→대학 내 학업성과→취업성과→취업 후 노동시장에서의 성과’ 구도로까지 연장해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과외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 역시 초·중등교육 부문의 내적 요인뿐 아니라 대학교육, 경제구조, 노동시장, 사회문화적 환경을 포괄하는 종합적 구도에서 파악할 것을 역설한다.

    이번 연구를 총괄한 우천식 KDI 선임연구위원은 “KDI 보고서는 사교육 문제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실증분석이 부족했던 기존 연구들을 뛰어넘고자 한 시도”라면서 “사교육 문제를 따질 때 흔히 과외비 지출 정도나 공교육과의 관계 등에만 초점을 맞춰온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실 사교육도 교육에 대한 투자결정이라는 점에서 보면 초·중등 및 대학 교육을 비롯한 교육부문 전체, 노동시장, 사회문화적 환경 등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 그런 만큼 종합적 접근이 필수적이다”라고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뿌린 만큼 못 거두는 私교육”
    과외 결정에 영향 끼치는 정보 절대 부족

    KDI 보고서는 학생과 학부모가 과외 선택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대학입시나 대학교육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고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학생과 학부모가 그런 투자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량은 충분한지, 제공되는 정보는 정확한지가 관건인 것이다.

    보고서는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KDI가 2004년 12월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인문계 고교생과 학부모 각 1500명씩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과 학부모 모두 과외 및 대학입시 등에 관한 정보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정보의 획득경로나 수단도 매우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학부모의 경우 대입전형 및 대학교육 여건, 졸업자의 취업 및 진로 등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다(응답자의 80% 이상)’고 보았다.

    객관적, 구체적 정보의 부재는 학생과 학부모가 과외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사적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더욱이 이는 정보접근성이 떨어지는 계층에겐 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 같은 ‘정보 실패’로 인한 과외수요 왜곡은 ‘문제가 되는 과외’를 낳을 수밖에 없으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올바른 정보 제공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KDI 보고서의 지적이다.

    ‘정보 실패’가 정상적인 사교육비 지출에 걸림돌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과외 결정에 필요한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는 정보가 충분히 유통되지 못하고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 결과로 사교육비 지출의 비효율적 배분이나 낭비를 불러오는 투자수요 왜곡이 발생하는 것도 필연적이다.

    KDI 보고서는 ‘도시가계연보’(1998~2003)를 토대로 소득계층별 사교육비 지출 형태를 분석하고 사교육비를 포함한 교육비 지출의 형평성 문제를 검토한 결과, 초·중·고교 재학생을 둔 가정이 한 달 동안 개인교습, 입시 및 보습학원, 예체능계 학원 등에서의 수강과 참고서 구입 등에 지출하는 사교육비를 평균 21만5000원으로 집계했다.

    이는 가구소득에 따라 그 격차가 더욱 커져, 2003년 기준으로 소득 상위 10%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40만7000원으로 하위 10% 가구 8만5000원의 4.8배에 달했다. 소득이 높은 가구일수록 사교육비 지출도 그만큼 많은 것.

    KDI 보고서는 가구소득에 따른 사교육비 격차는 이후 자녀의 소득격차로 이어지고 빈곤의 대물림 현상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학교 교육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근원적 조치와 함께 중·저소득층에 대한 학자금 지원 규모를 확대함으로써 이들 가정의 자녀들이 경제적 이유로 양질의 교육기회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뿌린 만큼 못 거두는 私교육”

    오늘도 학생들의 발길은 학원으로 향한다. 경기 고양시 일산구의 학원 밀집지역.

    과외는 대학 내 학업성취도엔 부정적 영향

    그렇다면 과외에 이처럼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는 것만큼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KDI 보고서는 과외 효과를 순수한 대학 입학만을 위한 ‘대학진학 효과’와 대학진학 후의 학업성취 효과인 ‘인적자원 효과’로 구분하고, 이들 효과를 실증분석했다. 사교육이 인적자원 개발이라는 국가정책적 측면에서 볼 때 어떤 효과를 갖는지를 구명하려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서울 상위권 주요 대학인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재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과외 경험이 없는 학생이 과외를 한 학생보다 오히려 고교 내신등급과 수능점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고등학교 3학년 때의 과외는 되레 대학 학점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과외가 ‘대학진학’ 면에서는 다소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인적자원 효과’ 면에서는 부정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곧 대학진학 이후의 학업성취도만 놓고 볼 때 과외가 사회 전체적으로 불필요한 거래비용을 발생시키고, 노동시장의 선별기능에도 왜곡을 초래하는 등 ‘효율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과외가 대학진학 후의 학업성취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해당 연구를 진행한 김태일 고려대 교수(행정학)는 “사교육비 지출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사교육이 대학진학을 위해 수능점수를 반짝 올리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의존적 공부방식 대신 자기주도 학습이 선행돼야 하는 대학에서의 학업성취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이번 연구에서 알 수 있었다”면서 “사교육이 공교육의 부실을 보완하는 순기능이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번 연구결과만 놓고 보면 사교육은 효율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과외는 필요해”

    이처럼 사교육이 경제적 부담을 가중하고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심화하는데도 대다수 학생과 학부모들은 과외의 필요성에 대해 긍정적이다. KDI가 사교육 실태 및 수요에 관해 2004년 12월 전국 인문계 고교생과 학부모 1500명씩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과외가 학교 성적과 대학진학에 미치는 효과, 그리고 대학서열화와 학력·학벌 위주의 채용 관행 등이 과외에 미치는 영향 등을 물은 이 설문조사에서 조사대상 학생의 70% 정도가 과외를 받고 있으며, 학부모의 60% 이상이 성적 향상을 위해 과외가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의 90%가량이 과외 투자비용 대비 학업성적과 대학입시에 대한 기대효과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으며, 학부모의 80% 이상은 과외 결정이 자녀의 미래에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적인 과외수요 창출 원인은 명문대 프리미엄

    과외가 사회적·국가적으로 인적자본을 축적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이번 KDI 보고서의 지적에도 사교육 열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소수의 이른바 일류대학, 명문대학 출신들에 대한 경제적 프리미엄이 집중되고 있는 현상이 과외수요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상자기사 참조).

    결국 4년제 대학에 대한 과외 투자수익은 여전히 높으며 명문대학 졸업생에게 집중된 경제적 프리미엄, 안정적 고수익이 보장되는 의료 관련 학과나 교육대학의 부상 등이 치열한 입시경쟁과 사교육비 팽창을 초래하는 원인이라는 게 KDI의 분석이다. KDI는 9월 중 이번 보고서 공개에 이은 전문가 토론회를 열어 보고서에서 제시한 대안들을 정책화하기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좀더 정밀한 후속 연구를 위해 논의할 계획이다.

    KDI 보고서 내용과는 별개로 정작 과외 현장에서 마주치는 학생과 학부모, 과외 전문가들은 과연 과외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을까? 또한 가계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경제적인 과외 방법론은 없는 것일까? 과외에 대한 논의를 다음 기사로 이어가기로 하자.

    ‘대학 졸업장 효과’

    능력과 관계없이 좋은 대우 기대 … 사교육비 증가 부추겨


    KDI 보고서에서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내용은 ‘대학 졸업장 효과(sheepskin effect)’다. 과거 서구의 대학 졸업장이 양가죽으로 만들어진 데서 비롯된 용어로, 대학 졸업장을 따면 실제 능력과는 관계없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심리에 기인하는 현상을 뜻한다. 문제는 대학 졸업장 효과가 사교육비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연구에서 ‘노동시장 성과로 본 학력·학벌주의 실상’ 부분을 연구한 장수명 한국교원대 교수(경제학)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졸업자는 대학 중퇴 및 수료자보다 월평균 임금이 32만원가량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한국노동패널조사(KILPS) 1~5차년도 자료와 언론사, 입시학원 등의 자료를 활용해 대학서열에 따른 소득·임금 차이를 분석한 결과다. 한편 전문대학을 중퇴하거나 수료한 사람은 고졸자보다 오히려 임금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 교수는 “우리 사회의 ‘졸업장 프리미엄’이 생각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드러나 연구 당사자로서도 깜짝 놀랐다”면서 “이런 점에서 최근 학력위조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볼 때 이미 자기 분야에서 실력을 갖췄으면서도 단지 학력이 낮아 특정 대학에 입학한 적이 있다고 속인 경우와 아예 처음부터 학력위조를 통해 ‘대학 졸업장 효과’를 누릴 만큼 누린 경우를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 돌을 던지는 것은 다소 가혹하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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