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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끈 짧은 편견 딛고 고졸 성공 신화’

학력을 극복한 사람들 “남다른 열정과 도전… 편견이 오히려 채찍질”

  • 정호재 기자 demain@donga.com

가방끈 짧은 편견 딛고 고졸 성공 신화’

자신의 음악세계를 본격적으로 펼치기 위해 서울북공고를 자퇴한 ‘문화 대통령’ 서태지, 형편이 어려운 부모에게 비싼 학비를 부담 지우는 게 싫어 한 학기 만에 캘리포니아 리드대학을 중퇴한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남다른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한국 최초, 또는 세계 최초의 신화를 창조한 실력자라는 점이다.

‘고졸’이라는 편견을 떨치고 직업 분야에서 정상에 올라선 주역들을 우리 주변에서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부족한 학력을 자신의 약점이라 여기고 언급을 회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를 당당히 공개한 이들의 목소리는 혼탁한 세상에서 청량제 구실을 하기에 충분하다. 이들은 한결같이 “외부의 편견에 주눅들지 말고 목표를 향한 도전을 결코 멈추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할 때 지금보다 더 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이다.

“성실함보다 더 큰 힘은 없다” - 요리 명장 정영도 프레지던트호텔 이사

가방끈 짧은 편견 딛고 고졸 성공 신화’

프레지던트호텔 정영도 이사

경북 포항 출신의 요리 명장 정영도(55) 프레지던트호텔 이사는 1969년 처음으로 요리와 인연을 맺었다. 고등학교 과정을 간신히 마친 이후 너무 배가 고파 접시닦이로 취업한 대전시 유성구의 M관광호텔이 그에게 건네준 일종의 운명이었던 셈이다. 그는 손님들이 남긴 밥을 먹으면서 주방장의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웠다. 조리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어떤 부당한 대우도 다 이겨냈다. 이런 성실함을 바탕으로 요리 보조로 승격한 그는 73년에야 처음으로 손님상에 오르는 요리를 만들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이후 퍼시픽호텔, 앰배서더호텔 등에 스카우트됐고, 63빌딩 식당을 총괄하는 대생기업(63시티) 주방장 등을 거쳐 2000년 지금의 프레지던트호텔 부장급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4년 노동부가 선정하는 요리 명장에 뽑히면서 국내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접시닦이를 시작한 지 35년 만에 조리사 출신 임원이 되는 영광도 누렸다. 2005년엔 동탑산업훈장을 품에 안았다.



그의 성공 비결은 배움에 대한 끝없는 열정이다. 일본요리를 익히기 위해 말이 통하지 않는 일본으로 연수를 자처했고, 미국과 유럽의 유명 호텔을 두루 견학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극복했다. 이 같은 노력은 여러 국제요리경연대회에서 프랑스요리로 수상하는 밑거름이 됐다. 자신의 경험을 정리한 ‘식품조리 재료학’이라는 이론서적으로 유학파 주방장들에게 높은 평가도 받았다.

총주방장으로 60여 명의 식구를 거느린 정 이사는 솔선수범하는 리더다. 감독 임무가 중요한 총주방장이지만, 그는 여전히 새벽 6시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 하루를 준비한다. 30년 습관이 몸에 밴 탓이다.

“뭔가에 미치는 사람이 승리한다” - 금호아시아나그룹 윤생진 상무

가방끈 짧은 편견 딛고 고졸 성공 신화’

금호아시아나그룹 윤생진 상무

금호아시아나그룹 윤생진(57) 전략경영본부 상무는 자신의 인생 역정을 묶어 책으로 펴냈다. 제목은 ‘미치게 살아라’. 이 책은 ‘장인들의 고장’이라 할 수 있는 독일에서도 번역 출간돼 독일인들 사이에 ‘한국인 장인정신의 모범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윤 상무의 인생 역정을 살펴보면 가히 ‘신화적’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금호그룹 역사상 최고의 ‘아이디어 왕’으로 손꼽히는 그는 원래 고졸 생산직 사원 출신이다. 목포공고를 졸업하고 1978년 금호타이어에 입사한 이후 그가 세운 기록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는 아이디어 1만8600여 건, 국제특허 17개, 대통령 표창 5회, 이를 바탕으로 사내 특진만 7회를 기록했다. 물론 아이디어가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연구할 시간이 모자라 4시간 이상 자지 않지만, 머리맡에 녹음기를 두고 잘 정도로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구상한다”고 말한다. 13년 동안 TV드라마를 단 하루도 못 봤을 정도로 열정적인 윤씨다.

덕분에 타이어 선진국인 일본 업체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타이어 제조공정을 개발해 회사에 수십억원의 이익을 안겨줄 수 있었다. 이런 성실과 열의를 바탕으로 그는 당시 금호타이어 사장이던 고(故) 박정구 회장 앞에서 직접 신기술 브리핑을 할 수 있었고, 이후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에 진입했다.

윤 상무는 “뭔가에 미쳐야만 성과를 낼 수 있으며, 기업의 생사는 아이디어에 달렸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풍부한 아이디어가 쏟아질 수 있는 현장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 중이다.

“현장 경험은 강의실에서 배울 수 없는 자산” - 패션디자이너 최범석

가방끈 짧은 편견 딛고 고졸 성공 신화’

디자이너 최범석

요즘 가장 ‘잘나가는’ 패션디자이너는 31세 청년 최범석 씨다. ‘제너럴 아이디어’라는 브랜드로 2006년 파리 유명 백화점 프랭탕과 봉마르셰에 진출한 것을 비롯해 뉴욕 상하이 도쿄 등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젊은 나이에 모든 디자이너가 꿈꾸는 유럽시장까지 진출한 촉망받는 디자이너지만, 그의 이력은 정규 학력과 거리가 멀다. 유학파가 넘실대는 패션업계에서 최씨처럼 정상에 오른 예는 전무후무하다. 고졸이 학력의 전부인 그는 직접 현장에서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면서 모든 것을 혼자 배워나갔고, 그 내공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는 디자인 기술보다 냉혹한 시장질서를 먼저 배웠다. 고교 졸업 이후 재미삼아 홍익대 인근에서 옷장사를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의류사업에 재미가 붙자 본격적인 도전을 결심했고, 동대문 원단시장에 취직했다. 원단 배달을 하면서 패션시장의 바닥부터 익혀나갔다. 그리고 부산에서 신발 노점상으로 장사 규모를 키운 그는 틈틈이 패션 공부를 했다. 그는 이렇게 바닥에서 시작해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시장을 잘 알기 때문인지 자유분방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는 그의 옷은 대중의 감성에 잘 맞는다는 평가를 받으며 패션계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이 같은 경력 때문에 그는 얼마 전 한 대학 측으로부터 겸임교수 제안을 받았다. 그런데 그 대학은 최씨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제안을 철회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의 꿈은 대학 겸임교수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저는 현장에서의 갖은 시행착오를 통해 살아남는 법을 배웠습니다. 물론 패션과 관련된 정규교육을 받았으면 좋았겠죠. 하지만 그것이 필수적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들보다 먼저 세계로 뻗어나갈 욕심이 앞섭니다.”

가방끈 짧은 편견 딛고 고졸 성공 신화’

프로축구 대전시티즌의 김호 감독(왼쪽)과 전북현대 최강희 감독

“좋은 스승 모셔라!” - 김호 : 최강희 감독

지난해 국내 축구계의 가장 큰 화제는 다름 아닌 전북현대의 ‘200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이었다. 이 낭보에 가장 기뻐했을 사람은 누구였을까. 축구계 인사들은 바로 ‘축구계의 야인(野人)’으로 불리는 김호(63) 감독이라고 말한다. 현재 대전시티즌을 맡고 있는 김 감독이 바로 전북현대 최강희 감독의 필생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스승과 제자가 모두 국내 축구계의 비주류인 고졸 출신이라는 점이 호사가들의 흥미를 끌었다.

김 감독이 그리 명예로운 칭호가 아닌 ‘야인’으로 불리는 까닭은 유독 대학 학맥이 힘을 발휘하는 축구계에서 고졸 출신으로 거둔 성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는 1970년대 한국대표팀 부동의 센터하프로 9년간 태극마크를 달았고, 지도자로 변신한 뒤에도 실업팀 한일은행을 9차례나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뿐 아니라 수원삼성에서 13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또 이른바 ‘김호의 아이들’이라고 불리는 황석근 정용환 최강희 윤성효 이학종 등 40명 이상의 출중한 국가대표를 길러냈다.

김 감독의 전성기는 1994년 월드컵대표팀을 이끌 때였다. 그러나 영광보다 시련이 더 많았다. 본선에서 강호 스페인과 2대 2로 비기는 등 2무1패로 선전했지만, 예선 때부터 끊임없는 중상모략에 시달려 중간에 그만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축구계에서는 “그가 대학을 나왔더라도 그렇게 심하게 흔들었을까”라는 탄식까지 나올 정도였다.

김 감독은 자신의 스승을 따르다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다. 축구에 눈뜨게 해준 동래고 스승 고(故) 안종수 씨가 제일모직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호출하자, 대학행을 포기하고 실업팀에 입단한 것이다. 그의 이 결정은 학맥과 인맥이 크게 영향을 끼치는 축구계에서 평생 핸디캡으로 작용했지만, 그는 이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지도자로 성공하기 위해 대졸 선수 이상의 교양을 쌓으려 다방면으로 노력했다고 한다.

김 감독의 애제자가 최강희 감독이다. 최 감독 역시 프로축구 무대에서 ‘잡초과’로 분류된다. 고졸(우신고) 출신인 최 감독은 중·고등학교 시절 엘리트 코스를 밟지 못했기 때문에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그러나 뼈를 깎는 노력으로 국가대표가 되는 집념을 보였다.

그의 행운은 바로 김 감독을 스승으로 만났다는 것. 한일은행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최 감독은 김 감독을 통해 축구에 눈을 떴고, 그 인연으로 수원삼성에서 김 감독을 보필하며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이 두 감독은 현재 치열하게 순위다툼 중이지만, 둘의 사제관계가 영원할 것이라는 부러움을 사고 있다.



주간동아 602호 (p32~34)

정호재 기자 dema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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