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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추락하는 생명윤리

커져라, 세져라 이타적 기증 행렬이여!

생명윤리 바탕으로 숭고한 나눔의 바다 만들자

  • 이인영 한림대 교수·법학 liyou@hallym.ac.kr

커져라, 세져라 이타적 기증 행렬이여!

커져라, 세져라 이타적 기증 행렬이여!

우리 사회에서 장기나 골수, 정자와 난자의 이타적 기증은
쉽지 않다.

최근 정부는 ‘생식세포 관리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가 열렸는데, 법안 내용과 관련한 찬반 의견이 충돌했다. 특히 난자의 채취·기증과 관련해 정부 안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20세 이상의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 외에는 난자를 기증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었다.

그런데 공청회 과정에서 난자 기증자의 자격을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으로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이 여성계 일부에서 제기됐다. 정자 기증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20세 이상 남성이면 가능한 데 반해 여성의 경우 출산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이며, 비록 출산 경험이 없더라도 자유로운 의사결정으로 난자를 기증하려 한다면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 그 밖에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하지 않는 한 여성 기증자가 자발적으로 결정한 난자 기증 의사를 부정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승인 거치면 특정인 지정 난자 기증

기본적으로 생식세포인 정자와 난자 구입에 금전적 대가를 지급하거나 대리모의 자궁을 빌려 출산하기 위해 금전적 대가를 지급하는 것은 기증자의 가치는 물론 인간생명의 존엄과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다. 이런 관점은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취급돼야 한다는 기본 원리에 근거한다. 만약 난자 제공을 무제한 시장원리에만 맡긴다면 여러 가지 폐해가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면 경제적으로 궁핍한 여성은 절박한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몸을 상품화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불임부부의 경우 부유층은 난자나 대리모를 시장거래를 통해 제공받을 수 있겠지만 가난한 계층은 그렇지 못한 불공평이 생길 수도 있다. 또한 불임부부의 딱한 사정을 이용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알선조직이 암약할 수도 있다. ‘주간동아’ 보도대로 나라를 가로지르는 암시장이 벌써부터 성행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는 연구용 난자를 돈으로 구입한 황우석 연구팀의 사태를 겪은 뒤에야 난자 매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장기매매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다가 부작용이 극에 이르자 이를 바로잡기 위해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을 만든 배경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포인트는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 그 밖에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하지 않고도 난자 기증이나 대리모에 대한 자발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지 여부다. 장기의 경우는 이를 법률로 해결하고 있다. 법률은 ‘장기 등의 기증자를 다른 사람의 장기 등의 기능 회복을 위해 대가 없이 자신의 특정 장기 등을 제공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으며, 장기 기증자의 의사가 자발적이라면 ‘이타적 기증’을 허용하고 있다. 장기 기증자가 살아 있는 사람인 경우엔 미리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의 장(長)에게서 승인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기증자 스스로 ‘이식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다’. 가끔 신문, 방송을 통해 가족이나 이웃 간에 장기 일부를 기증해 이식수술에 성공했다는 미담을 접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규정 덕분이다.

앞으로 제정될 법률안에 따르면 난자 기증도 장기 기증과 기본 틀은 동일하다. 먼저 자신의 생식세포를 채취 또는 기증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은 전적으로 기증자 본인이 갖는다. 원칙적으로 난자나 정자 기증자는 이타적 기증 형태로 특정인을 지정해 기증할 수 없지만, 기증자가 불임부부 또는 그의 친족으로 기증의 자발성 여부, 가족관계에 관한 문제 가능성 등을 기관위원회 심의를 거쳐 승인받았다면 ‘특정인을 지정해 기증할 수 있다’.

서두에 제기한 난자 기증 조건에 관한 논쟁으로 돌아가보자. 당초 난자 기증자를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으로 한다는 전제조건을 둔 까닭은 다음과 같다. 난자의 채취는 매우 고통스런 과정을 동반한다. 과배란 유도를 위해 투여한 호르몬제제의 부작용으로 난소과자극증후군이 초래될 수 있고, 심하면 부종이나 복수, 혈액응고 장애, 간부전 및 성인성호흡곤란증후군이 발생할 수도 있다. 중증인 경우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 이런 합병증은 발생률이 낮기는 하지만, 발생할 경우 골반염으로 발전해 이후 난자 기증자가 불임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만약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과 위험으로터 기증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특히 미혼여성의 경우 더욱 배려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 논쟁의 결과는 절충적인 방법으로 해결됐다. 난자 기증자가 출산 경험이 없는 경우엔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심의, 승인을 받는다는 단서를 포함시켜 기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선의의 기증자 의사결정 배려와 존중 필요

우리 사회에서 장기나 골수, 정자와 난자의 이타적 기증은 쉽지 않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어야 하고 장기의 경우 16세 미만이거나 임부, 해산일로부터 3개월이 경과하지 않았거나 정신질환자, 정신지체인은 제한되며, 마약이나 대마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에 중독된 자도 기증자가 될 수 없다. 또한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시술 의사에게 장기적출 수술에 대한 내용과 시술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 향후 치료계획 등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동의 여부를 표시해야 한다. 난자는 특히 기증자와 수증자가 고용관계나 친족관계인 경우, 그 밖에 종속적이거나 강압적인 관계로 의심되는 경우엔 기증을 금지하고 있다. 친지 등에게 ‘지정 기증’하는 경우엔 정부기관이나 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의 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런 제약 요건은 결국 기증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를 위한 완충장치 구실을 한다. 이런 완충장치가 많이 요구될수록 그 행위 자체에 윤리적 논쟁과 안전상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됐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사전에 대비하고 다시금 점검하는 잣대가 생명윤리 규범이며, 실천규범으로서 보호와 배려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타적 기증자들의 선의의 의사결정을 우리 사회가 수용하고 존중해야 함은 물론이다.

예를 들면 근로자가 이식대상자나 수증자를 선정하지 않고 장기나 생식세포를 기증하는 경우, 신체검사 또는 적출에 소요되는 입원기간이나 채출에 소요되는 내원일에 대해 공무원의 소속기관 장은 병가로 처리해야 하며, 그 외 근로자의 사용자는 유급휴가로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상업적 매매가 아닌 이타적 기증인 경우 사회가 이를 수용하고 복지 차원에서 지원도 고려한다는 의미다.

완충장치의 고려가 없는 이타적 기증이 있을 수 없듯, 윤리를 바탕으로 한 이타적 기증에는 그들을 위한 배려와 존중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우리도 윤리를 바탕으로 한 이타의 바다로 빠져야 할 때다.

주목받는 영국 장기기증 활성화 대책

반대의사 없으면 전 국민 잠재기증자 ‘옵트아웃’ 논란


영국 정부가 장기기증 거부 의사를 밝힌 사람을 제외한 전 국민을 ‘잠재적 기증자’로 보겠다는 장기기증 활성화 정책을 추진해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영국 보건부는 최근 펴낸 의료정책 연례보고서를 통해 장기기증을 서약한 국민만을 대상으로 사후 장기이식이 가능했던 기존의 ‘옵트인(opt-in)’ 방식을 폐지하고 ‘옵트아웃(opt-out)’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보건부가 ‘옵트아웃’ 또는 ‘추정동의(presumed consent)’ 방식이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장기기증 촉진 방안은 ‘장기기증 의사가 없다’고 신고한 사람을 제외한 전 국민을 장기기증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커져라, 세져라 이타적 기증 행렬이여!

최근 설문조사에서 장기기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영국인은 70%가 넘지만 장기기증 등록자는 25%에 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선진국 가운데 장기기증 비율이 낮은 나라로 꼽혀온 영국 의료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옵트아웃’ 방식의 도입을 요구해왔다. 영국 보건부는 조만간 이 방식을 도입해 의료계 요구도 수용하면서 장기기증 후진국 이미지도 개선하겠다는 구상이다. 영국 보건부 의료정책 최고책임자인 리엄 도널드슨은 “현재로서는 장기 부족으로 죽어가는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옵트아웃’ 도입뿐”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가 7200여 명이나 되는 데 비해, 이중 절반에도 못 미치는 3000명의 환자들만 장기이식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러다 보니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죽는 환자가 늘어가는 형편이다. 현재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 환자만 연간 4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보건부는 같은 유럽 국가인 스페인이 ‘옵트아웃’을 도입한 뒤 장기기증 비율이 2배 이상 늘어난 사례를 거론하며 영국도 스페인의 전례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최근 설문조사에서 장기기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영국인은 70%가 넘지만 장기기증 등록자는 25%에 그치는 것으로 드러나 ‘옵트인’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게다가 흑인을 비롯한 소수인종 출신으로 장기기증이 필요한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더욱 심하다. 전통적으로 다문화 사회를 표방해온 영국의 소수인종은 국내에서 자신들에게 적합한 장기를 구하기 어려워 ‘해외 원정’에 나서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옵트아웃’이 의료계로부터 환영받고 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자’는 명분에도 현실적으로 뛰어넘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반대론자들은 ‘옵트아웃’을 도입할 경우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외과수술 수요를 영국 병원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외과수술 일정을 잡아놓고도 몇 개월씩 기다려야 수술대에 오를 수 있는 현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 현실에서 ‘옵트아웃’이 원활하게 작동할지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외과전문의의 획기적 증원과 중환자실의 개편, 그리고 이를 위한 정부예산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옵트아웃’은 공염불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환자들도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환자가 정상적으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장기기증 여부를 놓고 급박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이 환자들이 모두 장기기증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얘기다. 또 일부에서는 스웨덴이 ‘옵트아웃’을 도입했음에도 장기기증 비율이 영국의 절반밖에 안 되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러한 논란 때문에 영국에서는 이미 3년 전 비슷한 방안을 놓고 의회 표결까지 했지만 ‘옵트아웃’ 방식이 부결된 바 있다. 물론 영국 보건부 측은 장기 부족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기 때문에 의회를 비롯한 여론주도층도 결국 ‘옵트아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또한 이번 연례보고서를 통해 제안한 장기기증 개선 방안에 대해 조만간 시행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이는 머지않아 장기기증 활성화 방안을 놓고 영국 사회가 ‘생명권’ 논쟁에 접어들 것을 예고한다.

코벤트리=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주간동아 2007.08.14 598호 (p44~46)

이인영 한림대 교수·법학 liyou@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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