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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맛이야!|손님이 지켜야 할 예의

맛없는 식당 음식? 어서 투정해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foodi2@naver.com

맛없는 식당 음식? 어서 투정해

맛없는 식당 음식? 어서 투정해

돈 내고 사먹는 음식이 맛이 없다면 맛없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나는 암행취재를 원칙으로 한다. 대놓고 취재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은 뭔가 대접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고 나도 반찬 하나라도 더 나오면 글 쓰는 데 부담이 된다. 우선 음식을 먹고 난 후, 또는 먹다가 주인인 듯한 사람에게 눈치 못 채게 핵심 질문만 간단히 던진다. “복이 야들야들한데 생복인가요?” “김치가 잘 삭았던데 저장하는 곳이 따로 있나요?” 이런 질문에 보통 식당 주인들은 거리낌 없이, 어떨 때는 신나서 묻지도 않은 비법까지 늘어놓는다. 질문의 전제가 칭찬이니 주인 처지에서는 기분 좋은 일인 것이다. 말이 암행취재지 정말 쉽다.

그러나 이것은 음식이 맛있을 때 얘기고 맛이 없으면 이때는 취재가 아니다. 맛 칼럼니스트가 아닌 그냥 손님으로 행동한다. 손님들은 대부분 ‘에이, 맛없네. 다음에 절대 오지 말아야지’라고 속으로 말한다. 그럴 때는 돈 내고 사먹는 음식인데 맛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따져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때로는 음식을 다시 내오게 할 정도로 강하게 나가야 한다. 특히 1인분에 몇만원씩 하는 비싼 음식은 그 자리에서 바꿔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식당 주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주인들이 자기 집 음식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면전에서 따져야 음식 질 개선, 식당도 발전

불만 사항은 구체적으로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오이냉국이 이렇게 달아서야 먹을 수 있겠어요?” “생고기에 왜 맛소금을 뿌려요?” 이런 식으로 따지는 손님에게 대드는 주인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세요? 죄송합니다. 다음에 오시면 제대로 된 음식을 드릴게요”라며 대부분 고개를 숙인다.

요즘엔 음식을 평가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 블로그 덕분에 너도나도 음식 전문가다. 블로그에 한번 뜨면 수천, 수만명이 일시에 접속하며 댓글까지 남긴다. 대중매체에 소개된 식당들도 ‘맛대맛에 방송된 집’ 식으로 블로그에서 다시 한 번 검증되는 게 예사다. 이때는 대중매체에 대한 평까지 따라붙어 때에 따라서는 대중매체보다 블로그를 더 신뢰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니까 ‘맛 칼럼니스트 추천 맛집’보다 ‘블로그 추천 맛집’이 더 신뢰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블로그 식당 평가가 칭찬 일색이 아니라는 데 식당 주인들의 고민이 있다. 맛없다, 비싸다, 불친절하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가 예사로 붙는다. 그런 평가가 객관적일 때는 식당 주인도 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디저트에 힘이 약하다’ ‘전반적으로 맛이 밋밋하다’ 등 인상기에 가까운 글로 좋지 않은 평가를 해놓으면 식당 주인이나 요리사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개선하려 해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체면을 중시해 면전에서 허물을 지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에서는 조용히 있다가 뒤에서 구시렁거린다면 이는 예의에도 어긋난다. 설령 허물 있는 사람도 제 잘못을 살피기보다는 사람들이 뒤에서 욕한다고 못마땅해한다.

어느 식당에 갔다가 음식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기에 사진을 찍으려다 제지당했다. “저희 식당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워낙 단호하고 정중한 태도여서 난 아무 말도 못했다. 블로그에 실려봤자 별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업주의 결정인 듯했다. 식당 방침이 이러면 어쩔 수 없다. 신분을 밝힌 뒤 취재를 청할 수도 있으나 한번 제지당한 처지에서 더 민망할 듯해 그만뒀다.

우리나라 누리꾼들은 블로그 꾸미는 데 세계 제일이다. 나 역시 취재거리를 찾기 위해 블로그를 서핑한다. 음식 사진이며 맛 평가 글이 전문가 뺨치는 블로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식당 입구부터 인테리어, 테이블, 수저, 차림표, 음식과 화장실까지 찍어 올려놓은 블로그를 보면 글만 가득한 내 칼럼은 ‘구석기시대 유물’처럼 보인다.

식당과 소비자가 소통할 수 있는 이 훌륭한 매체가 식당 주인도 누리꾼도 모두 만족하는 단계에 이르려면 면전에서부터 솔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계산을 하고 나오다 고기가 퍽퍽해 맛이 없었다고 주인에게 말했더니 ‘오늘은 육질이 안 좋다. 죄송하다. 다음에 오면 좋은 고기로 올리겠다’고 말했다.”

맛없다고 식당 주인 앞에서 투정하는 것도 손님이 갖춰야 할 예의다.



주간동아 2007.08.07 597호 (p89~89)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foodi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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