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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빗나간 ‘참여정부 시스템’

청와대 시스템도 ‘빨간 불’

선거 낙선자 중용 등 코드인사 난무 … 잦은 자리이동으로 전문성·업무집중력 저하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청와대 시스템도 ‘빨간 불’

청와대 시스템도 ‘빨간 불’
2003년 2월25일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에 ‘정책프로세스개선비서관’직을 신설했다. 초대 비서관은 전기정(현 상명대 교수) 씨. ‘다면평가’라는 인사제도를 처음으로 정치권에 도입한 그의 임무는 청와대와 참여정부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시스템에 대한 청와대의 의지는 굳건했다. ‘대기업이 청와대를 벤치마킹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국정운영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공언이 수시로 청와대 담을 넘었다. 노 대통령도 ‘추천-검증-조정’의 3단계 시스템 인사를 통해 인재를 등용하겠다고 의지를 피력했고, 이를 지키려 애썼다. 정찬용 전 인사수석의 말이다.

“노 대통령과 인연이 없는 인사를 후보로 올리면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러나 별문제 없이 통과됐다. 아무 인연이 없는 사람을 정무직에 앉히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참여정부 초기 ‘시스템’에 무게가 실렸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청와대의 시스템 혁신은 몇 가지 면에서 성과가 있었다. 먼저 공직사회의 서열과 기수를 파괴했다. 팀제를 도입해 업무 효율성을 제고했고, 역량 있는 민간기업인에게 공직을 개방해 경쟁력을 높였다. 부처간 인사교류도 어느 정부보다 활발했다.

참여정부 들어 청와대 직제개편 20차례 넘어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참여정부의 시스템은 상처로 얼룩졌다. 특히 청와대 내부 시스템에 빨간 불이 켜진 지 오래다. 총선과 지방선거 낙선자가 중용됐고 정치적, 지역적 안배에 따른 인사가 등장했다. 여론은 이를 ‘코드인사’라 불렀고 아마추어리즘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잘 이해하는 인사를 중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시스템의 형해화(形骸化)’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 무엇이 청와대 시스템을 왜곡했을까.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최진 소장은 청와대 시스템의 붕괴와 관련해 ‘빈번한 직제 변경과 인사’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역대 대통령들은 중대한 문제가 생기거나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한해 청와대 조직을 개편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직제를 바꿨다. 자리를 신설하거나 사람들의 이동도 빈번했다.

참여정부 청와대 시스템의 변화상은 통계를 보면 명확해진다. 최 소장에 따르면 참여정부 출범 이후부터 2006년 2월 현재까지 청와대는 모두 5차례에 걸쳐 ‘개편’을 단행했다. 여기에 신설 또는 통폐합 10여 차례를 포함하면 청와대 직제 개편은 20차례 이상으로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자리’와 ‘사람’이 명멸했다.

청와대 시스템도 ‘빨간 불’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위)과 송경희 전 대변인.

국민의 관심 속에 신설된 국민참여수석실(국참실)이 대표적인 예다. 국참실은 참여정부가 최고 가치로 내세운 ‘국정운영 과정에 국민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만든 비서관실이다. 그러나 이 조직은 3년도 되지 않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정무수석실도 참여정부 들어 부침(浮沈)을 거듭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정치와 거리를 뒀다. 과거 정권과 달리 정무기능도 축소했다. 유인태 정무수석비서관이 유일한 국회와의 소통구조였다. 그러나 2004년 그가 총선에 출마하자 노 대통령은 정무수석직을 없애버렸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둔 2006년 3월,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으로 임명하면서 정치 보폭을 확대했다. 노 대통령은 그 후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 오영교 전 행자부 장관, 조영택 전 국무조정실장 등을 정무특보로 임명해 기능을 크게 보강했다.

참여정부 출범 후 폐지한 경제수석실은 경제정책수석실로 명칭을 바꿔 재출범했다. 2006년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축소하는 대신 통일외교안보정책실을 출범시켰다.

비서관들의 ‘명암’도 엇갈렸다. 2004년 3월, 국회 탄핵을 받은 노 대통령은 무료한 시간을 독서로 보냈다. 그때 노 대통령이 읽은 책 가운데 하나가 외교통상부 이주흠 외무관이 쓴 ‘드골 리더십과 지도자론’이었다. 감명을 받은 노 대통령은 ‘리더십비서관’직을 신설해 그를 청와대로 불렀다.

그러나 외교부 직원에서 대통령비서관으로 신분이 바뀐 그는 6개월 후 다시 친정인 외교부로 자리를 옮겨 미얀마 대사(현 외교통상부 외교안보연구원장)로 나갔다. 영전이었지만 가는 사람도, 보내는 청와대도 ‘민망한’ 모습이었다.

참여정부 시스템 설계사였던 정책프로세스비서관실과 전기정 비서관의 행로도 세인의 관심사였다. 정책프로세스비서관실은 참여정부 출범 후 수시로 논쟁의 중심에 섰다. 결국 2004년 12월 온갖 비판 속에 정책프로세스비서관실의 문패는 내려졌고, 업무는 업무혁신비서관실로 통폐합됐다. 그에 앞서 전 비서관도 2004년 3월 비서관직을 떠났다. 그는 당초 ‘3개월이면 청와대에 과학적인 인사시스템이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꿈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 그가 떠난 청와대는 ‘아마추어리즘’ 시비가 지금도 이어진다.

비서실 내부의 자리이동도 역대 최고다. 1년이 채 못 돼 통폐합된 자리가 부지기수다. 업무는 유사한데 이름만 두세 차례 바꾼 경우도 있다. 참모 1명이 5~6개 직책을 돌아가며 맡는 경우도 흔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다. 동아일보 DB에 게재된 천 대변인의 청와대 이력은 의전비서관, 상황실장, 대변인 등 모두 6개다. 2003년 5월부터 시작해 평균 9개월에 한 번씩 자리를 옮긴 셈이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 시절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이처럼 잦은 자리이동이 몰고 온 가장 큰 문제로 전문성과 업무집중력 저하를 꼽는다.

“청와대 비서관은 경우에 따라 부처 등에서 오는 자료를 최종 판단해 대통령에게 보고하거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천 대변인과 윤 전 대변인이 ‘슈퍼맨’인지는 모르겠지만, 잦은 보직변경은 전문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또 정부부처도 효율적인 업무협의를 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국장급 180여 명 평균 재직기간 10.3개월

최진 소장은 2006년 9월 현재 청와대 국장급 인사 180여 명의 평균 재직기간은 10.3개월에 불과하다고 그의 저서 ‘대통령리더십 총론’에서 밝혔다. 6개월 이하는 무려 39%(70명). 참여정부가 시스템 정부라는 주장과 배치하는 통계다.

이런 활동은 청와대를 활동적인 조직으로 보이게 하는 면도 있지만, 역량을 약화한 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참여정부 4년의 청와대 시스템을 지켜본 여의도연구소 한 연구위원은 “청와대가 국정운영 시스템의 실험장이 됐다”고 평가한다. 그는 청와대의 ‘시스템’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너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주간동아 2007.07.03 592호 (p20~21)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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