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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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은 말뿐, 非시스템 판쳤다

잦은 직제개편으로 효율성 떨어뜨리고 안희정 씨 대북 접촉 등 오작동 잦아

  • 최진 고려대 연구교수·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

    입력2007-06-27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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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 1

    시스템은 말뿐, 非시스템 판쳤다
    노무현 대통령의 막말과 참여정부 시스템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언뜻 서로 거리가 먼 것 같은 양자(兩者) 사이에는 그러나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대통령의 말이 외부로 표출되기까지는 대체로 관련부처의 초안 작성→청와대 해당 비서실의 취합·조율→청와대 연설비서실의 완성→부속실의 마무리→대통령의 최종 확정이라는 4~5단계를 거친 뒤 비로소 ‘규격화된 말씀자료’가 나오기 때문에, 만약 대통령에게서 막말이 튀어나왔다면 이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탁월한 대중연설가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대통령이 된 뒤에는 필요에 따라 첨삭은 했지만 대부분 답답할 정도로 ‘말씀자료’에 따랐다. 선진국 국가지도자들의 경우 국민 앞에 설 때 토씨 하나까지 철저히 준비된 언어와 표정을 연출한다.

    실수가 잦아 ‘결례의 천재’라는 오명까지 듣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백악관의 말씀자료를 충실히 읽어 내려간다. 그럼에도 숫자를 잘못 읽거나 발음을 잘못해서 구설에 오르지만,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이 직접 밤새워가며 쓴 뒤 다음 날 국민 앞에서 ‘캬’ ‘쪽팔린다’ ‘버스럭지’처럼 국어사전에도 없는 어법을 마구 구사하지는 않는다. 결국 대통령의 막말은 참여정부 시스템의 오작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 2

    영화배우 전도연과 참여정부의 인사시스템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5월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영화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도연 씨의 옆에서 멋쩍게 웃고 있는 중년남자. 그가 참여정부에서 1년4개월 동안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이창동 감독이라는 사실에 새삼 주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감독이 2003년 2월 어느 날 갑자기 대한민국 문화정책의 사령탑으로 발탁됐을 당시, 과연 참여정부의 철통같은 인사시스템, 즉 중앙인사위원회→청와대 인사수석실→민정수석실→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총리 추천→대통령 재가로 이어지는 5중, 6중 검증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러한 유의 코드인사는 참여정부 4년 반이 넘도록 시스템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스템 문제는 이 밖에도 많다. 정무직 임명 과정에서 나타난 코드인사를 필두로 청와대의 아마추어리즘 논란, 정부혁신, 남미 이과수폭포 관광건으로 구설에 오른 정부출연기관 간부들의 낙하산 인사, 최근 활화산처럼 불붙고 있는 기자실 통폐합 공방까지 모두 시스템 문제다.

    시스템 방향은 제대로, 방법은 별로

    사실 참여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소리 높여 시스템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시스템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했으며, 시스템의 경직성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시스템 정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임기 4년 반 동안 대통령 입에서 가장 자주 나온 단어를 꼽으면 ‘시스템’과 ‘혁신’일 것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청와대 조직을 짧게는 3개월마다 점검하고 재조정하도록 지시했는가 하면, 정부혁신을 임기 내내 지속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천명한 바 있다.

    정부혁신은 곧 정부시스템 혁신을 뜻하므로 대통령의 말을 달리 표현하면 참여정부는 첫 출발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시스템 개혁’에 전력투구하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시스템사(史)를 보면 참여정부의 공과(功過), 나아가 노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성패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기의 약 4분의 3이 지난 요즘, 당사자인 노 대통령과 측근 그룹이 자체 평가하는 참여정부의 시스템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다만 외부 평가는 대부분 가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겠다’고 발벗고 나선 것이 참여정부평가포럼(이하 참평)이다.

    노 대통령은 6월4일 참평포럼 초청연설에서 “어느 정부도 맨입으로 해결하지 못했던 꼴통 과제를 참여정부가 모두 해결했다”고 주장했듯 시스템 혁신은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물론 참여정부가 지향하는 시스템의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디지털 예산회계 시스템, 고위공무원단제도, 공직개방제, 외교시스템 개편 같은 정부혁신의 지향점에 대해서는 야당조차 부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참여정부의 시스템이 비판받는 이유는 우선 목표지상주의 때문이다. 목표가 옳으니 힘들어도 따라오면 언젠가는 좋아진다는 논리는 또 다른 독선일 뿐이다. 예컨대 정부가 새 제도를 실시하면서 공무원들에게 4~년 지나면 좋아질 테니 참고 견디라고 한다면 따를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과거 개혁이 그 정당성에도 실패로 끝난 것은 이처럼 과정을 경시하는 낙관주의적 명분주의 때문이었다. 참여정부의 시스템이 호되게 비판받는 또 다른 이유는 말로는 시스템을 강조하면서 시스템과는 거리가 먼 비(非)시스템적 현상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시스템주의의 제1 가치는 효율성인데, 참여정부의 청와대 시스템은 지나치게 자주 바뀌고 산만해서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는다. 역대 정부의 청와대는 대통령→비서실장→수석비서관으로 이어지는 일원화 체계인 데 비해 참여정부의 청와대는 대통령→비서실장·정책실장·안보실장의 3두체제→수석으로 이어지는 다원화 체계이기 때문에 업무영역과 역할분담이 모호한 측면이 있다. 집권 초 10명의 간부가 참석하는 한 정부부처 회의에 업무영역이 비슷한 청와대 참모 4명이 참석하는 어색한 모습이 연출되는가 하면, 남북 관련 방송프로그램에 청와대의 외교 관계자 2명이 함께 출연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 적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언론이 ‘청와대 속의 이너서클’로 소개했던 386 운동권 출신 10여 명이 중심이 돼 가동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선임 비서관회의도 공조직 체계라고 하기는 어렵다.

    시스템 비정책은 노대통령 反권위 성향 탓?

    참여정부의 또 다른 시스템 오작동 사례는 안희정 씨의 대북 접촉이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씨는 2007년 5월4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참여정부가 모든 것을 바꿨다. 민의에 의해 만들어진 법과 제도 아래 모든 권력이 작동하도록 했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본인은 얼마 전 비공식 라인을 통해 북한과 접촉함으로써 정부의 공식 시스템을 무력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북 접촉의 경우 노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정부 공식라인의 투명한 접촉을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시스템 정부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렇다면 왜 진정한 시스템주의가 정착되지 못하는가. 노 대통령이 임기 내내 시스템주의를 주창하는데도 오히려 반시스템적 현상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우선 노 대통령의 성장과정 자체가 규범적 틀을 거부하는 반권위주의적인 성향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초등학교 6년 동안 창조성·결단성·지도능력은 ‘가’였지만 준법성은 ‘나’였다. 이미 유소년기부터 규칙적이고 단계적인 시스템적 생활을 싫어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학교 수업을 학기당 30여 일씩 빼먹고 두발 단속, 훈육선생의 지시 같은 규격화된 문화를 선천적으로 싫어하면서 형성된 반권위주의는 자신의 권위는 물론 타인의 권위를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따라서 반권위주의 시각에서 볼 때 ‘기존 시스템=권위주의’이기 때문에, 시스템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시스템을 경시하는 ‘리더십의 모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아울러 노 대통령은 어릴 때부터 소외받고 천대받으면서 뜻이 통하는 소외자끼리 어울리는 이른바 ‘마이너리티 콤플렉스’가 강해 ‘공적인 시스템’보다 ‘사적인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제2의 노사모’라는 소리를 듣는 참여정부평가포럼도 외롭고 괴로움에 지친 사람들끼리 똘똘 뭉친 결사대의 성격이 짙다.

    사조직 냄새 풍기는 유사 공조직 득세

    이들은 강력한 응집력과 자기 존재의 과시, 역사적 소명감으로 무장해 지리멸렬한 대선정국 아래서 유일무이하게 결집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은 소수이기에 더욱 견고하게 뭉쳐 2007년 대선은 물론 2008년 총선에서 소수파의 힘, 즉 마이너리티의 위력을 보여주겠다고 벼른다. 마이너리티 콤플렉스가 강한 사람은 법이나 규범 같은 ‘죽어 있는 제도’보다 오랜 친구나 동창, 후배, 측근처럼 ‘살아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패밀리즘(familism)이 쉽게 작동한다. 패밀리즘이 강한 지도자는 한 시스템을 제도로 정착해나가는 와중에 가까운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 일시에 마음을 바꾸는 비시스템적 성향이 강한 편이다.

    대통령이 공조직을 불신하면 특보, 보좌관, 위원회 같은 사조직 냄새를 풍기는 유사 공조직이 득세하게 된다. 과거 6공의 노태우 대통령은 공조직을 불신해 친인척인 박철언 씨를 통해 특보나 보좌관제도를 활성화했듯 노 대통령도 청와대 특보와 보좌관제도, 위원회 제도를 적극 활용한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는 2실장 5수석 6보좌관제로 장·차관급 보좌관이 수석보다 많았다. 이 보좌관들은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포진해 다른 청와대 수석이나 부처 장관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정책수행 기능을 담당했다.

    노 대통령은 ‘당장 눈에 보이는 현재’보다 ‘멀리 내다보이는 미래’에 더 많은 힘을 쏟는 ‘정치적 포스트모더니스트(political postmodernist)’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는 현재의 규범적 가치나 시스템을 ‘무조건’이라고 할 만큼 강하게 부정하기 때문에 전위적·모순적이며 때로는 병폐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언젠가는 역사가 우리를 평가한다’는 소명감을 갖고 오로지 미래의 희망을 향해 진군하는 기사와도 같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스트적인 국가지도자나 참모는 국민이나 언론의 비판에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이 설정한 역사적·시대적 당위성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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