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5

2007.05.15

욕망의 덩어리에서 주체의 해방으로 ‘군상’의 재발견

  • 이병희 미술평론가

    입력2007-05-09 19: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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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의 덩어리에서 주체의 해방으로 ‘군상’의 재발견

    ‘군상’

    그들은 춤을 추고 있다. 한데 어우러져 군무(群舞)를 추고 있다. 그들은 씨름을 하고 있기도 하고, 두 팔을 한껏 벌려 어깨를 나란히 한 채 환호성을 지르고 있기도 하다. 그들은 환호와 외침의 존재들이다. 그들의 몸은 찢어질 듯 격렬하게 움직인다. 춤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고 생명을 찬양하는 몸짓이기도 하며, 전쟁터의 모습이기도 하다. 때로 춤은 폭도들의 모습일 수도, 해방촌의 자유 존재의 모습일 수도 있다. 춤은 필사적인 저항이나 장렬한 죽음이기도 하다.

    이응노(1904~1989)의 ‘군상’ 연작은 언제나 그랬듯 공동체 의식과 집단의 힘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 상징성을 갖는 작품들이다.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응노’전은 대전에서의 이응노미술관 개관기념과 더불어 개최되는 것으로, 전시작에는 1970~80년대 작품을 중심으로 한 ‘군상’ 외에도 해학성을 강조하는 풍속적 소재의 그림과 문자 추상들이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응노는 ‘군상’의 화가다. ‘군상’, 집단으로 수없이 몰려드는 군상은 그 강렬한 이미지 속에서 어떤 강한 힘을 연상시킨다. 먹으로만 그려진, 묘사적이지 않고 추상적·암시적인 사람 형상으로 이루어진 군상은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덩어리 같다. 개미떼가 쉴새없이 먹이를 잡아들이고 집을 짓는 형상과 같이 생존을 향한 욕망의 덩어리처럼 보이는 것이다.

    때론 파괴적, 때론 끔찍 … 한국 현대사 연상

    집단, 그것은 거대할수록 파괴적이다. 무시무시하다. 그것은 우발적인 폭력까지도 내포한다. 그래서 진정한 집단적 형상은 늘 어떤 경계에서만 발생한다. 그 폭동적 현상은 아무 때나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군상’은 무엇에서 연상될까. 축제, 월드컵, 시위대, 종교 행사부터 전쟁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군상은 개인적 일상에 묻혀 지내는 개별 존재들을 공적 영역으로 불러내는 어떤 매개다. 사적인 삶에 파묻힌 개인을 끌어내는 그 힘은 무엇일까.

    한국 과거사의 질곡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새로운 상상 속에서 그 힘을 상기해보면, 그것은 두렵거나 저항적인 것일 뿐 아니라 해방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어쩌면 교착상태에 봉착한 현대의 주체가 깨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때로 파괴적이었고 심지어 끔찍하기도 했던, 그렇지만 항상 어떤 경계를 가르던 군상의 힘을 새로운 주체의 형상에 대한 소망이라고 부를 때가 된 듯하다. 5월3~25일까지, 가나아트센터, 02-720-1020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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