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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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50년 금자탑 “그래도 아직 배고파”

은퇴설 부인하고 의욕적 활동 … “이젠 하느님 인터뷰하고 싶다”

  • 전원경 작가 winniejeon@yahoo.co.kr

    입력2007-05-09 18: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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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크의 달인, 토크쇼의 황제, 미국을 움직이는 토크쇼의 주인…. 이 모든 수식어는 바로 미국의 방송인 래리 킹(Larry King)을 가리키는 말이다. 5월1일로 방송 50주년을 맞은 그가 이를 기념하며 스스로 인터뷰이(interviewee)가 됐다.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의 소년에서 토크쇼의 ‘황제’에 오른 그의 인생역정. 그리고 래리 킹식 대화 전략을 배워본다. - 편집자 주 -
    방송 50년 금자탑 “그래도 아직 배고파”
    CNN TV의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의 사회자 래리 킹이 5월1일로 방송 50주년을 맞았다. CNN은 4월 말부터 일주일간 래리 킹을 위한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킹사이즈 위크’라고 명명된 이 특집 프로그램 중에는 케이티 쿠릭이 래리 킹을 인터뷰하는 코너도 있었다. 지금까지 4만명을 인터뷰해온 미국 제일의 인터뷰어(Interviewer) 래리 킹이 인터뷰이(Interviewee)가 되는 드문 경험을 한 셈이다.

    TV 브라운관처럼 커다란 뿔테 안경, 멜빵, 그리고 데스크에 양 팔꿈치를 괸 채 카메라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공격적인 질문을 쏟아내는 래리 킹의 인터뷰는 보는 이가 편안함을 느끼는 스타일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100만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래리 킹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에 비해 ‘CNN 헤드라인 뉴스’의 시청자는 33만명에 불과하다. “래리 킹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장본인”이라는 짐 월튼 CNN 회장의 찬사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러시아계 유대인인 래리 킹의 본명은 로렌스 하베이 자이거. 1933년에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에서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WIOD라는 마이애미 지방 방송국에 취직한 그는 57년 5월1일 라디오 DJ로 처음 마이크를 잡았다. 주급 55달러를 받으며 라디오 DJ와 뉴스, 스포츠 중계 등 모든 방송을 도맡아 하던 자이거는 발음이 어려운 본명 대신 래리 킹이라는 새 이름을 짓고 TV 아침 프로그램의 인터뷰어로 데뷔한다. 새 작명이 주효했는지 점점 인터뷰어로 명성을 쌓아간 래리 킹은 70년대 전국 방송으로 진출했고, 85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CNN ‘래리 킹 라이브’ 주인장으로 안착한다.

    美 대통령·슈퍼스타들 그의 인터뷰 거쳐

    지금까지 래리 킹과 마주 앉은 인사들의 면면은 미국 현대사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헨리 포드 대통령 이후 미국의 모든 대통령을 인터뷰했으며 고르바초프, 푸틴, 마거릿 대처, 토니 블레어 등 세계 각국의 정상들도 만났다. 말론 브란도, 프랭크 시나트라, 오드리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폴 매카트니 등 세계적 셀레브리티들도 다수 인터뷰했다. 버락 오바머나 힐러리 클린턴 등 대선주자들도 결코 그의 날카로운 질문을 비켜갈 순 없다. 이 같은 유명세 덕에 래리 킹은 무려 21편의 영화에 ‘특별출연’했는데, 그중에는 개봉을 앞둔 ‘슈렉 3’도 포함돼 있다. 래리 킹은 평소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은 하느님”이라면서 “하느님을 만나면 첫 질문으로 ‘당신에게 아들이 있는가’라고 물을 것”이라는 농담을 즐겨 한다.



    올해 74세가 된 래리 킹은 ‘USA 투데이’지와의 인터뷰에서 ‘50주년 은퇴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은퇴가 무슨 뜻인가요?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고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이 가장 짜릿합니다. 사람들에 대한 내 호기심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고요.”

    현재 그는 2009년까지 연봉 700만 달러(약 65억원)에 CNN과 계약된 상태다.

    방송 50년 금자탑 “그래도 아직 배고파”

    2003년 9월 샤론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킹은 지금까지 인터뷰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다섯 명으로 말콤 엑스, 프랭크 시나트라, 마틴 루터 킹 목사, 마리오 쿠오모 전 뉴욕 주지사, 그리고 영화배우 제인 폰다를 꼽았다. 그는 말콤 엑스를 인터뷰하면서 미국의 인종차별이 얼마나 심각한지 절감했다고 한다. 반면 가장 인터뷰하기 어려웠던 인물은 배우 로버트 미첨이었다고.

    “그는 내가 무슨 질문을 해도 단답형으로만 대답했고,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았거든요.”

    또 가장 인터뷰하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못한 사람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그리고 영국의 찰스 왕세자다.

    “카스트로와 찰스 왕세자는 지금도 계속 인터뷰 성사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찰스 왕세자는 조만간 인터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명성이나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나 무장해제하고 마는 그의 인터뷰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USA 투데이’에서 밝힌 ‘래리 킹식 대화법’을 요약하면 이렇다. ‘일단 상대가 누군지 파악한 뒤 짧은 단답형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이 질문들을 통해 상대에게 내가 궁금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리면, 상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게 된다. 그리고 상대의 대답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

    ‘인터뷰의 황제’라지만 래리 킹의 인생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1970년대에는 석연치 않은 절도혐의로 기소됐고, 87년에는 심장마비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여성편력도 화려해서 여섯 명의 여성과 무려 일곱 번 결혼을 했다. 두 번째 부인 알렌 애킨스와 결혼했다 이혼한 뒤, 미키 서트핀과 결혼했다 다시 이혼하고 두 번째 부인과 재결합했지만 또 이혼했다. 그에게는 50세부터 6세까지 다섯 명의 아이가 있다. 67세이던 1999년 현재의 부인 션과의 사이에서 막내아들 캐논을 얻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덟 살과 여섯 살인 넷째, 다섯째 아이와 놀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이 들죠. 다 큰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좀더 많이 놀아줬어야 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비록 은퇴는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지만, 자신의 후계잣감으로 CNN의 백악관 담당기자인 존 로버츠를 꼽는다. 그는 인터뷰이들의 편의를 위해 매주 LA와 뉴욕, 워싱턴 DC를 번갈아 날아다니며 방송하고 있다. 트레이드마크인 멜빵은 시청자들이 선물로 많이 보내줘 150개쯤 가지고 있다고.

    방송 50년 금자탑 “그래도 아직 배고파”

    래리 킹이 강력하게 인터뷰 섭외를 하고 있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

    인터뷰어로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온 래리 킹은 ‘지난 50년 동안 배운 교훈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이 비즈니스의 가장 큰 비밀은 바로 아무 비밀도 없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져라. 그럼 대중은 당신을 좋아하게 된다”는 자신감 넘치는 대답을 들려줬다. 그렇다면 래리 킹이 지금까지 밝히지 않은 인생의 비밀은 무엇일까?

    여섯 여성과 일곱 번 결혼 ‘여성편력도 제왕급’

    “저는 어릴 때부터 눈이 나빠서 일곱 살에 안경을 써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가난해 안경 맞출 돈이 없었죠. 그때 뉴욕시가 시의 빈민지원기금으로 제게 안경을 선물해줬습니다. ‘복지’라는 말의 진정한 뜻을 그때 배웠죠.”

    그는 래리킹심장재단과 조지 워싱턴대에 몇백만 달러의 기부금을 내는 손 큰 자선사업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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