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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찾는 논술 비전|최명희의 ‘혼불’

식민시대 민초들, 처절한 삶의 기록

  • 노만수 학림논술연구소 연구실장·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

식민시대 민초들, 처절한 삶의 기록

역사를 보는 눈은 과연 몇 개인가. 역사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역사는 특정한 사람·계급·집단이 자신들의 가치관을 경쟁적으로 투영하기 위해 과거를 ‘입맛에 따라’ 재구성하는 ‘힘의 씨름마당’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로 바꾸어야 제대로 된 물음이 될 것이다. 이 질문을 이해한다면 역사란 다른 집단에는 상이한 의미를 갖는 논쟁적 용어 혹은 담론이며, 따라서 역사는 필연적으로 문제투성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키스 젠킨스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중앙대 2006년 수시1

식민시대 민초들, 처절한 삶의 기록

비주류의 시선으로 역사를 보고 있는 작품들. 1. 영화 `’왕의 남자’. 2. 영화 ‘황산벌’`중 백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던 계백 장군(박중훈 분·왼쪽)과 그의 병사들. 3. 연극 ‘서푼짜리 오페라’. 4. 소설 ‘아리랑’.

레오폴트 폰 랑케가 이끈 19세기 실증주의 역사학은 1차 사료에 대한 엄밀한 비판과 연구를 통해 역사를 ‘과학성’ ‘가치중립성’ ‘객관성’이란 수식어로 미화했다. 결과는 ‘쓰는 자’의 손만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 숭배론’(1841)처럼 승자와 영웅의 역사였던 것이다. 민중을 위한 공간은 텅 빈 채 말이다. 이런 지배자와 영웅 중심적인 정치사에 반기를 든 20세기 ‘사회사’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만리장성이 완공된 날 밤에 미장이들은/ 어디로 갔던가? 전설의 나라 아틀란티스에서조차/ 바다가 그 땅을 삼켜버리던 밤에/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이 노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시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대동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페이지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10년마다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거기에 드는 돈을 누가 냈던가?/ 그 많은 보고(報告)들/ 그 많은 의문들



- 브레히트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연세대 2002년 정시

정치사가 ‘위로부터의 역사’였다면 사회사는 ‘아래로부터의 역사’다. 이런 사회사는 마르크스주의와 1930년대 출범한 프랑스의 아날학파가 주도했다. 물질적 토대(하부구조)가 정치·사상·도덕·문화 등의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보는 마르크스주의자에게 계급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나뉘고, 이들의 계급투쟁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린다. 브레히트의 희곡 ‘서푼짜리 오페라’에서 마키 메서가 “먹는 것이 먼저요, 윤리는 나중”이라고 한 말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모든 걸 계급으로 환원하는 마르크주의는 스파르타쿠스·만적·홍길동·홍경래만 주인공으로 삼을 뿐, 지배층의 허위의식을 ‘계급투쟁이 아닌 방식으로’ 조롱한 어우동이나 황진이, 허난설헌의 시각으로는 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반면 ‘20세기 역사학의 기린아’ 아날학파는 주류(왕/남성/영웅)가 아니라 비주류(백성/여성/소수자 반영웅)의 시선으로 역사를 보았다. 대의라는 명분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자 안달하는 남성 영웅들을 향해 전쟁터에 나와서도 두고 온 농토와 가족을 생각하는 ‘역사의 거시기들’(일반 사병=민중)의 시각으로 지배자와 영웅의 역사를 뒤집은 영화 ‘황산벌’도 그런 유다. 장생과 공길이라는 천민 남사당패처럼 신분상 비주류와, 왕이지만 폐비 소생인 연산군이라는 왕가의 비주류가 주인공인 영화 ‘왕의 남자’, 궁중의 여성 요리사가 궁을 요리하는 드라마 ‘대장금’, 공권력 담당 주체의 비주류인 여성 형사 ‘다모’의 시각도 마찬가지, 즉 아래로부터의 시각이다.

동양 역사학을 출범시킨 사마천의 ‘사기’는 천자와 제후, 영웅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 민중과 호흡했던 반란자, 코미디언, 자객, 오랑캐, 기인들을 다룬 열전을 둔 기전체라는 점에서 아날학파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아날학파는 또 ‘나라는 망하고 영웅은 간 데 없어도 산천(자연)은 변함이 없다’며 ‘어떤 게 더 장기지속적인가’를 역사의 기둥으로 삼는다. 국가의 정치나 영웅의 삶보다 앞서는 것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 지리와 풍토라는 것인데, 길재와 두보의 시가 잘 웅변해준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煙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길재(1353~1419)의 시조

나라는 망해도 산하는 남아 있어 성안에 봄이 오니 초목만 무성하구나(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당나라 두보(712~770), ‘춘망(春望)’

‘아날학파의 리더’ 페르낭 브로델은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에서 역사를 바다로 비유했다. 바다 표면에는 끊임없이 찰랑대는 파도가 있다. 그 밑에는 해류의 흐름이 있어 비교적 느린 속도로 자기 길을 따라 흘러간다. 다시 이보다 더 밑층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깊은 물이 있다. 우리 눈에는 찰랑대는 파도나 해류 정도가 보일지 모르나 사실 바닷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몇백 m, 심지어 몇천 m나 되는 거대한 심해의 물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일반 역사의 흐름에서는 전쟁, 혁명과 같은 정치적 대사건만 눈에 띄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민중이 영위하는 삶에서는 대사건이 생각만큼 그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변하지 않는 구조로서의 장기지속(일상생활사)이 역사에서 더 큰 중요성을 지니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임꺽정’ ‘장길산’ ‘태백산맥’ ‘토지’ ‘변경’ 등 20세기 대하 역사소설들은 (의적) 영웅과 정치적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등 거시적 정치사라는 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작가 최명희가 암투병하며 “정교하게 만든 정신의 끌로 피를 묻혀가면서 새기는 처절한” 노력으로 창조한 노작(勞作) ‘혼불’은 우리에게 역사를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다. 작가는 바로 주류와 거시적 시선이 아니라, 삶의 자리를 메웠던 민초들의 삶의 흔적이라는 미시적 일상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라와 백성의 관계는 콩꼬투리와 콩알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콩껍질이 말라서 비틀어져 시든다 해도 그 속에 든 콩알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콩은 잠시 어둠 속에 떨어져 새 숨을 기르다가 다시 싹터 무수한 열매를 조롱조롱 콩밭 가득 맺게 하나니.” -순종임금 융희 5년 경술 한일합방, ‘혼불’ 1부

‘혼불’ 의 주인공 강모와 강실이는 ‘아리랑’(조정래)의 방대근이나 ‘토지’(박경리)의 길상처럼 독립투사는 아니다. 단지 쌍피 붙는 근친상간의 당사자들이다. 그러나 그들과 그들을 쫓아낸 사람들과 그 주변 사람들은 옛 조상 때부터 해오던 방식대로 농사짓고 언제나 비슷한 의복을 지어 입고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땅에 발붙이고 살아간다. 그렇게 민중이 생활해오면서 쌓아올린 ‘물질문명’(세시풍속)은 그런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다.

일제의 무단통치와 창씨개명의 일선융합은 단지 한 번의 폭풍우에 지나지 않는다. 폭풍우가 심해(일상사)까지 뒤집어엎을 수는 없다. 폭풍우가 그치면 바다가 원래의 고요로 돌아가듯 물질문명은 오랜 시간 동안 인간활동의 성과를 잘 보존하다가 인간의 삶을 복원해준다. 국권을 빼앗겼지만 조선 민중이 언제 일거에 김치와 온돌을 버리고, 스시를 먹고 다다미에서 자며 기모노를 입고 일본식 숯화로 고타쓰와 부뚜막 이로리로 겨울을 나던가.

조선 세시풍속사의 소설적 표현인 ‘혼불’은 역사가 숨차게 돌아가며 사람을 옭아매는 식민의 시대에도 민중이 역사의 주인임을, ‘역사의식’이라는 거대한 이념보다는 역사의 폭풍우 속에서도 제 삶의 자리를 온전히 책임지려 했던 이들의 세시풍속이 결국 ‘땅의 역사를 지켜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여타의 소설처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신채호)이란 당위성으로만 역사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토착적인 서민 생활풍속사를 통해 민족의 삶을 장강의 흐름처럼 묘사하고 있다. 지리나 기후 같은 장기지속적인 조건에 의해 형성된 집단적인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같은 ‘망탈리테(mentalite′s·심성구조=혼불)’를 소설로 풀어놓았다.

36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와 수탈이 아무리 큰 피해를 주었더라도 그것으로 조선의 물질문명인 세시풍속이 일거에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작가는 인간의 장구한 역사가 쌓아올린 물질문명은 늘 복원력을 가지고 있어 충격을 겪더라도 인간의 삶을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되도록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병자호란 때 끌려간 박씨들이 200년이 지난 뒤에도 최초의 조상이 지닌 놋숟가락과 갓끈을 가보로 지닌 채 집성촌을 이루고 조선의 풍습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며, 얼과 넋은 과학으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혼불’이라고 했다. ‘혼불’에는 인간의 물질문명과 혼불은 함께 지속되고 발전한다는 메시지와 역사를 ‘민중의 일상적 세시풍속(물질문명)’으로 바라본 새로운 시선이 담겨 있다.

- 추천도서 ‘혼불’(최명희, 한길사)

생각 &토론거리



1. 신채호의 ‘소아와 대아’가 오늘날에도 유효한 메시지인가?

-서울대 1999년 정시

2. 진수(233~297, 역사가)와 나관중(1330?~1400, 소설가)은 조조에 대해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린다. 동일한 사물과 사건일지라도 그에 대한 표현이 다양한 것의 사회문화적 함의는?

-연세대 2002년

3.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 숭배론’(1841)을 비판해보자.

-중앙대 2006년 수시1

4. 동북아시아 ‘교과서 분쟁’에 대한 견해를 밝히시오.

-중앙대 2006년 수시1

5. 역사발전의 동력은 과연 무엇인가? -서강대 2003년 예시 3차

6. 루쉰의 ‘아Q’가 지닌 모순에서 보듯 역사적 존재로서의 참된 삶은 무엇인가?

-서강대 1999년 정시




주간동아 2007.05.08 584호 (p87~89)

노만수 학림논술연구소 연구실장·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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