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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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북녀 궁합 두말하면 잔소리죠”

새터민 여성 소개 4~5업체 영업 중 … 성실한 공무원과 회사원이 ‘1등 신랑감’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7-05-02 1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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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남북녀 궁합 두말하면 잔소리죠”
    지난해 한국에 온 새터민(탈북자) 장모(32·여) 씨는 ‘남남북녀’ 커플을 맺어주는 결혼정보업체 소개로 올 봄 남한 남성과 결혼했다. 처음엔 감정을 별로 드러내지 않는 한국 남자와 교제하며 답답함을 느꼈지만 말없이 소소하게 자신을 챙겨주는 듬직한 모습에 믿음을 갖게 된 것. 이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인 시부모는 장씨를 귀한 며느리로 아껴준다고 했다.

    “아홉 살 연상인 남편은 과거 한국 여자친구를 몇 년간 쫓아다니다가 ‘시골 출신에 장손’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러다 혼기를 놓치고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저를 만나게 된 거죠. 술도 잘 안 마시고, 성실하게 회사에 다니는 남편을 보면서 ‘상처받는 일은 없겠다’ 싶어 결혼을 결심했어요.”

    장씨와 같은 새터민 여성과 남한 남성의 결혼을 주선하는 결혼정보회사가 눈길을 끌고 있다. 한 새터민 단체가 파악하고 있는 비슷한 유형의 업체만 4~5개에 이른다. 2000년대 초반부터 탈북 여성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도 이러한 결혼정보회사가 생겨난 요인 중 하나다.

    “北 여성은 순수하고 생활력 강할 것”

    이들 회사의 대표나 커플매니저는 대부분 새터민 여성이다. ‘남남북녀 중매’의 원조 격으로 불리는 인물은 ‘남남북녀결혼컨설팅’ 대표 최영희(40) 씨.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화곡동 사무실을 찾았을 때, 직원 2명이 문의 전화를 받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2002년 한국에 온 최씨는 혼기를 놓친 남한 남성들이 외국 여성을 배우자로 맞이하려는 현상에 착안해 사업을 구상하게 됐다. 이후 한국의 결혼정보회사에서 ‘커플 매니징’ 노하우를 배워 업체를 차린 것. 2005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그가 배출한 ‘남남북녀’ 커플은 지금까지 130쌍이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초기에는 그도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한번은 40대 중반의 남성이 찾아와 ‘무조건 20대 초반 여성’을 소개해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거절하자 그 남자는 ‘동남아 여성들은 맘대로 고를 수 있는데 북한 여자는 왜 안 되냐, 나 돈 많다’고 억지를 쓰는 겁니다. 그런 잘못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처음부터 걸러내야죠. 또 어떤 분은 동거녀가 있는 걸 속이거나 (새터민 여성들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기’를 했습니다. 그저 북한 여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가족 같은 새터민 여성들에게 믿을 만한 사람을 소개해주기 위해 나름의 안목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상담도 꼼꼼히 하고 남성에게 주민등록등본, 호적등본 등의 제출을 요구합니다.”

    새터민 여성은 이 회사의 무료 회원이지만, 남한 남성은 연회비로 180만원을 낸다. “한국의 결혼정보회사인 ‘듀오’나 ‘선우’의 일반회원 등록 비용(90여 만원)보다 훨씬 비싼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최씨는 “결혼 상담에 드는 비용을 깎으려는 남성은 애초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 돈도 못 내는 남성과 새터민 여성을 어떻게 결혼시킬 수 있겠냐”는 것이 그의 반문이다.

    최씨에 따르면 이곳을 찾는 한국 남성의 연령대는 30대에서 40대 초반이 가장 많다. 초혼이 70%에 이르며 직업은 일반 회사원, 공무원, 자영업자 등이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그들이 북한 여성을 배우자로 원하는 이유는 ‘조건을 따지는 남한 여성과 달리 순수하고 생활력이 강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 업체를 통해 결혼하는 북한 여성들은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이 많다. 이들이 선호하는 일등 신랑감은 ‘벌이가 안정된 공무원이나 회사원.’ “사업을 해서 밖으로 도는 남자보다 아내를 챙겨주는 가정적이고 성실한 남자를 선호한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새터민 여성의 80% 이상이 한국 남자와의 결혼을 꿈꿉니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 여기는 가부장적인 북한 남성보다 자상한 이미지의 남한 남자를 선호하는 거죠. 주로 하나원(새터민 교육기관)에서 나온 지 1년 남짓 되는 여성들이 가장 쉽게 결혼합니다. 한국에 온 지 3년 넘는 여성들은 이것저것 따져서 보통 결혼하기가 더 힘듭니다. 새터민 여성들이 전국 각지에서 결혼식을 올리는데 저는 친정식구 자격으로 꼭 참석합니다. 가족 하나 없는 신부의 엄마 혹은 언니가 돼주는 거죠.”

    하지만 최씨의 결혼정보회사는 “성상품화를 조장한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회사가 ‘북한 여성과 결혼하세요’라고 쓰인 현수막을 내걸고 홍보하자 “북한 여성을 상품으로 전락시켰다”는 새터민들의 비판이 제기된 것. 최씨는 이에 대해 “현수막은 모두 철거했다”며 “홍보 문구를 바꾸는 등 남남북녀의 만남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남북녀 궁합 두말하면 잔소리죠”

    꼼꼼한 상담을 통해 믿을 만한 남편감인지 살펴본다는 ‘남남북녀결혼컨설팅’ 대표 최영희 씨(왼쪽 사진 오른쪽). 북한 여성들의 사진을 회원인 양 올려놓은 한 결혼중개업체 홈페이지.

    한국에서 가정 꾸리기 ‘사회 이슈’

    또 다른 결혼정보회사인 E사는 한국 남성 회원과 중국, 동남아, 새터민 여성의 결혼을 알선해왔다. 이 회사의 대표는 한국 사람이고, 새터민 여성인 커플 매니저가 남남북녀의 만남을 주선했다. E사의 홈페이지에는 가수 이효리와 함께 휴대전화 광고를 찍어 유명해진 조명애 등 북한 여성들의 사진이 마치 회원인 양 게시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2005년 E사와 협력관계를 맺었던 탈북자동지회는 몇 달 만에 이 회사와의 결연을 중단했다. 성혼율이 지극히 낮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탈북자동지회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새터민 여성들이 안정된 가정을 이루도록 돕고자 결혼정보회사에 이들을 소개해줬습니다. 하지만 결혼이 성사되는 확률도 낮았고, 정작 가정을 꾸려도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경우를 여럿 봤습니다. 새터민 여성이 정부로부터 지급받은 임대주택에 얹혀살려고 하는 무능한 남한 남자들도 있더군요. 결혼이 성공적인 정착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이 되는 것 같아 협력을 중단했습니다.”

    이 밖에도 새터민 여성 대표가 이끌던 결혼정보회사 N사는 사장이 바뀌는 등 부침을 겪으며 한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다. 한 새터민 단체 관계자는 “서울 명동, 경기도 부천 등에서도 비슷한 업체가 운영되고 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진 못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국내에 살고 있는 새터민은 지난해 12월까지 모두 9706명으로 그중 5771명이 여성이다. 과거에는 새터민 남성 수가 훨씬 많았지만, 2002년부터 새터민 여성 수가 남성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탈북 후 중국에서 살아남기 쉬운 여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적령기인 20, 30대 여성이 새터민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만큼 이들이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는 문제는 중요한 사회 이슈로 부상할 전망이다.

    북한전문가인 서강대 김영수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다양한 결혼정보회사들의 출현에 대해 “일부 업체는 결혼 주선이 아니라 ‘여성 소개업소’ 같은 구실을 한다고 알려졌다. 이에 대한 사회적 여론 환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새터민 내부에서는 ‘비영리 중매’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탈북자동지회의 한 관계자는 “결혼을 희망하는 새터민 남성과 여성이 배우자를 찾도록 지원하는 비영리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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