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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김승연 북창동 잔혹사

‘한화파 보스’ 북창동 접수하다

아들 폭행 피해에 발끈 보복 활극 … 재벌 오너 날개 없이 추락 중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한화파 보스’ 북창동 접수하다

  •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북창동 잔혹사’가 던진 충격은 어디까지 갈까.
  • 빗나간 부성과 의리를 중시하는 김 회장 특유의 개성이 빚어낸 이번 사건은 사건 발생 50여 일 만에 부메랑이 되어 김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 그는 하루아침에 9대 재벌 회장에서 ‘한화파 보스’로 신분이 바뀌어 구설에 올랐다. ‘신뢰, 존경, 혁신’을 내세우던 한화의 이미지는 김 회장의 주먹 한 방에 산산이 부서졌다.
‘한화파 보스’ 북창동 접수하다
3월7일 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 동원(22) 씨가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일행은 모두 6명. 대부분 ‘있는 집’ 자식들이다. 이들은 예일대학에 다니다 오랜만에 귀국한 동원 씨를 보러 나왔다.

‘잔혹사’의 서막은 강남구 청담동에서 시작됐다. 동원 씨의 친구는 평소 자주 찾던 G가라오케로 일행을 안내했다. 이들의 옆자리에는 북창동 S클럽에서 일하는 종업원 등 8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업소 사장과 이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그러나 그날따라 서비스가 소홀했다. 사장과 종업원들이 동원 씨 일행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좁은 테이블 사이의 계단식 복도를 지나가다 동원 씨와 종업원 일행 중 한 명이 ‘접촉사고’를 낸 것.

처음부터 끝까지 “동원이 때린 × 데려와라”

순식간에 고성과 주먹이 오갔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동원 씨의 말이 종업원들을 자극했다. 그러나 20대 초반인 동원 씨 일행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과정에서 동원 씨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며 눈두덩이 찢어졌다. 세가 불리하다는 것을 느낀 동원 씨 일행은 일단 이곳에서 철수했다.

다음 날인 8일 오후부터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화가 난 김 회장도 직접 나섰다. 동원 씨와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5~6명이 김 회장과 함께 가라오케를 다시 찾았다. 종업원 2명과 사장은 말 한마디 못하고 두들겨 맞았다. 김 회장의 요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였다.



“동원이 때린 ×을 데리고 오라.”

결국 사장이 북창동 종업원들에게 연락을 했고, 얼마 후 이들이 가라오케로 들어섰다. 김 회장 일행은 이들을 청계산의 한 창고로 끌고 갔다. 폭행이 시작됐다. 산으로 끌려간 이들 중 동원 씨 폭행에 직접 관련된 2명은 땅에 묻히는 위협도 당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한겨레’의 4월27일자 보도와는 달리 김 회장은 당시 이 자리에 없었던 것 같다. S클럽 한 관계자의 말이다.

“산에 끌려가 맞은 친구가 온몸에 진흙을 뒤집어쓰고 왔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머리만 내놓고 땅에 묻혔다 나왔다’고 하더라. 총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머리에 갖다 대고 위협을 했다는 말도 들었다. 김 회장은 없었다더라.”

‘한화파 보스’ 북창동 접수하다

사건이 벌어진 북창동 S클럽.

직접 폭행 여부는 경찰조사에서 밝혀질 듯

‘작업’을 끝낸 동원 씨 일행은 차를 다시 북창동으로 몰았다. 동원 씨를 때린 당사자가 북창동에 있음을 확인한 것. 북창동에 도착했을 즈음 이곳에 다시 ‘귀한’ 손님이 직접 얼굴을 드러냈다. 김승연 회장이 ‘선수’들을 데리고 아들 지원에 나선 것. 일행은 순간 40여 명으로 늘었다. 당시 이 광경을 목격한 인근 업소 관계자의 설명에 현장 분위기가 묻어난다.

“처음에는 조직폭력배간 영역 다툼이 벌어진 줄 알았다. 검은 양복을 입은 주먹들을 누가 재벌 회장이 데려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겠는가.”

목격자들에 따르면 당시 김 회장은 짙은 색 체육복(혹은 등산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종업원들은 그런 그를 운동선수나 조직폭력배인 줄로만 알았다. 당시 이 업소 사장은 김 회장 측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문지기)’을 동원했다. 그러나 싸움이 벌어진 지 1분도 안 돼 이들은 모두 혼비백산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병원 치료가 필요할 만큼 크게 부상한 사람이 생겼을 정도로 그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전문가’였다. 업소를 장악한 김 회장은 곧바로 사장을 찾아 서너 차례 뺨을 때리고 동원 씨를 구타했던 종업원을 데려올 것을 요구했다.

“내 아들을 때린 놈이 누구냐?”

김 회장은 업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고는 룸을 하나 잡아 술을 마셨다. 사장은 여성 종업원을 시켜 과일안주를 함께 들여보냈지만 김 회장은 손도 대지 않았다.

일부 언론은 당시 김 회장 일행이 회칼 등으로 무장한 상태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취재 결과 그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한 목격자의 말이다.

“40여 명 중 경호원처럼 보이는 사람은 몇 명 없었고 대부분 조직폭력배 같았다. 회칼은 없었다. 경호원들이 전기충격기를 들고 있었고, 폭력배로 보이는 사람들이 3단봉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취재 결과 당시 김 회장은 업소 사장 외에는 폭행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폭행을 행사한 것은 동원 씨와 경호원들이었다. 김 회장과 동원 씨는 이를 지켜보며 술을 마셨다고 전해진다. 종업원 5~6명이 두들겨 맞았다.

김 회장은 한 시간 정도 머물다 먼저 떠났다. 그러나 이후에도 실랑이는 2시간 이상 이어졌다. 본격적인 폭력은 김 회장이 떠난 뒤에 있었다는 것이 목격자들의 일관된 진술이다.

김 회장이 머물던 시간 동안 업소 관계자 중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 2명이 업소에 찾아온 일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룸에서 술을 마시던 김 회장 일행은 경찰이 왔다 갔는지도 몰랐을 것이라고 목격자들은 전한다. 경찰들은 김 회장 일행 중 한 사람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뒤 돌아갔다.

이날 사건에 대한 소문은 북창동 일대에 곧바로 퍼졌다. 폭행당한 피해자(종업원)들이 한화 측과 피해 협상을 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많은 사람들은 “대충 합의할 것이다. 재벌총수와 싸운 일인데 문제가 불거지겠나”라고 생각했다. 한 업주는 “보도가 나온 이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한화 측은 “회장님이 직접 폭행했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펴고 있다. 김 회장이 첫 폭행이 있었던 산에도 가지 않았다는 것. 27일 김 회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경찰조사에 충실히 응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경찰조사 발표는 30일로 예정돼 있다. ‘북창동 잔혹사’의 진실이 얼마나 밝혀질지 두고 볼 일이다.



주간동아 2007.05.08 584호 (p12~14)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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