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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 ‘괴물’ & ‘타인의 삶’

사회적 연대 없이 개인 삶도 없다

  • 이명재 자유기고가

사회적 연대 없이 개인 삶도 없다

사회적 연대 없이 개인 삶도 없다

‘괴물’

사생활을 뜻하는 ‘프라이버시’는 라틴어로 ‘결핍’을 의미한다고 한다. 인간은 사회적으로 존재할 때 진짜 인간이 된다는 말일 텐데 그리스 로마의 공화주의 가치관이 투영된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현대사회야말로 결함투성이 사회다. 원자화되고 파편화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은 불완전한 인간인 셈이다.

스크린에 비친 현대인은 외로운 존재들이다. ‘고독한 현대인’. 사실 이건 너무나 당연시되고 진부한 얘기라 그렇지 않은 영화를 찾아보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 ‘괴물’만 해도 그렇다. 이 영화는 여러 관점에서 읽히지만 개인주의라는 시각에서도 들여다볼 수 있다. 주인공 강두와 그 가족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건대 이 가족이 직면한 위험은 우선 국가의 보호로부터 배제된다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고립된다는 데서 그 격리감은 더욱 커진다. 강두 가족이 보인 놀라운 결속력은 그 같은 고립감에 대한 방어기제다. 많은 관객이 영화에 공감한 것도 강두네 처지와 자신들의 그것이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연대나 공동체가 붕괴된 현대의 삶이란 진짜 중요한 뭔가가 결여된 ‘결핍 상황’인 듯하다.



그러면 그 반대 상황은 어떨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 동독 사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 ‘타인의 삶’은 ‘괴물’과 정반대되는 지점의 풍경을 그린다. 비밀경찰 비즐러가 동독 최고의 극작가 부부를 감시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는 이 영화는 시간 배경부터 강력한 은유다. 베를린 장벽 붕괴 5년 전이면 1984년. 그렇다. 조지 오웰의 소설이 묘사하는 끔찍한 미래인 바로 그 ‘1984년’이다.

‘1984년’의 가상국가 오세아니아처럼 통일 이전 동독은 인구당 가장 많은 미행자와 도청 전화기, 도청된 방을 가진 경찰국가였다.

‘타인의 삶’은 자신이 하는 일에 청교도적일 만큼 신념과 헌신성을 가진 비밀경찰 비즐러의 ‘직업세계’를 보여주는데, 그건 가히 고문과 감시의 매뉴얼이라 할 만하다. 용의자가 조사를 받을 때 앉았던 의자 밑에 천을 넣어둬 미래의 단서로 사용할 냄새를 수집하는 장면은 고문과 감시 기술이 마침내 표준화, 양식화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제목 ‘타인의 삶’의 의미는 결국 자신의 삶, 개개인의 삶이 없는 사회를 뜻한다. 그럼 이렇게 ‘개인’이 없는 사회는 공동체적인 사회였을까. ‘결핍’되지 않은 진짜 인간들의 사회일까.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은 ‘타인의 삶’에서도 그렇거니와 현실에서도 명백해졌다.

개인이 없는 곳에 진짜 공동체도 있을 수 없다고 한 것은 철저한 사회주의자 트로츠키였다. 그는 “진정한 사회주의(공동체)의 이상은 진정한 개인주의를 거쳐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상일이 대개 그렇듯 대부분의 사회는 영양 불균형 상태처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 그것이 괴물 같은 진실이다.



주간동아 2007.05.01 583호 (p66~66)

이명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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