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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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 씨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

조주청의 골프 잡설 ①

  • 입력2007-03-19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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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노갑 씨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

    2001년 4월22일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와 골프회동을 하는 권노갑(오른쪽) 민주당 전 최고위원.

    고향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꼴을 성토하느라 너나없이 목소리에 옥타브가 올라가고 있었다. DJ 정권 말기라 자연히 권노갑 씨가 술자리 안주가 됐다.

    “정치 보복은 없어야 하지만, 다음 정권이 권노갑만은 족쳐야 해!”

    당시는 권노갑 씨가 키워준 호랑이 새끼가 제법 커서 정풍운동인가 뭔가 한다며 권노갑 씨의 등을 물어뜯어 그는 힘이 빠져 있었다.

    “권노갑 씨야 이미 유혈이 낭자한테 뭐 또 죽일 일이 있나?”

    내가 권노갑 씨를 감싸자 친구들 눈이 둥그레졌다.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 있던 친구들은 이내 들고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두 팔을 벌려 권노갑 씨를 향해 날아가는 화살을 모두 받았다.



    “권력의 속성이란 원래 1인자는 저지르고, 2인자는 저지레를 떠맡아 안는 법이야.”

    결국 난 동네북이 되어 별의별 폭언을 다 들어야 했지만 권노갑 씨와 골프장에서 맺은 인연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술자리엔 골프라면 쌍심지를 켜고 난도질하는 친구들이 골프 하는 친구보다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들의 입심은 대단했다. 더구나 아들과 라운드를 하다가 일어난 일이고, 그것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약점이라는 걸 난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골프를 친다는 것도 골프 하는 친구들끼리 모였을 때가 아니면 말하지 않는 마당에, 아들하고 골프를 했다면 이건 찌개 냄비가 날아들 일이었다.

    우리 대학 다닐 땐 골프라는 게 뭔지도 몰랐는데, 요즘은 세월이 좋아 대학생도 체육 선택으로 골프를 배운다. 아들 녀석이 1년을 배웠다며 필드에 한번 데려가 달라고 조르던 차에 마침 잡지협회 회장을 하던 김영진 씨가 함께 라운드를 하자고 해 아들을 데리고 뉴코리아CC로 갔다. 그러나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배운 골프가 오죽하랴. 훅이나 슬라이스가 문제가 아니었다. 아들 녀석은 아예 공을 맞히지도 못하고 헛스윙을 하더니 파5, 5번홀에서 이리 치고 저리 치며 허우적대다가 우드를 빼들었다. 그린 위에서는 앞 팀이 퍼팅을 하고 있었지만, 그린까지는 오르막에 200야드 이상 남아 있어 아들 녀석의 샷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 샷이 잘못(?) 맞아 타구음도 경쾌하게 아지랑이를 가르더니 퍼팅하고 있는 그린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캐디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 사색이 됐다. 그린에서 포섬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우리를 내려다봤고, 그중 한 사람은 삿대질까지 했다.

    그들이 5번홀 그린 옆 그늘집으로 들어가자 나는 아들 녀석을 데리고 그들에게 갔다. 모두 눈에 익은 국회의원들이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권노갑 씨였다.

    잔뜩 얼어붙은 아들 녀석이 고개 숙인 채 모깃소리로 죄송하다고 말하자, 권노갑 씨가 활짝 웃으며 악수를 청하더니 “젊은 사람이 대단한 장타자예요. 부럽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권노갑 씨가 나라를 팔아먹었다 한들 어찌 내가 미워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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