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7

2007.03.20

“칠흑 같은 어둠에서 나를 구해준 건 어머니”

‘동양의 헬렌 켈러’ 후쿠시마 사토시 교수 “시청각 장애인에 대한 물심양면 지원 절실”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7-03-14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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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흑 같은 어둠에서 나를 구해준 건 어머니”

    손가락 점자 통역인의 도움을 받아 강의를 하고 있는 사토시 교수(왼쪽).

    ‘빛’과 ‘소리’를 모두 잃어 세상과 단절된 시청각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매우 낮다. 우리나라에는 이들에 대한 통계조차 없다. 단지 장애인단체들이 인구 대비로 따져 막연히 7000여 명 있지 않을까 추산할 뿐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장애인의 날’에조차 주목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한국시청각장애인자립·지원회’가 3월16일 인천 송암기념관에서 결성된다는 소식은 그나마 반갑다. 이 행사에는 ‘동양의 헬렌 켈러’로 불리는 일본 도쿄대 후쿠시마 사토시(45) 교수가 참석해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될 전망.

    사토시 교수는 녹내장 등 여러 질환이 겹쳐 9세 때 실명하고, 18세 때 원인불명으로 두 귀가 들리지 않게 됐음에도 일본의 중증 장애인 최초로 대학에 진학하고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게 도쿄대 교수까지 된 인물이다. 도쿄대의 첫 한국 장애인 박사 전영미(38·1급 시각 장애인) 씨의 스승이기도 하다. 사토시 교수는 2002년 한국에서 자전 에세이집 ‘손가락 끝으로 꿈꾸는 우주인’(일본에선 ‘와타나베 별장의 우주인’이란 제목으로 1995년 출간)을 냈지만, 방한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시청각장애인 자립·지원회 결성

    ‘주간동아’는 그의 방한에 앞서 e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는 일본어로 번역한 질문지를 사토시 교수가 핀디스플레이(텍스트 파일을 점자로 변환해주는 특수장치)로 판독한 뒤 내놓은 답변을 한국어로 재번역하는 과정을 거쳤다.

    -시청각 장애인이 됐을 당시 심정은 어땠나.



    “전맹(全盲), 전농(全聾) 상태가 됐을 때는 칠흑 같은 우주에 버려진 듯한 느낌이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어머니께서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으로 고안해준 ‘손가락 점자’다. 그 덕에 이야기 상대나 통역을 해주는 사람들이 서서히 늘었다. 이런 지원이 내게 그치지 않고 시청각 장애인 전체로 확대됐을 때는 지구로 귀환한 느낌이었다.”

    -손가락 점자? 생소하게 들린다.

    “보통의 점자는 6개 점의 조합이다. 그런데 그 조합원리를 응용해 6개 점을 좌우 손의 검지부터 약지까지 6개 손가락에 각기 대응시킨 것이 손가락 점자다.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손가락을 대화 내용에 맞게 시청각 장애인의 같은 손가락 손톱 윗부분을 터치함으로써 대화를 한다. 숙달되면 말하는 속도에 근접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시청각 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다른 의사소통 방법은 없나.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은 시청각 장애인의 손바닥에 말하는 상대방이 손가락으로 일반 글자를 쓰는 것이다. 일본어의 ‘가나’나 영어의 ‘알파벳’ 말이다. 원래 청각 장애가 있던 사람이 시청각 장애인이 된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 경우엔 상대방이 수화를 하면 시청각 장애인은 그것을 손으로 만져 내용을 확인한다.”

    -2001년 교수가 됐는데 어떤 일을 하는가.

    “현재 신분은 조교수다. 내가 도쿄대에서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다. 교육과 연구, 대학 내 제도개혁이다.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대학원생에 대한 강의와 논문지도, 교육학부의 ‘장애학’ 세미나 등이 나의 교육업무다. 연구 분야에선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장애 해소)’를 다룬다.”

    -강의는 어떤 방식으로 하나.

    “손가락 점자 통역인이 학생들의 질문을 나에게 전달하면 나는 말로 설명한다. 세미나도 마찬가지다. 손가락 점자는 항상 두 사람이 통역하는데, 그들의 보수는 대학 측에서 부담한다.”

    -한국인들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안다.

    “대학에 다닐 때 한국 유학생을 몇 명 알고 있었지만, 내가 직접 지도한 사람은 전영미 씨가 처음이다. 전씨는 2001년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에 박사과정으로 입학했으며, 현재 유급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의 시청각 장애인 최초로 2007학년도 대입 수시모집에 합격(나사렛대 점자문헌정보학과)한 조영찬(36) 씨도 전씨를 통해 알게 됐다.”

    -일본 내 시청각 장애인의 현황은 어떤가.

    “일본에는 경증인 경우를 포함해 약 1만3000명의 시청각 장애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에 대한 복지시책은 1991년 ‘사회복지법인 시청각장애인협회’의 활동에서 비롯됐다. 복지시책은 통역인과 도우미 파견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본 내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의 약 80%에 시청각 장애인 단체가 결성돼 있는데 교육, 복지, 재활, 고용 등 전반적인 면은 아직 정비되지 않은 상태다.”

    -일본에선 시청각장애인대회가 지난해까지 16차례나 열린 것으로 안다.

    “일본 시청각장애인협회가 1991년 이후 매년 개최해온 대회다. 시청각 장애인 200명, 통역인과 도우미가 400명 정도 모이는 합동연수회 겸 교류의 장이다. 미국과 유럽에도 이 같은 대회가 있다. 또한 4년에 한 번씩 ‘헬렌 켈러 세계회의’라는 시청각 장애인 관련 국제회의도 열리고 있는데, 2009년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홉 번째 행사가 개최된다. 나는 지금까지 네 번 참가했다.”

    -시청각 장애인이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데 장비 등이 필요한가.

    “저시력 혹은 난청인 경우에 사용하는 보조공학장비는 시청각 장애인에게도 유용하다. 확대독서기나 보청기 등이 그 예다. 그러나 나 같은 전맹, 전농인은 이용할 수 있는 기기가 한정돼 있다. 가장 중요한 장비는 컴퓨터와 특별 소프트웨어, 핀디스플레이 등이다.”

    -한국의 장애인정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한국의 장애인정책, 특히 시청각 장애인 정책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방한 목적 가운데 하나도 이런 부분들을 공부하기 위해서다.”

    -시청각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떠해야 한다고 보나.

    “누구든 자기 주변에 헬렌 켈러처럼 보도 듣도 못하는 시청각 장애인들이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겪는 심각한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공적 제도를 추진할 때 납세자 처지에서 이해해줬으면 한다.”

    -시청각 장애인 스스로도 자폐적인 면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런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마라톤을 할 때 충분한 물과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아무리 잠재된 능력이 있더라도 발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사소통의 보장, 정보 입수, 이동의 자유라는 3대 요소가 주어지지 않으면 시청각 장애인들로선 노력할 기력조차 내기 힘들다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정보가 없는 곳에선 자기판단이 나올 수 없고, 의사소통이 희박한 상황에선 자기주장이 불가능하다.”

    -시청각 장애인의 교육과 재활 면에서 개선할 점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각 장애인의 독자적 요구를 확인하고, 그들을 위한 각종 제도적 시책을 만든 뒤 거기에 필요한 지자체의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번 방한에서 강조할 점은?

    “아시아지역의 시청각 장애인 복지를 한국과 일본이 주도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앞으로 일본 시청각장애인협회와 도쿄대 연구실은 한일 간 상호교류를 강화하고자 한다. 이번이 그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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