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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판결문이 쌍둥이처럼 닮았군

동일 사건이지만 똑같은 대목 60~70% … ‘합리적 관행’ vs ‘성의 부족’ 의견 분분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어! 판결문이 쌍둥이처럼 닮았군

어! 판결문이 쌍둥이처럼 닮았군

현대차 비자금 사건과 관련, 뇌물 공여·수수죄로 기소됐던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

법원 주변에 ‘쌍둥이 판결문’ 논란이 일고 있다. 뇌물 수수·공여죄로 각각 기소돼 재판을 받았던 농업협동조합중앙회(중앙회) 정대근 회장과 현대자동차 김동진 부회장의 무죄 판결문이 논란의 진원지. 중앙회가 양재동 땅을 현대차에 매각하면서 그 대가로 정 회장이 3억원을 수수한 이 사건은 지난해 현대비자금 사건 중에 드러났다.

‘부적절한 돈’이 오고 간 이 사건은 통상적이라면 한 재판부가 맡았어야 한다. 그러나 김 부회장이 현대차 사건과 관련, 여러 건에 걸쳐 기소되면서 불가피하게 재판부가 달라졌다.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문구 하나도 다르지 않고 똑같은 대목이 전체의 60~70%에 달했다. ‘목차와 순서’는 물론 본문에 해당하는 ‘법원의 판단과 결론’ 부분도 거의 유사했다. 절반 이상은 아예 ‘복사’나 다름없는 상태. 차이가 있는 부분의 문구도 사실상 같은 경우가 많았다.

판결 내용이 구체적인 것은 정 회장 쪽이다. 김 부회장의 판결문에는 없는 단락 또는 목차가 3쪽 정도 더해졌다. 내용이 확실히 다르거나 독립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판결문의 결론 5줄뿐이다.

법조계와 법학계에서는 ‘쌍둥이 판결문’을 두고 ‘합리적인 관행’인지, 아니면‘판사들의 성의 부족’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관행이라고는 하지만 좀 심했다”는 쪽의 의견이 다소 많은 정도. 먼저 서울대 법학과 조국 교수의 말이다.



절반 이상은 아예 ‘복사’ 상태

“기본적으로 판사의 ‘성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판결문의 법리해석 부분이 동일 취지로 작성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문구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부분이 전체의 70% 이상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본다. … 법관의 판결문 작성법 등에 대해선 법원 내에서도 논란이 많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인용을 하면서도 출처를 밝히지 않아 일부 법관들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자성(自省)이 있었다. 이번 문제도 이런 논란과 관계가 있다.”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아마도 배석판사들 사이에 일정한 논의가 있었던 것 같다. 한 재판부가 먼저 쓰고 다른 한쪽이 그 내용을 가져다 쓴 것이 아닐까 싶다. 굳이 문제 삼는다면 논란은 되겠지만…. 관행으로 보는 것이 맞다”(검사출신 한 변호사)는 주장. 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사안이 심각하기 때문에 일부러 문구까지 똑같이 맞춘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원 측도 같은 견해다. 변현철 대법원 공보관은 “두 재판부가 판결문에 대해 긴밀히 협의한 것으로 안다. 기존 판례를 깨는 최초의 법리해석이라는 면에서 재판부 간 협의는 필수적이었다”고 말했다. 판사들의 ‘성의 부족’이라는 지적에도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 그는 “판결의 통일성이라는 측면에서 통상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 사건을 담당했던 문용선 전 서울지법 형사23부 부장판사(현 광주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전화 통화에서 “동일 사건의 경우 재판부 간에 협의를 하도록 돼 있다. 판결문 내용이 같아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합리적인 관행’ 정도로 보면 된다. 많은 사건을 처리하면서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그렇게 하기도 한다”고 해명했다. 문 판사는 또 “이미 써놓은 게 있는데 굳이 그걸 바꿀 필요가 있는냐는 것이 법원의 생각”이라고 이해를 구했다.



주간동아 2007.03.20 577호 (p40~40)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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