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7

2007.03.20

“盧 사저 신축 탓 VS 종친 관리 잘못”

봉하마을 인근 묘 훼손 김해 김씨 종친회와 건평씨 측 팽팽한 대립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7-03-14 14: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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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盧 사저 신축 탓  VS 종친 관리 잘못”

    노무현 대통령 퇴임 후 거처할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집터.

    ‘자고 나니 조상 묘가 사라졌다.’

    김수겸 김해 김씨 종친회장은 요즘 이런 황당한 일로 노심초사하고 있다. 사라진 묘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저가 신축 중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인근에 자리하고 있었다. 종친회 측은 ‘사저를 신축 중인 노 대통령의 형 건평 씨 측근들이 이 묘를 훼손했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건평 씨 측근들은 ‘종친회 측의 관리 잘못’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종친회 측은 조만간 법적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다. 파문이 불가피해 보인다.

    김해 김씨 선산에 자리했던 묘가 사라진 것은 2006년 12월. 종친들이 묘제(墓祭)를 지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가 묘가 훼손된 사실을 파악했다. 묘가 훼손된 것은 사저대지 매입 및 사저 신축과 관련이 깊다는 게 종친들의 주장이다.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측근인 정승영 휴켐스㈜ 부사장(정산개발 전무)과 이종길 씨는 2004년 12월 김해 김씨 안경공파 문중 선산 5400평을 4억5000만원에 샀다. 이씨는 김해지역에서 오랫동안 건설업을 해온 건평 씨의 측근으로 알려졌다.

    종친회 측 조만간 법적 문제 제기



    “盧 사저 신축 탓  VS 종친 관리 잘못”
    지난해 11월, 정 부사장은 이 가운데 1297평을 1억9000만원에 노 대통령에게 되팔았다. 노 대통령은 현재 이곳에 사저를 신축 중이다.

    노 대통령이 산 이 대지 주위에 안경공파 조상들의 묘 수십 기(基)가 자리잡고 있었다. 사저를 신축하기 위해서는 이장(移葬)을 해야만 하는 상황. 정 부사장은 종친회 측과 협상해 이 가운데 17기는 화장하기로 했고, 나머지 5기는 영구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종친회 측은 2005년 정씨 등과 매매계약서를 쓰면서 “조상 묘 중 보존가치가 있는 5기는 영구 보존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5기의 묘는 노 대통령이 구입한 땅의 경계선에 접해 있다는 게 김 회장의 주장이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생겼다. 보존하기로 했던 5기의 묘 가운데 1기가 없어진 것.

    사라진 묘는 안경공파 문중의 자랑이었던, 종2품 벼슬을 지낸 안경공파 5대 조부 성배 공의 묘. 성배 공은 조선 순조 때인 1828년에 태어나 무과에 급제해 종2품 오위장(五衛將·조선시대 군대의 직책 중 하나로 도성순찰, 시위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오위의 최고 벼슬)을 지낸 인물.

    당연히 문중에서 난리가 났다. 즉시 종친회 간부들이 상황 파악에 나섰다. 그 결과 박모 씨가 묘를 훼손했음이 밝혀졌다. 그는 안경공파의 친인척으로 오랫동안 묘를 관리해온 인물. 그는 다그치는 종친회 관계자들에게 “화장해 옆산에 뿌렸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종친회 관계자들은 박씨가 묘를 훼손한 배경이나 이유에 대해선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그가 묘를 파헤쳤다면 자신의 의지가 아닐 것이라는 의혹만 갖고 있을 뿐이다. 박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한 것도 이런 심증을 굳혔다.

    종친회 관계자들이 이런 의혹을 갖게 된 것은 사라진 묘가 신축 중인 사저 건물 가운데, 경호숙소 신축터와 가까운 곳에 자리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김 회장은 “아마도 묘가 있으면 경호숙소의 담을 쌓는 데 장애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종친들의 감정이 격해졌다. “판 땅을 되돌려받아라” “힘 없다고 이런 식으로 짓밟아도 되느냐” 등 온갖 얘기가 다 나왔다. 심지어 “건평 씨를 고소하라”는 주장까지 터져나왔다.

    그러나 김 회장은 건평 씨를 거론하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운 눈치다. 서류상으로나 법률상으로 건평 씨에게 책임을 물을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계약자는 정씨와 이씨이고, 묘를 파헤친 사람은 박씨이기 때문. 건평 씨는 이중 어디에도 개입돼 있지 않다.

    그렇지만 종친회 관계자들은 건평 씨가 땅 매매에 개입했고, 그가 묘를 보존하겠다는 확답을 직접 했다는 사실을 들어 건평 씨의 정치적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김 회장의 설명이다.

    “2004년 초쯤 건평 씨와 사업을 같이 하는 이씨가 문중 사람들에게 연락해, 대통령이 생가를 지을 계획이 있는데 문중 땅을 팔 수 없겠느냐고 제의했다. 처음엔 반대 분위기가 강했으나 건평 씨가 ‘김해에서 대통령이 났으니 도와달라’고 해 결국 땅을 팔기로 결정했다.”

    계약서는 2004년 12월28일 작성됐다. 매매계약서를 쓴 직후인 2005년 1월11일 오전 9시30분, 김 회장 일행은 문중 선산에서 건평 씨를 만났다. 보존할 묘를 확인시키기 위한 자리였다. 원래 이날 약속은 오전 9시에 잡혔다. 그러나 건평 씨가 30여 분 늦게 현장에 나타났다. 등산화를 신고 현장을 찾은 건평 씨에게 김 회장은 5기의 묘를 정확히 알려주었다.

    경호숙소 신축터와 가까운 곳에 자리

    종친회 관계자들이 건평 씨 책임론을 거론하는 이유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그러나 종친회 측은 “건평 씨에게 도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법적으로 책임을 묻기는 모호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종친회 측은 지난해 말 매매계약의 특약사항을 들어 건평 씨 측근인 정 부사장과 이씨, 박씨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었다. 그러나 경찰은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종친회 관계자들은 3월5일 다시 모여 법률전문가를 선임,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로 결정했다. 김 회장은 이렇게 목소리를 높인다.

    “멀쩡한 묘를 파헤쳐놓고 ‘실수’라고 한다. 김해에서 대통령이 났고, 그분이 살 사저를 신축한다고 해 조상 묘를 옮겨가면서까지 선산을 내줬다. 그 결과가 이거냐.”

    인터뷰|정승영 휴켐스㈜ 부사장

    “문중 입장 이해, 그러나 우린 관련없어”


    “盧 사저 신축 탓  VS 종친 관리 잘못”
    정승영 휴켐스㈜ 부사장은 김해 김씨 종친회 측의 묘지 훼손 주장에 대해 오히려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그 묘를 훼손한 사람이 김해 김씨 종친회 관계자라는 것. 3월8일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에 있는 휴켐스 부사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김해 김씨 종친회가 묘지훼손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는데….

    “나는 묘가 훼손된 것과 아무 관련이 없다. 묘를 이장한 사람은 김해 김씨 종친회의 박모 씨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묘를 관리해온 사람이다. 박씨는 보존(5기)하기로 한 묘와 이장(17기)하기로 한 묘를 누구보다 잘 안다. 우리는 그 사람에게 4290만원의 이장비용을 주었을 뿐 이장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나는 이 사건이 박씨가 이장할 묘와 보존해야 할 묘를 착각해 일어난 일로 알고 있다.”

    -김해 김씨 종친회 측은 박씨가 ‘특정인’이 이장 요청을 사주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나는 박씨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나는 부동산 내의 묘지 이장과 관상수·정원수, 농장 개간 등 관리 행위 등을 이종길 씨에게 위임했다. 그 묘를 훼손하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묘를 옮겨 얻을 실익이 없다.”

    -훼손된 묘지는 경호숙소 신축터 인근에 자리해 담을 쌓는 데 장애물로 작용했다는 게 종친회 측 주장이다.“그 묘는 사저 신축 현장에서 100m 이상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경호숙소가 그곳에 들어선다는 것은 처음 듣는 얘기다.’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 씨가 도의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그분은 이 사실을 모를 것이다. 이 문제는 (그분과) 관계가 없다.”

    -2005년 1월 건평 씨가 보존해야 할 묘터를 둘러보고 확인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

    -5기의 묘를 보존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문중 선산을 팔았다가 조상 묘가 훼손됐는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한국인에게 조상 묘가 갖는 정신적, 정서적 가치를 잘 안다. 김해 김씨 문중이 받을 충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문중에서 소송을 낸다고 하니 검찰에서 조사하면 모든 의혹이 풀릴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이슈화하는 것은 뭔가 배경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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