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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弘’ 위한 햇볕정책은 어디 없소?

동교동 훈풍 속 DJ 세 아들 아직 겨울 … 홍업씨 출마설, 홍걸씨 사업 시작 재기 모색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3弘’ 위한 햇볕정책은 어디 없소?

‘3弘’ 위한 햇볕정책은 어디 없소?

1998년 2월25일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밝은 얼굴로 담소를 나누는 홍일 홍업 홍걸(왼쪽부터) 세 형제.

‘동교동’에 봄빛이 완연하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찾아오는 손님을 맞느라 바쁘다. DJ의 한 측근은 “(DJ) 퇴임 후 동교동이 이렇게 활기를 띠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동교동의 원심력은 여야 정치권을 강타한다. 신당 창당도, 정계개편도, 또 민감한 대북문제도 핵심고리는 모두 동교동으로 연결된다. 때마침 사면 복권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박지원 전 비서실장 등도 동교동에 훈풍을 불어넣는다.

2월22일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몇 년 만에 열린 동교동 식구들의 모임은 동교동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런 분위기에 고무된 듯 DJ의 얼굴도 어느 때보다 밝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볕이 들지 않는 동교동의 한쪽에는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또 다른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김홍일 전 의원과 홍업, 홍걸 씨 등 DJ의 세 아들(3弘)도 여전히 엄동설한에 몸을 떨고 있다.

‘확실하게’ 쉬고 있는 김홍일 전 의원



2002년 ‘3홍의 난’ 이후 김 전 의원을 제외한 두 형제는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지난해 김 전 의원이 배지를 잃으면서 세 형제는 하나같이 ‘하루는 쉬고 하루는 놀았다.’

지난해 의원직을 사퇴한 김 전 의원은 요즘 서교동 자택에서 주로 생활한다. 5·18 기념장학회사업 등 최소한의 사회활동은 하고 있지만 사실상 실업자 상태라는 것.

무엇보다 정계를 떠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던 탓에 DJ와 이희호 여사가 마음 아파했다는 후문이다. 정치활동을 할 때는 측근들의 도움을 받아 여의도에 있는 피트니스클럽 등을 찾았지만, 요즘은 모든 것을 집 안에서 해결한다고 한다. 한 측근의 설명이다.

‘3弘’ 위한 햇볕정책은 어디 없소?

2006년 10월28일 목포를 찾은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

“정치 때문에 자주 못 보던 지인을 만나거나 소홀히 했던 가정을 돌보고, 동교동 어른을 뵙는 일 등이 일상이 되었다.”

그 덕에 건강도 매우 좋아졌다고 한다.

물론 빠질 수 없는 자리가 있으면 참석한다. 2월22일 권노갑 전 고문과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사면 복권을 축하하기 위한 동교동계 인사들의 오찬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전 의원의 향후 진로는 불투명하다. 한 측근은 “떠날 때 모양새가 이상했으니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희망이 통할지는 미지수. 사면 복권 등을 통해 피선거권을 확보하더라도 나이(1948년생)와 건강이 문제다. 재기 가능성이 많지 않다는 게 주변의 공통된 시각이다.

김 전 의원의 정치 재개가 어려울 것이란 진단은 동생 홍업 씨의 정계 진출설과 맞물린다. 동생이 나섰는데 형이 또 나설 수는 없다는 것. 그 대신 김 전 의원은 동생의 정계입문을 지원하는 도우미 구실을 수행, 간접적으로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 전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민주당 김정현 부대변인은 “평소 김 전 의원은 동생이 정치를 할 것이고, 하면 잘하리라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요즘 홍업 씨 주변에서는 신안·무안 보궐선거 출마설이 흘러나온다.

홍업 씨는 2005년 사면 복권된 뒤 이렇다 할 ‘직업’을 가진 적이 없다. 물론 그 이전에도 야당 대표의 아들이라는 ‘연좌제’에 묶여 변변한 자리를 잡은 적이 없었다. 동교동 한 인사는 “그가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 처음으로 번듯한 ‘직업(?)’을 갖게 되는 셈”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가족 가운데 일부가 홍업 씨의 출마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이다.

홍업 씨가 국회에 들어가면 쉽지 않은 역할이 기다린다. 먼저 그는 DJ의 대리인으로서 ‘임무’를 소화해야 한다. 범여권 통합문제를 놓고 동교동과 정치권을 이어주는 ‘전령’이자 채널 구실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의 분신인 햇볕정책을 지키는 특별한 ‘미션’도 소화해야 한다.

동교동 인사들은 홍업 씨가 이런 일을 수행할 정치력을 갖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찍부터 아버지의 구속과 연금으로 만신창이가 된 집안을 이끌어왔고, DJ의 수행비서로 활동하면서 오랫동안 트레이닝 받았기 때문이다.

월세 사는 막내 ‘짠한 마음’

사람 관리도 열성적으로 했다. DJ의 수행비서로 활동하다 ‘동교동 24시’를 써 DJ의 비리를 고발했던 함윤식 씨가 90년 중반 강남의 한 호텔에서 홍업 씨를 만났다. 함씨는 이 자리에서 “너한테는 정말 미안하다”며 동교동 관계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홍업 씨에게 사과를 했다. 이 말을 들은 홍업 씨도 “이해한다”며 그를 포용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사람들을 깊고 넓게 사귄다.

그러나 홍업 씨의 출마를 막는 벽도 많다. 우선 여론이 곱지 않다. 지역구를 대물림하는 것에 대해 봉건적 사고라는 지적과 3김의 잔재라는 비판이 교차한다.

DJ 의중도 오리무중이다. 출마를 적극 지지한다는 말과 반대하고 있다는 반응이 동시에 나온다. 홍업 씨가 출마 의지를 굳힐 경우 DJ가 끝까지 반대할지는 알 수 없다.

이희호 여사의 마음에 늘 ‘짠하게’ 자리잡고 있는 자식은 막내아들 홍걸 씨다. 그는 2005년 귀국해 지인과 함께 광고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이 신통치 않아 생활이 매우 어렵다는 후문이다. 동교동 한 관계자는 “언론이 한때 수조원의 비자금을 갖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 홍걸 씨가 월세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 여사도 홍걸 씨 얘기만 나오면 “그 많은 돈(수조원)은 다 어디로 가고…”라며 셋방살이하는 막내아들에 대한 짠한 마음을 드러낸다고 한다. 한때 홍걸 씨가 동교동으로 들어가 함께 살겠다고 했지만 이 여사가 반대했다고 한다.

홍걸 씨는 올해 초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고 한다. 이 사업에 동교동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홍걸 씨가 벌이는 사업이 정상궤도에 오르면 동교동 어른들의 얼어붙은 마음도 풀릴 수 있다는 게 동교동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또 홍업 씨가 선거에 출마, 당선되는 것도 동교동에 봄바람을 불어넣는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 ‘3홍’에게 과연 ‘봄’은 올까.



주간동아 2007.03.20 577호 (p28~29)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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