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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땡기는 날, 두 남자의 힘

삼성 신치용 vs 현대 김호철 감독 ‘40년 라이벌’… 경기도 엎치락뒤치락 흥행몰이

  •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uni@donga.com

배구 땡기는 날, 두 남자의 힘

배구 땡기는 날, 두 남자의 힘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좌).신치용 삼성화재 감독.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과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 한국 남자배구계의 양대 산맥인 두 사람 앞엔 항상 ‘40년 지기’란 수식어가 붙는다. ‘영원한 라이벌’이란 말도 빠지지 않는다.

친구이자 라이벌. 매번 양보 없는 대결을 하는 걸 보면 라이벌은 맞다. 그러나 친구라고 하기엔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다. 사전상 의미로 친구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다. 1955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오래 사귀긴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경남 연합팀 동료로 처음 만났다. 국가대표로도 함께 뛰었고, 군대도 같은 날 같은 부대로 갔다.

이때까지는 가까웠던 게 사실. 그러나 제대 후 김호철 감독이 이탈리아로 떠난 뒤 둘의 관계는 멀어졌다. 프로배구 출범과 함께 김 감독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둘은 경기장에서만 얼굴을 볼 뿐 사적으로 만나는 사이는 아니다. 경기 전에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도 별로 없다. 경기가 끝난 뒤 형식적으로 악수를 나눌 뿐이다.

인터뷰에서도 그렇다.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으면 두 사람이 정말 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날선 말들이 오간다.

안 그래도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은 전통의 라이벌이다. 여기에 스타일마저 180도 다른 두 감독의 장외설전까지 펼쳐지니 두 팀이 맞붙으면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신 감독이 ‘물’이라면 김 감독은 ‘불’이다. 신 감독이 ‘아웃 파이터’라면 김 감독은 ‘인파이터’다. 두 팀이 맞붙었을 때 경기만큼 재미있는 게 두 감독의 표정과 태도를 살피는 일이다.

180도 다른 스타일, 보는 재미 두 배

먼저 불같은 성격의 김 감독은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질 않는다. 때론 기뻐하고, 때론 아쉬워하며 연신 고함을 질러댄다. 본인 스스로 “선수들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가만히 보면 내 목소리가 제일 크다”고 말할 정도다.

배구 땡기는 날, 두 남자의 힘

2006~2007 프로배구 개막 경기인 삼성화재 vs 현대 캐피탈전 장면.

신 감독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앉아 경기를 본다. 작전시간이 되어야 몸을 일으켜 말을 한다. 그나마 큰 소리도 내지 않는다. 조곤조곤 침착하게 말한다.

선수들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김 감독은 입이 걸다. 혼을 낼 때는 육두문자를 서슴지 않는다. “정신상태가 썩어빠졌다”라든지 “내가 방방 뛰지 않으면 늘어진다”는 심한 말도 거침없이 한다. 2월4일 대한항공과의 경기에서 0대 3으로 진 날,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저녁도 못 먹고 다시 체육관으로 불려나가야 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현실을 긍정적으로 보는 스타일이다. 경기 전에는 “마음 편하게 잘할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반면 신 감독은 패배의 충격도 혼자 감내하는 편이다. 다음 날 선수단 미팅에서 “마음은 비우고 머리는 채워라”고 충고하거나 “어제는 모두 동태 눈깔이던데, 오늘은 그러지 말자”는 가벼운 농담을 던진다. 그의 조용한 카리스마에 선수들은 오히려 더욱 긴장한다.

팀 운영도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뒤 풀어가는 방식을 택한다. “우리 선수들은 나이가 너무 많다” “현대캐피탈에 비해 높이가 훨씬 열세다” “부상자가 많아서 걱정이다” 등등. 신 감독이 거의 매번 하는 ‘엄살’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감독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승부 근성이다. 두 사람 모두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승리를 위해 김 감독은 밀어붙이고 신 감독은 치밀하게 준비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두 팀의 경기 스타일도 사령탑의 성격을 닮았다. 현대캐피탈은 높이를 앞세우는 공격배구를 하는 데 비해 삼성화재는 조직력을 앞세운 아기자기한 배구를 한다.

공교롭게 두 팀은 이번 시즌 들어 더욱 팽팽한 대결을 펼치고 있다. 1라운드부터 3라운드까지 세 번의 승부에선 삼성화재가 모두 이겼다. 그러나 4, 5라운드에서는 현대캐피탈이 승리했다. 3월11일 천안에서 열리는 최종 6라운드 맞대결 성적에 따라 정규리그 1위 팀이 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마치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다.

서로가 서로의 배구 인정하고 존중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한국에 없었다면 한국 프로배구가 세 번째 시즌 만에 이렇게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손바닥도 부딪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김 감독이 있기에 신 감독이 있고, 신 감독이 있기에 김 감독이 있다.

두 사람은 말한다. “친구이긴 하지만 그렇게 친하지는 않다”고. 그러나 서로가 서로의 배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번 시즌에서 최후에 웃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



주간동아 576호 (p64~65)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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