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6

2007.03.13

예루살렘 성전산 갈등 또 피바람 부르나

이스라엘 ‘통곡의 벽’과 연결다리 신축 “알-아크사 사원 파괴” 무슬림 강력 반발

  •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입력2007-03-07 16:3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예루살렘 성전산 갈등 또 피바람 부르나

    최근 이-팔 갈등의 현장이 되고 있는 알-아크사 사원과 무그라비문.

    최근 예루살렘에 다시 한 번 분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발단은 이스라엘이 2월 초 성전산(Temple Mount)으로 향하는 다리의 신축공사를 강행하면서 비롯됐다.

    성전산은 기원전 9세기 솔로몬왕이 이스라엘 민족의 신 여호와를 모시는 1차 성전을 그곳에 건설하고, 같은 자리에 서기 1세기 헤롯왕이 2차 성전을 건설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현재 성전의 잔재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서기 7세기에 무슬림이 이곳을 점령해 건설한 이슬람의 바위사원과 알-아크사 사원이 들어서 있다.

    관광객 유일 통로 ‘무그라비문’

    성전산에 세워진 알-아크사 모스크 때문에 무슬림에게 예루살렘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메디나에 이어 제3성지가 되었다. 또한 유대교와 구약성경을 공유하는 기독교에서도 예수가 이곳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이적을 행했다는 신약성경의 기록 때문에 이곳을 성지로 추앙하고 있다.

    이처럼 한 장소를 놓고 세 종교가 영유권을 주장하다 보니 늘 긴장이 끊이질 않는다. 이곳과 관련해 발생한 대표적 사건이 바로 2000년의 2차 인티파다(민중봉기).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아리엘 샤론이 성전산에서 아랍인들과 충돌해 그 자리에서 13명이 숨진 일이 발단이 되었다.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세는 유혈정국으로 바뀌어 그 후 6년간 아랍인 4000여 명, 유대인 1000여 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오늘날 무슬림이 아닌 관광객이나 유대인이 성전산에 가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통로는 단 하나다. ‘무그라비’라 불리는 문이 그것으로, 예루살렘 성내 유대인 구역인 ‘통곡의 벽’ 광장 쪽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 벽 위가 바로 성전산이다.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이 성전산 구역에서 예배드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그래서 이 벽 광장 아래에서는 유대인들이 통곡하며 기도하고, 위에서는 무슬림들의 기도소리가 울려 퍼지는 진기한 장면이 연출되곤 한다.

    무그라비문은 성전산으로 통하는 여러 문 가운데 유일하게 이스라엘이 통제하는 지역에 있다.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요르단이 통치하던 성전산이 자리한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자신들의 영토로 합병했다. 단, 성전산 위에 건설된 이슬람 사원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것에 손댈 겨우 전 세계 무슬림 국가가 이스라엘을 향해 전쟁을 선포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성전산 위에 건설된 이슬람 사원에 대한 관리권은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와크프(이슬람재단)에 넘겨줬다.

    원래는 ‘통곡의 벽’ 광장과 무그라비문을 연결하는 축대가 있어서 이를 통해 순례자들이 성전산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4년 겨울에 내린 폭설과 지진으로 이 축대가 무너지고 말았다. 이에 이스라엘은 목재 가교를 세웠지만 이는 임시조치일 뿐이었다. 안전과 미관을 위해 이스라엘은 2월 초 영구적 다리 건설을 위한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다리 신축을 위해 이스라엘이 성전산 밑을 파기 시작하자 무슬림들은 “알-아크사 사원을 파괴하기 위한 의도”라며 반발했다. 이 같은 주장을 펼치는 대표적 인물이 이스라엘 내 ‘이슬람운동’ 지도자 라에드 살라흐이다. 그는 공사 저지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일촉즉발 분위기 … 본질은 예루살렘 주도권 다툼

    특히 무슬림의 기도일인 금요일에는 많은 무슬림이 알-아크사 사원에 모인다. 이때를 기해 대규모 시위가 발발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이스라엘 경찰은 보안 조치의 일환으로 성인 남성의 성전산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다행히 공사가 시작된 후 두 번의 금요일에는 큰 불상사가 없었다. 그러나 금요일은 매주 돌아온다. 예루살렘시가 공사 중단 견해를 밝혔음에도 공사의 직접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총리실과 건설부가 공사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는 형편이라 언제 다시 큰 사고로 번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이-팔 갈등의 본질은 결국 예루살렘에 대한 주도권 다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랍인 처지에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모든 통제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유일하게 자신들이 관리권을 행사하는 성전산 구역을 이스라엘이 좌지우지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이스라엘은 자국 영토이자 수도인 예루살렘에 대한 통제권을 일부 지역이나마 아랍인들에 의해 제지당하는 상황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는 역사논쟁으로도 이어진다. 무슬림 측은 지금까지 성전과 관련된 유물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성전산에 유대인 성전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했다. 반면 유대인들은 무슬림 측이 성전산 주변 지역을 발굴하는 일에 민감한 이유는 이곳 원주인이 유대인이라는 증거, 즉 성전과 관련된 유물이 발견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 이미 발견되었을지 모를 유물을 은폐하기 위한 시도라고 반격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사태가 3차 인티파다로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탈무드’에 보면 ‘하나님께서 지상에 열 가지 아름다움을 주셨는데, 그중 아홉 가지를 예루살렘에 주셨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성전산을 둘러싼 분쟁을 보면 ‘하나님께서 지상에 열 가지 분쟁의 씨앗을 주셨는데, 그중 아홉 가지를 예루살렘에 주셨다’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