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2

2007.02.06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通하는 법

  • 유희정 ㈜엘림에듀 ‘늘품논술’ 상임연구원

    입력2007-02-05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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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대사회의 소통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通하는 법

    현대사회에서 소통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최근 논술 기출문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주제가 ‘소통과 이해’다. 고려대는 2006학년도 수시 1차 문제인 ‘의사소통의 이상과 현실’에 이어 2007학년도 수시 2차에서도 ‘의사결정의 기준과 방법’이라는 주제를 출제했다. 또한 올해 연세대는 정시 논술로 ‘다른 존재에 대한 마음의 인식의 어려움과 그 극복 가능성’이라는 문제를 출제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전제에서 봐도,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이상에서 봐도 소통의 문제는 중요하다. 특히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현재의 지구촌에서 현대인들은 더욱더 이질적이고 생소한 가치관, 문화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일한 인지과정과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보편성에 대한 순진한 믿음은 소통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수천 년 동안 서로 다른 문화와 인식체계를 유지해온 인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소통의 첫출발이다.

    2. 외국인 눈에 비친 19세기 말의 한국

    국어 (하) 6단원에 나오는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이 쓴 ‘외국인의 눈에 비친 19세기 말의 한국’은 영국인의 눈으로 관찰한 19세기 말 한국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영국왕립지리학회의 최초 여성학자이면서 세계 곳곳을 탐험한 이 호기심 많은 여성은 1894년부터 1897년까지 네 차례 현지답사를 통해 한국의 낯선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저자는 한국인의 잘생긴 외모와 체격을 칭찬하면서도 한복을 대단히 보기 흉한 옷차림이라고 지적한다. 여행 중 들른 여관에서는 이렇게 뜨거운 가마솥 방에서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자냐며 신기해한다. 비숍 여사의 글을 보면 소통하기 위해 상대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문화적 차이는 단지 의식주 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사고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인 리처드 니스벳(Richard Nisbett)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동아시아 문화권 학생들과 그리스 문화의 전통을 계승한 유럽 문화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몇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각각 소, 닭, 풀이 그려진 그림 석 장 중 관련 있는 두 장의 그림을 묶는다면? 또는 판다, 원숭이, 바나나를 제시하고 이 중 가장 관련 있는 두 가지를 고르게 한다면? 이 실험에서 동양인 학생들은 압도적으로 소와 풀의 그림 두 장을 고르고 원숭이와 바나나를 관련 있다고 대답했다. 반면 서양인 학생들은 소와 닭 그림을 고르고 판다와 원숭이가 관련 있다고 대답했다.



    3. 서양인과 동양인의 사고

    이 사례는 동양인과 서양인이 매우 다른 지적 전통을 지니고 있고, 그에 따른 사고과정이 전혀 다름을 보여준다. 서양인들은 전체에서 개별을 분리해 독자적으로 그 사물을 인식하는 것에 익숙해 있다. 서양인들에게 세상은 개별적인 사물로 구성된 집합체다. 그들은 개체 - 집합이라는 구도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기 때문에 당연히 같은 포유류의 분류체계에 속하는 소와 닭을 하나로 묶는다. 또한 판다와 원숭이를 동물이라는 유사성 때문에 같은 범주로 묶는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전체에서 개별을 분리해 인식하기보다는 전체 속에서 관련을 맺는 개별로 인식한다. 같은 계통을 따지고 범주화하기보다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에 근거해 추리한다. 그래서 ‘소가 풀을 먹기 때문’에,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기 때문’에 소와 풀을, 원숭이와 바나나를 같이 묶어 고른다. 언어생활에서 서양인들이 명사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사용하고 동양인들은 동사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서양인은 자신을 독자적인 개성과 신념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는 반면, 동양인은 집단 속의 한 구성원으로서 인식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동양인이 타인의 시선을 더 의식하고 더 예의를 차리는 것에는 ‘개인은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할 때, 각각의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사람이 된다’라는 신념이 전제돼 있다.

    4. 문화적 차이의 이해

    이제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가야 한다. 과거의 ‘우리’와 ‘타자’의 경계지음과 배타적 태도는 극복돼야 하며 서로 이해하고 진정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모든 노력의 첫 출발점은 상대 문화권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지리적 환경 속에서 형성되고 계승돼온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차이는 서로 다른 사고과정과 인식체계에까지 이어져 있다.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 바로 상대방의 문화를 알고 이해하는 노력 속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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