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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결별 정치 드라마 ‘Again’

대선 앞두고 여권 이합집산 본격화 … 권력 앞에선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어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만남과 결별 정치 드라마 ‘Again’

만남과 결별 정치 드라마 ‘Again’

2002년 6월13일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가운데)가 당선이 확실시되자 홍준표 의원(왼쪽)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좌).
2003년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우).

2006년 12월31일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홍준표 의원(한나라당)이 만났다. 측근들 대부분도 눈치채지 못한 이 비밀회동은 이 전 시장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 6개월 만의 재회는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전까지 이어졌다.

이 전 시장은 이날 만남을 통해 2006년 6월 “이 시장은 이 시장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간다”며 결별을 선언한 홍 의원과의 신뢰관계를 회복했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둘러싸고 생겼던 갖가지 오해와 억측, 정권 재창출 및 인간적 신뢰관계 등에 대해 이 전 시장이 입장을 전달했고 홍 의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

만남과 결별 정치 드라마 ‘Again’

2004년 4월21일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전 의장(오른쪽)이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서 만찬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다시 손 맞잡은 이명박-홍준표

무엇보다 홍 의원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사적인 감정은 뛰어넘어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홍 의원은 1월 초 전화통화에서 “지난해 쌓인 감정은 지난해 풀겠다는 생각으로 이 전 시장을 만나 화해했다”고 말했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 인사들이 화해의 장 앞에 나서고 있다. ‘이명박-홍준표’가 다시 손을 잡은 것처럼 다른 대선후보 진영도 과거의 인연을 내세워 몇몇 당내 인사들과 화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것.



화해의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선택을 위한 결별의 기운도 감지된다. 정계개편을 준비 중인 여당이 그 진원지다. 정계개편이 빈번했던 한국 정치사에서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敵)도 없다’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이를 증명하듯 정동영 전 당 의장과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첫 번째 남자’ 천정배 의원 등이 모종의 결단을 준비하고 있다.

만남과 결별 정치 드라마 ‘Again’

2003년 12월16일 이회창 전 총재가 허주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아산병원을 찾아 분향하고 있다.

그 흐름을 앞장서 연출하고 있는 인사가 바로 정 전 의장이다. 노 대통령을 보는 그의 시선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2004년 3월 그는 노 대통령의 탄핵결의안이 가결된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눈물을 흘렸고, 그 모습을 본 국민은 ‘정동영-노무현호’을 원내 제1당으로 만들어줬다. 그러나 지금 정 전 의장의 주변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정 전 의장의 측근들은 두 사람의 결별설을 부정하지 않는다. 만약 정 전 의장이 탈당하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칼을 겨눠야 할지도 모른다.

3년간 개혁동지로 보조를 맞추며 참여정부의 축으로 활동했던 천정배 의원의 주변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이미 마음이 떠난 듯 상처를 내는 말도 주저하지 않는다. 정치는 생물이며, 언제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결별하는 그들이 화해의 깃발 아래에서 다시 뭉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별과 화해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셈이다.

공천 탈락 허주 “이회창이 날 배신”

진실 공방이 부른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경우도 많다. 2006년 10월22일 고(故) 최규하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고건 전 국무총리가 빈소에 들어섰다. 1980년 ‘그때’ 한 사람은 대통령이고, 다른 한 사람은 청와대 정무수석이었다. 그 연으로 문상을 온 고 전 총리는 어딘가 어색한 표정이었다. 다른 조문객들은 상주나 최 전 대통령 측근들과 차를 마시며 고인에 대한 애도의 말을 전했다. 몸이 아픈 비서관들도 하루 종일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을 맞았지만 고 전 총리는 인사만 하고 곧장 장례식장을 나섰다. 그의 등 뒤로 힐난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미안하기는 한 모양이지….”

청와대 의전수석이던 정동열 씨의 독백이었다. 무슨 말일까. 최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1980년 5·17 때 고 전 총리의 잠적 의혹을 빗댄 말”이라고 설명했다. 그때 “고 전 총리의 불명확한 행적에 대해 최 전 대통령 측의 불만이 많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측근은 “당시 군부세력과 최 전 대통령, 그리고 고 전 총리만 아는 비밀이 있지 않겠느냐”며 여운을 남겼다.

두 사람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불분명하다. 만약 있더라도 이제 이승에서 풀 수 있는 방법은 사라졌다. 화해를 해야 할 일이라면 이 역시 천상(天上)에서나 가능하다. 최 전 대통령이 평생 가슴에 품었던 고 전 총리에 대한 오해와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허주(김윤환·전 한나라당 의원)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정말 화해를 한 것일까. 허주는 ‘개고기’를 즐긴다. 동료나 기자를 서초동(방배동)으로 불러 직접 고기를 찢어주는 일을 큰 낙으로 여겼다. 2000년 총선이 끝난 후 허주의 개고기 파티에는 새로운 흐름이 생겼다. 특정인을 향한 허주의 증오가 수시로 표출된 것. 2000년 16대 총선 당시 그를 공천에서 탈락시킨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었다.

허주는 “이 전 총재가 배신했다”고 말했다. 감정의 기복이 심했다. 그러다가 덜컥 병을 얻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것이 ‘암’으로 판명됐다. 공천 탈락에서 온 화병이었다.

허주의 증오와 중병은 이 전 총재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 전 총재가 화해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허주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3년 10월28일 이 전 총재가 막무가내로 방배동의 허주 자택을 찾았다. 정치적으로 갈라선 지 3년 8개월여 만의 재회였다.

“미안합니다.”

허주가 그토록 기다리던 사과였다. 그러나 앙상한 손을 내준 허주는 반응이 없었다. 그저 허공만 바라봤다.

허주 방을 나온 이 전 총재 부부는 허주의 부인 이절자 씨와 마주 앉았다. 이 전 총재의 부인 한인옥 씨가 입을 열었다.

“너그러이 용서해주세요.”

이씨 역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씨는 침묵으로써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허주’임을 말했다. 며칠 후 몇몇 언론은 ‘이 전 총재와 허주가 화해했다’는 기사를 썼다. 세상은 그렇게 두 사람이 화해했다고 정리했다. 그러나 그때의 상황을 지켜본 측근 H씨의 생각은 다르다. 최근 그는 두 사람의 만남을 이렇게 정의했다.

“사과는 있었다. 그러나 용서는 없었다.”

‘결별과 화해’의 절정에는 항상 ‘양김’이 있다. 양김의 40여 년 정치여정은 협력과 경쟁으로 점철됐다. 그 가운데 협력의 기간은 10% 정도였을까. 나머지는 경쟁과 대립의 연속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을 ‘지존(至尊)’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굽히고 들어오기만을 기다린다. 두 사람은 또 서로에 대한 불신이 대단하다. 특히 DJ에 대한 YS의 불신이 깊다. 이 불신은 1998년 DJ 정부 출범을 계기로 극단으로 치달았다. YS는 DJ가 권력을 동원해 자기의 뒤를 뒤지고 다녔다고 생각한다. 한 측근의 말이다.

지존 양金, 경쟁과 대립의 40년

“YS의 후배 가운데 1971년 대통령후보 경선 때 선거자금을 대준 사람이 98년 덜컥 구속됐다. 그런데 그 사람이 71년도에 쓴 선거자금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몇 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그는 석방되는 날 상도동으로 와 YS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이후 두 사람은 지금까지 왕래가 없다. 보다못한 측근들이 ‘양김의 화해’를 시도했다. 이 시도는 2005년 11월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DJ에게 YS가 전화를 거는 것으로 현실화됐다. 그러나 12년 만에 개통된 상도동과 동교동의 ‘통화’는 시작부터 해프닝의 연속이었다. 11월6일 일요일 오후 2시. YS가 느닷없이 비서에게 “김대중을 연결하라”고 지시했다. 이 측근은 언론인 김대중 고문을 찾았다. YS가 정정을 했다.

“거기 말고 동교동을 대.”

우여곡절 끝에 전화기를 사이에 놓고 양김이 마주했다.

YS : 건강이 어떠시냐.

DJ : 좋지는 않지만 괜찮다. 김 대통령과 손(명순) 여사는 어떠냐.

12년 만에 재개된 양김의 대화는 4분 만에 끝났다. 대화 내용도 건조했다. 그러나 상도동과 동교동은 ‘양김의 화해’를 위한 디딤돌을 놓았다고 판단했다. ‘양김 회동’을 위한 아이디어들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엉뚱한 데서 문제가 생겼다. 난데없이 불법도청 X파일 사건이 터진 것. 특히 안기부(국정원)의 불법도청 테이프에 YS와 박종웅 전 의원의 대화 내용이 포함된 것이 문제였다. YS가 쌍심지를 켰다.

“화해는 무슨….”

DJ에 대한 YS의 불신이 도진 것. YS는 이 불신을 지금도 거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양김의 화해를 시도하려는 밀사들의 움직임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연초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양김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에 대한 도리’라는 설득 논리가 상도동을 압박했다.

동교동에도 비슷한 주문이 전달됐다. 양김 회동과 화해를 정치 이벤트로 만들어 대선에 활용하려는 특정 정파의 움직임도 포착됐다. 그러나 상도동은 이런 움직임에 싸늘한 반응을 보인다. DJ는 올해 83세, YS는 80세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어 보인다.

결별은 한순간에 이뤄지지만 화해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영원히 화해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한때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배신’이라는 말만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고 한다. 자신이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친구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배신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박철언 전 의원이 공개한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5공, 6공, 3김 시대의 정치 비사’에는 친구에게 배신당한 전 전 대통령의 처절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내가 무리해서 당선에 기여했는데, 사과하고 재산 헌납하고 낙향하라는 것은 죽어달라는 것보다 더한 짓이다. 이제는 나도 싹 쓸어버리겠어. 나도 양심선언을 하겠어. 형님(전기환 씨)이나 처남(이창석 씨)까지 잡아넣겠다는 것은…. 노태우가 말 한마디 없이 그런 식으로 하면 나한테 귀싸대기 맞는다. 둘 사이가 원수가 되지 않길 바란다.”

경고이자 압박이고 애원이었다. 그러나 권력은 냉정했다. 형님도 처남도 모두 영어의 몸이 됐다. 급기야 전 전 대통령은 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백담사로 쫓겨가기까지 했다. 그날 이후 50여 년을 친구로 지낸 두 전직 대통령은 서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벌써 20년째다.

얼음처럼 차가운 양 진영이지만 오해를 풀고 친구로서의 정리(情理)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999년 말 연희동 주변에서 나돈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5공과 6공을 화해시키기 위한 시나리오였다. 5공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과 6공 때 장·차관을 지낸 몇몇 인사들이 5공 측 인사들을 접촉하면서 다리 구실을 자임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5공의 ‘안방’에서 터져나온 노기에 눌려 입안도 되기 전에 휴지통으로 던져졌다고 한다.

친구 사이 5·6共, 여전히 찬바람 쌩쌩

가치관이 달라 결별하고 다른 길을 간 정치인들은 소신을 지키기 위해 수십 년을 ‘전쟁’ 상태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박철언 전 의원이 그런 경우. 두 사람은 내각제를 놓고 1992년 헤어진 뒤 지금까지 대립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박 전 의원은 지난해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5공, 6공, 3김 시대의 정치 비사’라는 회고록에서 ‘3당 합당을 위해 YS에게 40억원 이상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상도동은 즉각 1992년 내각제를 놓고 벌인 진검승부에서 패한 박 전 의원이 회고록을 통해 반격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상도동은 “아직까지 박 전 의원이 정신을 못 차렸다”고 비난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15년 전 결별한 두 인사가 최근까지 화해하지 않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노 대통령은 1월1일 영화를 관람했다. 그가 본 영화 ‘길’은 우정과 화해를 주제로 만든 영화다. 노 대통령이 이 영화를 본 것은 ‘화해’를 신년 화두로 던지기 위한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정치권, 특히 여당 인사들은 결별의 협주곡을 멈추지 않는다. 탈당 행렬의 꼬리는 갈수록 길어진다. 정계개편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 화해와 결별이란 서로 다른 성격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한나라당 유승민 vs 정두언

“友情보다 주군 먼저” … 양 진영 공격수 자임


만남과 결별 정치 드라마 ‘Again’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왼쪽)과 정두언 의원.

서울대 76학번, 경제학과와 무역학과.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과 정두언 의원은 동기동창이다.

2000년 비슷한 시기에 정계에 입문한 유 의원과 정 의원은 각각 여의도연구소장과 원외위원장 부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친구’의 정을 키웠다. 2주일에 한 번씩 교수, 학자 등을 불러 공부하는 북악포럼에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두 사람은 상대방을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한다. 대선 출마를 놓고 대립하는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의 핵심 측근만 아니라면, 두 사람은 통상적인 ‘친구’의 범주에서 정을 나눌 수 있는 사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인, 특히 참모로서의 역할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그들은 자신의 주군을 청와대로 보내기 위해 친구의 정을 잠시 접어두려는 눈치다.

두 인사는 때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임무도 수행한다. 지금까지 주 공격수는 정 의원이었다. 유 의원은 조용하게 정책 개발에만 몰두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정 의원이 박 전 대표를 공격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유 의원이 연초부터 ‘공격수’ 역을 자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대선후보는 검증을 받아야 하며 오랫동안 검증을 위해 준비했다.

친구의 주군인 이 전 시장을 조준한 뼈 있는 말이다.

유 의원이 던진 ‘창’은 이 전 시장 내부를 크게 위협했다. 보고 있던 정 의원이 ‘방패’를 들고 나섰다.

“지지도가 검증의 결과이고 성적표다.”

역시 친구의 주군인 박 전 대표의 뒤처진 지지율을 겨냥한 말이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신경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승민이는 담백하다. 성격이 직설적이다. 그는 정치인이 아니라 정책 전문가다.”

평가 뒤에 숨은 가시도 은근히 흘린다.

“직선적인 성격은 모시는 사람에게 도움이 안 된다. 자기주장을 죽여야 하는데, ‘친구’는 그게 잘 안 된다.”

피할 수 없는 싸움 앞에 선 두 친구의 얼굴에 잔잔한 긴장감이 맴돈다.




주간동아 2007.02.06 572호 (p16~19)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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