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2

2007.02.06

토공, 남포공단도 착공하나

주간동아, 남북경협 보고서 입수 분석 … 포스트 개성 준비, 북한 도시별 개발안 제시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7-01-31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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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태도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기 때문일까. 1월24일 취임 후 처음 개성공단을 방문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얼굴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북측 인사들은 남측 방문단 앞에서 유화적 제스처를 잇따라 취했다.

    “기반시설이 다 돼 있으므로 공장만 게따라(함께) 오면 된다.”(주동찬·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장)

    북한은 이 장관의 개성 방문에 앞서 4차례의 성명과 담화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과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 활성화를 촉구했다. 북한이 미국과의 긴장 완화→남북관계 회복→대북 지원 재개→경제 실리 획득의 절차를 밟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연관?



    개성에서의 부드러운 분위기와 맞물려 정치권에선 남북정상회담 추진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남북 간 제3국 비밀접촉설, 특사 교환 임박설이 제기되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인사가 북측 고위관계자를 만난 정황이 일부 포착되기도 했다.

    남북정상회담은 언론과 여론의 시선 때문에 과거의 방식(대가로 현금을 지급하는 등)으로 이뤄지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구린내를 풍기지 않으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회담테이블로 끌어낼 묘안이 과연 있을까.

    북한의 현금 창구인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사업은 한국의 주요 협상카드다. 따라서 개성공단 건설 사업의 속도 조절 및 금강산 관광 중단은 채찍이 될 수 있으며, 역으로 남북경협 확대는 북한을 유인하는 당근 구실을 할 수 있다.

    남북 간 경협 확대와 관련해 한국토지공사(이하 토지공사)가 제2 개성공단 준비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토지공사가 북한의 도시를 대상으로 △도시 기반시설 조사 △발전 잠재력 조사 △도시별 인프라 확충 방안 △도시별 개발 전략 등을 집중 연구한 것. 제2 개성공단은 북한 처지에서는 큰 선물이다.

    토지공사는 국방부와 국정원으로부터 ‘대외비 자료’ 등을 제공받아 10개월여 동안 연구를 진행한 뒤 지난해 12월 남북경협과 관련한 최종보고서 초안을 작성했다. 국방부와 국정원이 대외비 자료를 토지공사에 제공한 것은 ‘제2 개성공단 후보도시 연구’에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었다는 뜻이다.

    ‘주간동아’가 단독입수한 토지공사의 남북경협 관련 대외비 보고서에 따르면 토지공사는 각 도시별로 철도, 도로, 항만, 노동력 숙련도, 시장성 등을 분석한 뒤 포스트 개성공단 입지에 대한 ‘잠재력 점수’를 매겼다. 남포(24점)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신의주(20점), 함흥(20점), 원산(18점), 해주(16점), 나진·선봉(15점)이 뒤를 이었다.

    보고서는 또 “천혜 자연을 이용한 관광산업을 북한에 활성화하는 것도 북한 경제 회복에 크게 도움이 되리라 판단된다”면서 관광사업 잠재력도 도시별로 점수를 매겼다. 6개 지역 중 원산과 남포가 각각 10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해주(9점), 나진·선봉(8점), 신의주(6점), 함흥(5점)은 상대적으로 점수가 낮았다.

    A4 용지 160여 쪽에 달하는 보고서는 △연구의 개요(1장) △북한의 SOC(2장) △주요 도시별 현황 분석(3장) △도시별 기반시설 개발 과제(4장) △북한 주요 도시별 개발 전략(5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보고서는 ‘연구의 개요’에서 “개성공단 이후의 개발에 대한 체계적 준비가 필요하다”면서 연구의 목적이 ‘포스트 개성공단’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보고서는 2장 ‘북한의 SOC’를 통해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수자원, 전력 등을 꼼꼼하게 분석한 뒤, 3장 ‘주요 도시별 현황 분석’에서 각 도시별로 도로·항만·공항 등 인프라 수준과 노동력 형태, 공장 분포 등 산업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다. 2장과 3장의 분석에서는 고해상도 인공위성 사진 등이 이용됐다. 4장 ‘도시별 기반시설 개발 과제’에서는 도시별로 발전 잠재력을 다면평가 방식으로 조사한 뒤 인프라 확충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경협 확대는 양날의 칼

    또한 보고서는 “해주항의 확장 및 개선 비용은 3000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해주), “별도의 화력발전소 건설이 필요하다”(신의주), “금강산과 연계한 관광특구로 개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원산) 등 개발 시의 과제를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5장 ‘북한 주요 도시별 개발 전략’이다. 4장에서 각 도시를 ‘강점’ ‘기회’ ‘약점’ ‘위협’(SWOT 분석)으로 나눠 다면평가한 결과를 바탕으로, 6개 지역의 개발 전략을 제기한 것. 이에 대해 보고서는 “남포는 중국과 남한의 기업투자 유치” “원산-금강산 관광벨트로의 일본인 관광객 유치” 등 각 도시별로 개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보고서와 관련해 토지공사의 한 관계자는 “토지공사 내부용으로 작성했다고만 이해해달라. 보고서를 대외비로 한 것은 국정원의 대외비 자료 등이 보고서에 담겨 있기 때문이지, 남북정상회담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정원과 국방부가 토지공사의 내부 보고서용으로 대외비 자료를 내줬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시혜성 지원 성격이 강한 금강산 관광은 모르겠으되, 북한이 경제적으로 한국에 의존하게끔 만드는 개성공단 형식의 경협은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이 없지 않다. 남북경협의 확대가 당근과 채찍이라는 양날의 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 물론 “현 정부처럼 당근만 줘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또한 남북 간 경협이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정치적으로 이용돼서도 안 된다.

    이 장관은 개성에서 밝은 얼굴로 “개성공단 사업은 통일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장관의 미소는 북한의 돌발행동으로 언제든 일그러질 수 있다. 북한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이 장관과 함께 개성을 방문한 직후 현대의 뒤통수를 치기도 했다. 어쨌거나 남북정상회담 추진설이 나도는 가운데 ‘개성공단 이후의 개성공단 사업’이 물밑에서 준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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