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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죽어도 노조 이길 수 없는 이유

땜질 처방 관행 굳어지고 노조 대의원 ‘생산량’ 무기로 임원 목줄 죄

  • 나성엽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cpu@donga.com

현대차가 죽어도 노조 이길 수 없는 이유

현대차가 죽어도 노조 이길 수 없는 이유
연초부터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노조가 성과급 지급 문제로 파업을 벌였다. 해마다 계속돼온 노사 갈등이 새해 초부터 재연되자 여론은 현대차 노조를 집중 비판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회사 측 책임도 크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노동연구원 조성재 연구위원은 “현대차 사측은 노조를 대하는 데 있어 인간관이나 철학이 없다”고 꼬집었다.

현대차가 왜 이렇게 됐을까. 첫째, 땜질식 처방을 계속해오다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을 받는다. 회사 측은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20년간 이렇다 할 노무관리 매뉴얼 없이 그때그때 터진 현안을 서둘러 막는 데 급급했다는 것. 멀리 갈 것도 없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월17일의 노사협상 타결이다. 회사 측은 ‘지난해에 채우지 못한 목표 생산량을 채울 경우’라는 단서는 달았지만 성과급 50%를 추가 지급하겠다며 물러섰다. 노조는 이를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측 투명성 부족도 ‘약점’

원칙적으로 따지면 노조의 요구는 파업의 명분이 될 수 없는 사안이다. “미지급된 성과급 50%를 달라”는 게 노조의 요구였기 때문. 회사 측은 ‘목표 생산량을 초과 달성하면 150%, 100% 달성하면 100%, 달성하지 못하면 50%를 지급하겠다’고 문서상으로 못 박았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회사는 관행적으로 생산량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성과급을 100% 지급해왔다. 성과급뿐 아니라 다른 부문에서도 이런 식이었다. 협상에 ‘협조적으로’ 응하기만 해도 노조원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고 특별휴가까지 줬다.

둘째, 회사 내에 팽배한 ‘생산량 지상주의’가 오히려 회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회사 측은 목표 생산량 달성 여부를 공장장 등 임원의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컨베이어벨트 주위에 서서 조업이 이뤄지는 자동차 산업의 특성상, 수십명만 작업을 중단해도 공장 전체가 서게 돼 있다.



현대차의 경우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작업자들은 현장 대의원들과 상의해 라인을 멈출 수 있다. 그 상태에서 공장장에게 불안 요인을 제거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결국 대의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라인을 세울 수 있는 것. 이에 반해 회사 측은 생산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해당 임원을 즉시 인사조치해 왔다. 결국 노조 대의원들이 컨베이어벨트를 무기 삼아 공장장이나 임원들 목줄을 쥐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가 죽어도 노조 이길 수 없는 이유

1월17일 오전 11시경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협상 타결’ 소식에 환호하는 노조원들.

셋째, 그동안 노사협상 과정에서 회사 측은 사실상 노조원들에 대한 인사권마저 노조에 넘겨주는 등 스스로 경영권을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간부와 임원들이 부하 직원들에게 부여하는 평가등급은 승진이나 임금, 보너스 액수 산정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 노조원들은 오로지 연차에 의해서만 승급되고 임금이 인상된다. 인사고과는 일반 직원 중에서 조장이나 반장을 뽑을 때 참고자료 정도로만 사용된다.

10여 년 전부터는 노조의 요구로 명찰에서 직급 표시도 사라졌다. 지금 현대차 임직원들은 직급 고하를 막론하고 얼굴 사진 옆에 이름만 쓰인 명찰을 달고 다닌다. 입사 15년차의 사무직 차장은 “예전에는 공장 내에서 서로 모르는 사이여도 현장직과 사무직이 명찰을 보고 인사 정도는 건넸지만, 지금은 그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한다”고 말했다.

그 정도는 오히려 점잖은 편에 속한다. 지난해 가을, 한 공장 사무실에서는 30대 후반 직원과 상무급 임원 간의 작은 다툼이 있었다. 노조 대의원인 이 직원이 사무실 바닥에 침을 뱉자 임원이 “자기 집 안방이어도 침을 뱉겠느냐”며 나무랐다고 한다. 이에 이 직원은 “상무님은 우리 집 안방에 왜 신발을 신고 들어왔습니까”라며 되받았다는 것. 조직 내 기강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넷째,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으로 ‘투명성’ 부족을 들고 있다. 1월16일 이헌구 전 현대차 노조위원장이 파업 철회 등의 대가로 회사 측으로부터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금품을 제공한 회사 측이나 이를 받은 노조위원장 모두 한통속이었던 셈이다. 한 노조원은 “막말로 회사 측이 꿀릴 게 없다면 왜 뒷돈을 주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 간부는 “검찰 수사 결과로 확인된 뒷돈만 이 정도고, 증거 없이 오간 금품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현대차 비자금 수사 당시 회사 관계자들은 검찰 조사에서 “노무관리를 위해 불가피하게 비자금을 일부 조성하고 있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노조 집행부에 대한 임원들의 술 접대 등도 투명한 노사관리비 지출이라고 보기 힘든 부분이다.

무원칙 노무관리가 공룡 노조 키운 셈

다섯째, 회사 측의 무원칙한 노무관리로 노조가 공룡처럼 비대해져 회사조차 쉽게 컨트롤할 수 없게 됐다. 회사가 쩔쩔매는 사이에 노조 활동을 하는 직원 수는 2000여 명으로 늘었고, 막강한 힘을 가진 노조 집행부를 장악하려는 30개 가까운 파벌이 생겨났다.

물론 1987년 민주화 이후 출범한 노조가 긍정적인 역할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회사 측 관리자들이 군홧발로 차고 바리캉으로 머리를 미는 일은 없어졌다. 또 아무런 보상 없이 ‘점심시간에 일하기 운동’ 등에 일방적으로 동원되는 일도 사라졌다.

그러나 노조가 공룡이 되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매년 걷히는 조합비 70억원과 100억원 가까운 예금의 집행권 등이 노조집행부의 특권으로 변해갔다. 심지어 노조집행부가 뒷돈을 받고 직원 채용에 간여한 것으로 드러났을 뿐 아니라 기념품 납품을 둘러싸고도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최근 들어 현대차 근로자 사이에서도 노조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늘고 있다. 현대차 일반 노조원들은 대의원들을 ‘빨간 조끼’라고 부른다. 대의원들에게만 착용이 허락된 빨간 조끼를 입으면 출퇴근 시 정문에서 신분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자기 돈으로 식권을 구입해야 이용할 수 있는 구내식당에서 ‘빨간 조끼’는 식권 대용이 되기도 한다. “노조 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 작업시간에 자리를 비워도 다른 동료들이 일을 대신 해주기 때문에 잔업 특근수당이 지급된다.

현대차 주변에선 “이미 20년 동안 이런 생활을 반복해 타성에 젖었기 때문에 현대차와 현대차 노조는 앞으로도 변할 수 없고, 구조적으로 개선될 여지도 없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과연 그럴까.

국내에선 현대차 못지않게 생산량을 중요시해온 GS칼텍스의 노사관계가 변했다. 또한 ‘강성 노조’의 대명사였던 미국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들의 노사관계도 급변하고 있다. 현대차 노사만 여전히 20세기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주간동아 571호 (p40~41)

나성엽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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