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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새 총독 ‘한바탕 회오리’

흑인 난민 출신 여성 미카엘 장 논란 속 취임 … 퀘벡 분리주의 두둔 등 정치 신념 도마에

  •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facebok@hotmail.com

캐나다 새 총독 ‘한바탕 회오리’

캐나다의 공직자 중에서 직위가 가장 높은 사람은 총독이다. 국가원수(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리자 구실을 하는 총독은 영국에서의 왕과 마찬가지로 실권은 없고 의례적인 기능만 하지만 공직 서열로는 연방총리의 윗자리다. 실권이 없다고 해서 이 자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입헌군주제가 존속하는 한 총독은 국가의 통합성과 영속성의 상징으로서 국민이 널리 존경할 만한 사람이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9월 말 새로운 총독이 취임했다. 48세의 여성 미카엘 장이 그 주인공이다. 아이티 태생의 그는 흑인으로선 처음으로 캐나다 총독이 됐다. 그는 1970년대 뒤발리에가 독재를 펴던 고국을 떠나 캐나다의 퀘벡 주에 정착했다. 아이티를 비롯해 프랑스어권 출신 이민자들은 캐나다로 올 경우 보통 프랑스어가 주 언어인 퀘벡에 정착한다. 장은 퀘벡의 캐나다 공영방송 CBC의 프랑스어 방송 기자 겸 앵커로 활약했던 엘리트다.

전력 관련 집권당에서도 문제 제기

그런데 8월 초 총독 인선이 발표된 뒤 그가 캐나다 국가 합의를 반대하는 퀘벡 분리주의자이거나 최소한 과거에는 그 이념에 적극 동조했다는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논란이 말끔히 정리되지 않은 채 그는 총독직에 올랐다.

캐나다인들은 장 총독의 취임을 의외라고 생각한다. 그의 표면적인 신상 요소, 즉 흑인·여성·이민자·젊은 나이 등 때문이 아니다. 역대 캐나다 총독 중에는 여성이 두 명이나 있었고 전임자였던 에이드리엔 클라크슨 역시 여성이자 홍콩 태생의 소수인종이었다. 또 장 총독은 최연소도 아니다. 바로 그의 정치적 신념이 총독의 지위에 합당한가 하는 점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퀘벡의 분리독립 움직임과 이를 제어해 나라가 갈라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당위성은 우리나라에서의 남북통일에 견줄 만큼 거대한 담론이자 가장 골치 아픈 정치 현안이다.



차기 총독 인선 발표 직후 1991년 퀘벡에서 방영된 한 다큐멘터리에서 장 총독이 퀘벡 분리주의를 두둔하는 발언을 하고 과격 분리주의자들과 함께 “피지배는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며 건배하는 장면이 공개됐다. 이 프로그램은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섬 마르티니크에서 산 한 저항시인의 생애와 그의 활동이 퀘벡 분리주의에 미친 영향을 다룬 것으로, 장 총독의 남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장 다니엘 리퐁이 제작했다.

캐나다 총독은 원래 영국 왕실이 영국인 거물 정치인이나 고위 군인 등 중에서 뽑아 파견했으나, 캐나다가 사실상 완전 독립국이 되면서 1950년대부터 캐나다 연방총리가 캐나다인 중에서 골라 영국에 천거하는 형식으로 임명되고 있다. 임기는 5년. 캐나다인 중 영어권 출신과 프랑스어권 출신이 번갈아 취임하는 것이 관례다. 프랑스어권 차례인 이번에 장 총독이 임명된 것이다. 퀘벡의 지식인 계층이 거의 그렇듯 그는 영어도 유창하게 구사한다.

장 총독의 전력과 관련된 기사가 연일 보도되면서 캐나다의 언론이 들끓었고, 야당은 물론 집권당 내부에서조차 인선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됐다. 한 지방 신문은 사설을 통해 “이번 인선은 마치 미국 정부가 테러대책 담당 연방부처 책임자 자리에 오사마 빈 라덴을 앉힌 것과 같다”고 비꼬기도 했다. 퀘벡 내의 분리주의 진영에서도 적절치 못한 인사라는 비난이 나왔다.

이렇듯 여론이 악화되자 장 총독 내정자는 짤막한 해명서를 냈다. 하지만 문제의 발언들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단지 자신과 남편은 분리주의 활동을 한 적이 없고 자랑스런 캐나다인으로서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실질적 임명권자인 폴 마틴 연방총리도 국가에 대한 장 총독의 충성심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장 총독의 해명을 놓고 한 칼럼니스트는 “이 팀 저 팀 옮겨다니는 프로 운동선수가 현재의 소속 팀이 정녕 뛰고 싶었던 팀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공허하다”고 꼬집었다.

영국에 대한 향수 입헌군주제 굳건

퀘벡 분리주의 이념 외에도 장 총독의 정치관에 대해 의심할 만한 소지들이 더 있다. 캐나다인들이 중요한 국가 가치관으로 여기는 다문화주의에 대해서도 그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총독에 내정되기 불과 몇 달 전인 올해 4월 한 간담회에서 그는 “시민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함께 사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다문화주의는 각 문화 집단별로 폐쇄된 게토를 형성해 따로 사는 것을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주로 우파 성향의 사람들이 다문화주의에 대해 장 총독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각 문화 집단이 어느 정도의 게토 성향을 띤다고 해도 이를 다양성으로 여기고 수용하는 것이 전면 부인하는 것보다 나라를 위해 좋다는 가치관이 광범위한 토론 끝에 자리 잡았다. 그가 가난한 나라의 난민으로 이민 와 30여년 만에 총독의 지위에 오르게 된 것도 다문화주의의 바탕 덕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견해는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아마 장 총독이 퀘벡의 주류 사회(프랑스어계 백인 사회)에서 아직도 강한 파워를 행사하는 분리주의에 합류하려 절실하게 노력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다문화주의를 비판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또 장은 총독 내정 당시 캐나다 국적 외에 프랑스 국적도 갖고 있다가 곧바로 포기했다. 남편이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배우자로서 같은 자격을 얻은 것은 합법이고 또 뭐라 할 수도 없지만 국적이 하나인 경우에 비해 충성심이 옅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캐나다 총독은, 형식적인 권한이긴 하나 군 통수권자다.

여론의 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긴 했지만 총독의 자격에 대해 ‘센’ 발언권을 지닌 ‘군주제 지지자 연맹(Monarchist League of Canada)’의 대표가 그의 해명을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장은 취임식을 마쳤다.

이번 취임 과정에서의 논란은 독립국이면서 다른 나라에 상주하는 군주를 국가원수로 삼아 굳이 그 대리자를 둬야 하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일으킬 만도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물론 캐나다에는 군주제 폐지론자의 세력이 상당하다. 하지만 주류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어머니 나라’인 영국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이웃의 강대국인 미국과의 차별을 위해서라도 캐나다의 ‘골동품’적인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것들이 아직까지 캐나다에 입헌군주제가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유다.



주간동아 2005.10.25 507호 (p72~73)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facebo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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