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커버스토리|조류독감 공포

87년 만에 밝혀진 ‘학살자’

역사상 최악 스페인 독감은 인수(人獸)공통 전염병 … 급속 진행 조류독감 또 다른 재앙 예고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87년 만에 밝혀진 ‘학살자’

  • 조류독감의 인간 전염병으로의 전환, 그리고 세계적 대유행 가능성은 조류독감과 스페인 독감과의 유사성이 밝혀짐으로써 더욱 현실화돼가고 있다. 도대체 스페인 독감은 어떤 전염병이었고, 이는 조류독감과 어떻게 관계 지어질까. 스페인 독감과 홍콩 독감, 현재의 조류독감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재구성해봤다.-편집자 주
87년 만에 밝혀진 ‘학살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자 군인들이 마스크를 쓰고 행진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 2월. 중립국 스페인의 관광지였던 산세바스티안에 독감이 찾아왔다. 몸에 열이 오르고 몸살과 두통이 생기는 이 질병에 대해 사람들은 그저 전염력이 심각한 감기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로부터 두 달 후 스페인에서는 알폰소 13세까지 포함해 800만명이 독감에 걸렸고, 수도 마드리드 시민의 3분의 1이 독감에 감염돼 정부 청사의 업무가 마비되고 전차 운행이 중단됐다. 거의 동시에 독일로 진군하던 미국 군대에도 이 독감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때까지 사람들은 이 독감의 무서움을 알지 못했다.

1918년 무방비 상태서 감염 2천만~1억명 사망

그로부터 5개월 후인 1918년 8월 독감은 ‘살인자’가 돼서 돌아왔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인도, 동남아시아, 일본, 중국, 카리브해 연안의 상당 부분,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일부 지역에서 사망자가 속출했다. 고열에 헛소리를 하다 호흡이 곤란해지면서 혼수상태에 이르는 데 단 몇 시간에서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첫 희생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군인들이었다. 각 부대에는 전장에서 죽는 병사보다 독감으로 죽는 병사들이 더 많았다. 감염자들 중 많은 수가 오한, 열, 근육통 등 일반적인 독감 증세를 보이다 며칠 안에 손상된 허파에 병원체가 침입하면서 폐렴 증세로 사망했다. 폐 안에 물과 피가 가득 차면서 발과 사람들의 얼굴은 이내 시꺼멓게 변해갔다. 자신의 몸속에서 나온 액체에 익사한 셈이다. 병상이 모자라 학교가 병원으로 변하고, 거리에는 시체가 쌓여갔다. 상점에는 불이 꺼지고, 거리는 한산해져 갔다.

87년 만에 밝혀진 ‘학살자’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알래스카 공동무덤에서 채취하고 있는 요한 V 훌틴 박사.

알래스카에서도 희생자가 나왔다. 알래스카 수어드반도의 동토 지역인 텔러루더 마을(현재 브레비그)에서는 성인 51명 중 46명이 사망했다. 이들은 모두 차디찬 얼음 속에 묻혔는데, 그중 한 여인의 시체만이 썩지 않고 80년을 견뎌냈다. 그녀를 죽인 병원체와 함께.

의학자, 병리학자, 생물학자 그 누구도 이 병원체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 그들에겐 바이러스를 발견할 전자현미경도 없었고, 바이러스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흑사병을 일으킨 것과 비슷한 세균일 것이라는 추측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가 되자 적게는 2000만명, 많게는 1억명을 살상한 ‘스페인 독감’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도대체 얼마가 죽었는지도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그 끔찍한 사건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다.



그로부터 69년 후인 1997년 IMF 구제금융 태풍이 동아시아를 강타하던 즈음, 홍콩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조류를 만지거나 접한 사람들이 스페인 독감 때와 비슷한 증상으로 숨졌다. 5월 폐렴 증세를 보인 한 어린이의 사망으로 시작된 독감파동은 11월과 12월 17명의 환자를 발생시켰고, 그중 6명이 사망했다. 의·과학자들이 밝혀낸 바이러스는 ‘H5N1’. 전 세계 과학자들은 깜짝 놀랐다. 우리가 익히 아는 A형 독감의 일종이지만, 그동안 사람에게는 옮기지 않고 조류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된 것이다. 사람에게 전염되면 자신의 성질을 바꿔가며 변이하는 독감 바이러스의 성격상 이는 인간 대 인간의 전염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상황. 예방백신을 맞는 것 외엔 치료제가 없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독감의 특성상 이 치명적 독감의 ‘대유행(대륙 간 전염병, 팬데믹)’은 곧 스페인 독감의 재현을 의미했다. H5N1은 새로 발견된 바이러스였고, 또 사람에게 전염된 역사도 없기 때문에 당연히 예방백신이나 치료제가 있을 수 없었다. 홍콩 정부는 단 3일 만에 홍콩에 있는 모든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이 끔찍한 바이러스의 공포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IMF 파동에 묻혀 또 한번 잊혀졌다.

하지만 2003년 2월,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홍콩을 다시 찾아왔다. 2005년 중국 남부를 여행하고 온 가족 2명이 감염돼 그중 한 명이 사망한 것. 이후 2005년 10월 현재까지 베트남 41명, 태국 12명, 캄보디아 4명, 인도네시아 3명 등 총 60명이 조류독감에 감염돼 사망했다. 총 감염 환자 116명. 즉 감염 환자 절반 이상이 사망한 셈이다. 감염자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국내에서도 조류독감은 2003년 12월과 2004년 2월 찾아와 닭 50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중요한 점은 사망자 수도, 조류독감으로 살처분된 닭의 숫자도 아니다. 조류독감의 전파 속도가 너무나 빠르고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조류독감은 올해 7월 들어서 중국 티베트와 몽골, 카자흐스탄, 러시아 시베리아, 유럽의 터키에까지 퍼져나갔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조류독감의 대륙 간 전파의 주범으로 철새를 지목했다. 인도네시아는 33개주 중 22개주에 조류독감이 확대됐으며, 가금류 100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조류독감의 위협이 현실화된 것은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 알래스카의 얼음 속에서 죽었던 에스키모 여인의 허파가 실마리가 됐다. 시체가 냉동 상태에서 썩지 않고 있었던 까닭에 허파에 붙은 바이러스의 유전자 배열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허파에서 바이러스 조직을 떼어낸 주인공은 미국의 요한 V 훌틴이라는 병리학자였다. 그는 이미 1951년 한 차례 그녀의 허파에서 바이러스 조직을 떼냈지만 당시 과학의 한계로 정체를 밝히는 데 실패했다. 이는 곧 그만이 아는 비밀이 됐다. 그 후 47년이 흐른 1998년 그는 미 국립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 미군병리학연구소 연구원이자,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던 제프리 토벤버거 박사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썼다. 자신이 스페인 독감의 바이러스를 찾아주겠노라고. 일흔두 살의 훌틴 박사는 끝내 그 약속을 지켰다. 노구를 이끌고 알래스카까지 직접 가 에스키모 여인의 허파 조직을 다시 떼어낸 것. 그리고 이는 즉시 토벤버거 박사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87년 동안 냉동돼 있던 바이러스의 복원 작업은 그리 쉽지 않았다. 오랜 작업 끝에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8개 유전자 배열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한 토벤버거 박사는 이를 뉴욕의 마운트시나이대학 의대 피터 팔레스 박사팀에게 넘겼고, 그는 이를 토대로 유전자를 다시 만들어 CDC로 보냈다.

87년 만에 밝혀진 ‘학살자’

1997년 홍콩 조류독감에 감염된 베트남 소년에게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고 있는 의료진.

CDC는 새로 만들어진 유전자를 인간 신장세포에 넣어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생명을 얻은 바이러스는 실험에서 생쥐들을 3~6일 만에 죽이는 괴력을 발휘했다. 87년 만에 깨어난 바이러스는 4일 만에

3만9000배로 늘어나며 그 존재를 일깨웠다. 이 바이러스는 닭도 죽였다. 스페인 독감이 조류와 인간을 함께 죽일 수 있는 인수공통 전염병이었으며, 이는 조류독감과 거의 유사한 성질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CDC는 이러한 사실을 10월7일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발표했다.

87년 동안 정체를 감추고 지냈던 ‘대량 학살자’의 정체가 드디어 밝혀지는 순간이었지만, 인류에게는 또 다른 대재앙을 예고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주간동아 2005.10.25 507호 (p22~24)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7

제 1217호

2019.12.06

아이돌 카페 팝업스토어 탐방기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