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2

2016.11.09

커버스토리 | 박근혜의 착각

그들이 하야를 원하는 까닭

‘최순실 게이트’는 국민주권 침해…국민적 수치심과 분노 유발

  •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mojjo3@naver.com

    입력2016-11-04 17: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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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 게이트가 알려진 직후 한겨레-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10월 25〜26일)에서 ‘대통령 직접 사과 외, 청와대 개편 및 내각 사퇴 등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68%에 달했지만, 여론은 이에 그치지 않고 대통령 탄핵과 하야로 번지기 시작했다.

    미디어오늘-STI가 실시한 여론조사(10월 26일)에선 대통령 ‘탄핵’과 ‘하야’의 두 여론이 합계 69%에 달했다. 같은 날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에선 대통령 ‘하야 또는 탄핵’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42%로 나타났고, 문화일보-엠브레인 여론조사(10월 29〜30일)에서도 ‘탄핵’과 ‘하야’ 여론이 총 48%였다.

    조사기관과 언론의 설문 문항 설계에서 미세하긴 하지만, 또 한 차례 여론 변화의 징후를 감지할 수 있었다. 탄핵 관련 질문이 없어지고, 하야에 대한 여론 파악이 시작된 것이다. 내일신문-디오피니언 여론조사(10월 31일)에서 대통령 하야 의견에 동의하는 여론이 67%였다. 데일리안-알앤써치 여론조사(11월 1일)도 탄핵을 묻는 질문은 없고, 하야에 대해서만 물었다.

    최순실 게이트 같은 사건은 정권마다 있었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대통령 하야 여론이 형성된 것은 아니다. 최순실 게이트는 이전 정권에서 벌어진 권력형 비리 의혹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국민주권 침해한 공공의 적

    2002년 개봉한 ‘공공의 적’. 이 영화는 많은 사랑을 받으며 ‘공공의 적2’ ‘강철중 : 공공의 적1-1’ 시리즈로 이어졌다. 영화 첫 편에서 강철중 형사(설경구 분)가 폭력배들에게 구타당하는 재래시장 상인을 목격하고 이들을 혼내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강철중 형사가 폭력배들에게 말한다. “깍두기는 깍두기 세계에서 산다. 깍두기는 민간인 세계로 절대 넘어오지 않는다.”

    최순실 씨는 깍두기 세계에서 민간인 세계로 발을 디딘 최초 권력형 비리의 주인공이다. 보통 제대로 된(?) 깍두기는 민간인 세계로 넘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최씨는 민간인 세계에 발을 디뎠다. 그는 대통령을 등에 업고 재단을 통해 기업으로부터 돈을 챙긴 혐의뿐 아니라, 대통령과 정부 정책을 휘둘렀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여론은 권력형 비리를 넘어 국정농단으로 국민주권을 침해한 최씨와 이를 용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 대통령 하야를 원하지만, 이것이 낡은 국가 시스템의 문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대통령 하야 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개헌 목소리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국갤럽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6월 개헌 필요 여론은 46%였지만, 10월 말 54%로 증가했다. 한겨레-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개헌 주장에 진정성이 없다’(67%)는 비판 여론에도, 다른 질문에서는 개헌 시기에 대한 생각만 다를 뿐 76%가 개헌 필요성에 공감했다. 문화일보-엠브레인 여론조사에서도 ‘개헌이 필요 없다’는 여론이 11%(잘 모름 5%)였고, 나머지 84%는 개헌 시기에 대한 입장 차만 있을 뿐 개헌에는 공감했다.

    여론은 정권 말기면 찾아오는 권력형 비리가 대통령 개인의 문제일 뿐 아니라, 누가 집권하든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로 개헌한 후 30년이 흘렀고 민주주의는 한층 성숙했지만, ‘체육관대통령’에서 ‘제왕적대통령’으로 수식어가 바뀐 것은 30년 전 만들어놓은 국가 시스템이 낡아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주범과 공범의 범죄 사실은 대체로 주범의 힘이 빠질 때 드러난다. 또 주범과 공범의 힘은 반비례의 시간적 흐름을 갖는다. 주범의 힘이 셀 때 공범은 숨죽인 채 가만히 있지만, 반대로 공범의 힘이 세질 때 주범이 모든 범죄 사실을 뒤집어쓴다. 이 같은 패턴이 계속 반복돼왔다.



    주범은 박근혜-최순실, 공범은 낡은 시스템

    낡은 시스템. 이러한 낡은 시스템을 받치는 것은 정당과 언론, 검찰과 대기업, 그리고 종교다. 새누리당 의원 다수는 최순실 게이트를 2012년 대통령선거(대선) 전부터 걱정했을 것이다. 언론도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 동안 의혹을 감추고 있었을 테다. 검찰 또한 국정농단의 난맥상을 최소한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의 발언으로 감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대기업은 최순실 씨의 부당한 요구에 응하며 그를 세무와 관련된 정부 로비 창구로 활용했을 수 있다. 종교는 기도하면 사업이 잘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경제적 성취 도구로 정착한 지 오래다. 이쯤 되면 한국 사회에 문제가 아닌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0월 2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집회는 예상보다 많은 시민이 참여했고 두세 번 경찰과 대치했지만, 여느 집회보다 이성적이고 차분해 보였다. 이제는 대통령의 잘못은 물론이고, 그 주변에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공범이 존재한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정운영 지지율이 시간이 갈수록 하락하는 것은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불가피한 숙명으로 보인다. 국정운영 사이사이 지지율은 대형사고, 남북문제, 경제상황, 정책 추진 등의 과정에서 등락을 거듭하며 하락한다. 지지율 하락의 화룡점정은 언제나 정권 말기 여권 내부에서 시작된다.   

    1992년 당시 민주자유당(민자당) 김영삼 대표는 관권선거 의혹을 받고 있던 노태우 대통령에게 개각을 요구했고, 노 대통령은 민자당을 탈당했다. 당시 국정운영 지지율은 반 토막이 나며 12%로 곤두박질쳤다. 97년 당시 신한국당 이회창 대선후보가 ‘3김 청산’을 선언하고 나오자 김영삼 대통령은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어김없이 국정운영 지지율은 8%로 떨어졌다. 반면 두 대통령의 탈당은 당시 집권당이던 민자당과 신한국당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현재 새누리당 지지율과 탈당을 고려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동반하락하고 있다.

    대선은 과거를 평가하는 선거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선거다. 이것도 늘 그래왔던 사실이다.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2017년 12월 제19대 대통령을 선출한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 여론은 최순실 게이트의 주범보다 공범인 낡은 시스템에 대해 그 어느 대선 때보다 높은 관심을 보일 개연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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