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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이 만난 영화, 영화인|‘거칠마루’ 장태식

‘이소룡 키드’에서 ‘태껸맨’으로

‘이소룡 키드’에서 ‘태껸맨’으로

‘이소룡 키드’에서 ‘태껸맨’으로

‘거칠마루’의 주인공이며 무술감독인 장태식은 현직 태껸 사범이다.

무협소설을 읽고 무협영화를 보며 자란 이소룡 세대라면,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무림의 고수를 찾아 길 떠나고 싶은 생각을 잠시라도 가져봤을 것이다. 실제로 내 중학 동창 중에는 무림고수를 찾겠다고 가출한 친구도 있었다. 무림비급을 구해 동굴이나 깊은 산 속 암자에서 열심히 무공을 수련해서, 초절정의 무예를 갖춘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겠다는 목표가 절대 황당한 것은 아니다. 무협의 세계 속에서 악인은 반드시 패하게 되어 있고 선인은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승리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술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치열한 자기연마의 과정이 필요하다.

‘거칠마루’의 주인공이며 무술감독인 장태식은 이소룡 키드다. 현재 태껸도장에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는 태껸 사범이다. 그가 전북대 철학과를 지망한 이유는 오직 하나, 이소룡이 철학과(워싱턴주립대)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장태식은 대학시절 부전공으로 심리학을 공부했다. 왜냐하면 무술을 하는 사람은 상대의 심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부터 무술 전문배우가 되고 싶었다. 이소룡처럼.

합기도·쿵후·권투 등 섭렵한 무술전문 배우

그러나 지금은 이소룡 시대와는 다르다. 이소룡이 카리스마 있는 독창적 무술을 선보였다면, 그 뒤에 등장한 성룡은 아크로바틱한 무예를 보여주었고, 리롄제(이연걸)는 소림무예를 바탕으로 다양한 무기를 다루는 화려한 무술을 선보였다. ‘옹박’의 토니 자는 힘과 기교를 갖추고 등장한 무술배우다. 장태식의 목표는 태껸 하는 브루스 리다. 그의 영원한 우상인 이소룡의 카리스마 있는 무예에, 동양적 멋과 흥이 넘치는 태껸을 접목시킨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공중에서 돌고 뛰는 아크로바틱한 기예는 중국을 따라갈 수 없지만, 한국에는 한옥처럼 소박하고 유려한 멋이 있는 태껸이 있다.

전북 남원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주에서 자취를 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장태식은 합기도, 태권도, 쿵후 등 다양한 무예와 접했다. 당시 전주에는 이소룡의 절권도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절권도와 가장 비슷하다는 권투를 배웠다. 그리고 라이트헤비급 전라북도 대표까지 했지만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가 무술 전문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군대생활을 하면서였다. 제대하고 그는 결련택견협회를 찾아갔다. 1997년이었다.



2000년 KBS 2TV의 ‘인간극장’에 방영된 ‘무림일기’를 보던 김진성 감독은, 전국 방방곡곡에 숨어 있는 고수를 찾아다니는 무술인들의 이야기를 보고 흥미를 느낀다. 그러나 김 감독의 데뷔작은 이요원과 신하균이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 ‘서프라이즈’였다. 흥행에서 실패한 김 감독은 처음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무술인들의 이야기를 영화화할 것을 생각했다. 영화 ‘거칠마루’가 기획된 것은 그러니까 지금부터 5년 전이었으며, 첫 촬영이 시작된 것은 3년 전이었다.

‘이소룡 키드’에서 ‘태껸맨’으로

‘거칠마루’

감독 개인이 융자를 받아서 마련한 3500만원의 초저예산으로, 6mm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서 일주일 만에 촬영해 완성한 이 영화는, 개봉되기까지 더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후반작업에 대한 예산이 부족해서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2004년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일반 관객들 앞에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그리고 올해 5월, 전주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이 되었다. 거칠고 소박하지만, 최고의 고수를 찾기 위해 눈 덮인 산속을 헤매는 무술인들의 뜨거운 열기가 매끄럽게 포장된 어떤 영화보다도 강한 생명력을 관객에게 전해준 것이다.

인터넷과 무술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김 감독은 그것을 결합시켰다. ‘거칠마루’는 인터넷 무림 사이트인 ‘무림지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전설 속의 고수 거칠마루는 ‘무림지존’ 사이트의 무림고수 8명에게 초청장을 띄운다. 초청된 사람은 조직폭력배인 살인미소(경호원 출신의 합기도 4단 유지훈), 우슈 고수 철사장(전 여자부 우슈 장권 챔피언인 제주도 출신의 홍일점 오미정), 모히칸(현 국가대표 한국 우슈 챔피언 권민기), 마시마로(전 대학 씨름 헤비급 챔피언 김진명), 무사시66(전 무에타이 헤비급 챔피언, K-1 데뷔), 비트박스(전 무에타이 밴텀급 챔피언) 등이다. 모두 실제 무술인들이다. 천장지구 역의 성홍일만이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연극배우 출신이다.

‘거칠마루’에서 이들이 펼치는 무술은 스턴트 없고, 와이어 없고, 컴퓨터 그래픽 없다. 진짜다. 그러기에 공중제비를 돌며 멋지게 그림 같은 액션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거칠고 투박하다. 그러나 진정성이 있다. 대본을 먼저 만들어서 그대로 연기하며 찍은 게 아니라, 캐스팅을 하면서 실제 인물에 맞게 대본이 만들어졌고, 대본이 완성된 다음 날 촬영이 시작되었다. 서로 합을 맞추긴 했지만 실제 무림의 고수들이어서 영화 속의 액션은 진짜처럼 보인다.

“만약 내가 연기를 해서 장동건이나 배용준처럼 인기를 모을 수 있다고 해도 난 안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술배우다. 이소룡의 영화들처럼, 한국적 무예가 살아 있는 영화를 찍고 싶다.”

“전생엔 이소룡이 아니었을까”

‘거칠마루’ 일반 시사회가 끝나고 밤 11시 넘어 신사동의 카페에서 만난 장태식은, 무술인에 대한 선입관을 무너뜨릴 정도로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악수를 하는데, 그의 두툼한 손에서 강한, 그러나 부드러운 기가 흘러나왔다. 그는, 배우인데 무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술가인데 배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거칠마루’에서 주인공 청바지 역을 맡아 연기를 했고, 또 무술감독을 맡아 전체적인 액션을 짰다.

“너무 급하게 찍어서 아쉬웠다.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하며 영화를 찍었다. 아무리 힘들었다고 해도 한 달 정도 시간만 더 주어졌다면,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허리가 부러져도 열심히 했을 것이다.”

‘무림지존’ 사이트의 전설적인 고수 거칠마루는 자신이 초청한 8명 중에서 단 한 사람과 대결을 하겠다고 메시지를 보내온다. 8명의 고수들은 서로 일대일 대결을 펼쳐 마지막 남은 고수가 거칠마루와 대결을 하기로 한다. ‘거칠마루’의 엔딩신은 눈 덮인 산속에서 마지막 남은 두 명의 고수, 청바지와 살인미소가 대련을 벌이는 장면이다.

“그 장면은 3년 전에 처음 찍고, 두 번 더 보충 촬영을 했다. 올 2월 마지막으로 보충 촬영을 했는데, 그때 나는 운동하다가 허리를 다친 상태였다. 발차기는커녕 허리를 숙이지도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 감독님 친구 중에 척추치료 전문가가 있는데 사흘 동안 허리치료 요법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진통제 맞고 찍을 각오로 촬영을 했는데, 힘들었다. 얼굴이 심하게 부은 상태로 촬영을 했다.”

장태식은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가슴에는 눈을 부릅뜬 커다란 호랑이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동대문에서 산 티셔츠인데, 1974년생 호랑이띠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소룡이 1973년에 죽었는데, 어쩌면 자신이 전생에 이소룡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고 했다.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 등 이소룡이 남긴 4편의 영화는 각각 100번 이상씩을 봤다. 그가 꼽는 최고의 이소룡 영화는 ‘맹룡과강’ 엔딩신의 격투 장면이다.

“난 다음 세상에 태어나도 무술을 할 것이다. 이전 세상에서도 무술을 했을 것이다. 나에게 무술은 세상을 살아가는 수단이다. 매일 밥을 먹고 매일 잠을 자는 것처럼, 나는 매일 무술을 한다. 그것은 내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 내가 무술하는 사람이라는 걸 잊어버린다. 무술은 나의 운명이다.”



주간동아 2005.10.04 504호 (p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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