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8

2005.08.16

카멜레온 영애 씨 … 이젠 예쁜 연기파 배우

  • 입력2005-08-11 16: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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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멜레온 영애 씨 …  이젠 예쁜 연기파 배우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추운 겨울날, 13년 형기를 마친 이금자가 교도소 문을 나온다. 여름에 수감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물방울무늬의 얇은 원피스를 입고 있다. 금자를 맞이하는 사람은, 수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다 ‘친절한 금자씨’라는 별명의 그녀를 알게 된 전도사. 그는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 성가대까지 동원해 금자의 출소를 환영하며 두부를 내밀지만, 금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너나 잘하세요”라고 내뱉으며 두부를 땅에 던져버린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이 첫 장면은 친절한 금자의 이중적 모습, 교도소를 나온 그녀는 더 이상 친절하지 않다는 것, 복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 친절한 금자씨의 또 다른 별명이 왜 ‘마녀 이금자’인지를 알려주지만, 동시에 영화 속의 금자는 우리가 알고 있던 이영애가 아님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렇다, 이영애는 변했다. 그것도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금자에게서 장금이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천재다. 산소 같은 여자에서 어떻게 이런 변신이 가능할까, 아무도 그녀가 이만큼 변신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대중 전체를 상대로 통쾌한 사기극을 벌인 것처럼 그녀는 요즘 유쾌하기만 하다. 더구나 62회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이 영화가 초청받았고, 여자 주인공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영화의 성격상 여우주연상 수상의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만히 앉아서 영화를 생각만 해도 빙긋빙긋 웃음이 나오는 이영애를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산소 같은 여자에서 마녀로의 놀라운 변신

    ‘친절한 금자씨’는 첫 주말 전국 146만명의 개봉 성적으로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의 뒤를 이어 역대 한국 영화 개봉 성적 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역시 박찬욱’이라고 감탄하는 사람들과 친절하지 않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숫자로 맞선다. 하지만 모두 동의하는 것은 이영애의 놀라운 연기 변신이다.



    “이 영화가 개봉되면 한 2년 동안은 영화 못 찍을지도 몰라요”라면서도 이영애가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예술성 있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고 싶은 욕망을 스스로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사상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의 금자는, 뛰어난 미모와 의도적인 친절, 그리고 차가운 복수와 잔혹한 내면이 공존하는 야누스적인 인물이다. 박찬욱 감독을 만났을 때 나는 왜 이영애를 캐스팅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박 감독은 이미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영애를 캐스팅했지만 실패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카멜레온 영애 씨 …  이젠 예쁜 연기파 배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와 ‘선물’, 드라마 ‘대장금’(위 왼쪽부터시계 방향으로)에서 다양한 역을 맡아 연기한 이영애. 금자 씨처럼 여전히 ‘그 마음속을 알기 어려운’ 배우다.

    판문점 초소 안에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에는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있다. 그것을 조사하는 제3자적 시점의 중립국 조사원 이영애는 스위스 장교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극적 사건 밑에 숨어 있는 판문점의 상흔이 결국 자신의 과거사와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흔들린다. 이영애는 미세하게 흔들리면서 파괴되는 조사원의 감정 상태를 섬세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우리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초소 안에서 닭싸움하며 놀던 남북의 병사들뿐이다. 이영애의 존재감은 없었다. 이는 그녀의 연기가 인상적이지 못했다는 증거며, 영화적 주제의 확산을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데 왜 박 감독은 다시 이영애를 캐스팅했을까? 그는 무엇보다 미모의 여자가 잔혹한 복수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는 극단적 대비효과를 위해 그녀를 떠올렸다고 했다. 또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의 연기력이 한 단계 발전했으며, 특히 다른 남자가 생겨 차갑게 유지태 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생글생글 웃으며 사랑을 시작해보자고 접근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녀가 너무나 얄미워, 유지태가 들고 있는 화분으로 이영애의 머리를 내리쳤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바로 그 대목에서 ‘친절한 금자씨’의 아이디어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 감독은 배우 이영애의 내면에 숨어 있는 어떤 사악함을 최대한 이끌어냈다. 그러니까 마녀 이금자의 모습은 이영애의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이영애다.

    상업적 성공의 정점에서 선택한 ‘금자씨’

    현대 도시 여성의 깔끔함, 그리고 부드럽고 상냥한 이영애의 외모 속에서 박 감독은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이영애의 전복적 이미지야말로 ‘친절한 금자씨’를 화제의 중심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영애의 기존 이미지를 모르고 이 영화를 보는 외국 관객들에게, 이영애의 연기는 어떤 무게로 다가갈까?

    ‘친절한 금자씨’의 후반부에 들어 있는 집단적 복수 시퀀스는 한국 영화에서 매우 낯선 부분이다. 금자는 자신을 유아 유괴살해범으로 만들어 교도소에 가게 한 진짜 악의 주역 백 선생에게 집단적 복수를 실행한다. 연출적으로도 부조리극의 한 장면 같은 실험이 행해지고 있지만, 이영애의 연기가 한계점에 도달하는 곳도 바로 이 지점이다. 탄력성 있고 울림 있는 연기로 고뇌의 흔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금자의 내면적 깊이가 드러나야 하는 이 후반부에서, 이영애는 지금까지의 전복된 이미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이영애가 등장하는 CF를 연결해 생각해보자. 아침에 눈 떠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우리의 일상을 표현한 그녀의 CF 모음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만큼 이영애의 대중적 호소력은 탁월하다. 그러나 15초의 CF 연기와 2시간의 장편 영화 리듬은 같지 않다. ‘대장금’의 성공으로 수많은 CF가 밀려들던 상업성의 정점에서 이영애는 ‘친절한 금자씨’를 택했다. 그것은 예술성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대장금’이 끝나갈 무렵, 보람도 있었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영화를 하게 되면 작가주의적인 영화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에게 저예산 독립영화라도 같이 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이영애는 그렇게 ‘친절한 금자씨’의 시나리오를 받았다.

    이영애는 ‘친절한 금자씨’로 자신의 연기 영역을 무섭게 확장시켰다.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이 더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래서 삶의 다양한 질곡을 경험한 울림 있는 연기를 보여줄 수 있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다. 20대 후반만 되면 예쁜 여배우들도 퇴물 취급을 받고 스크린에서 사라지던 때가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가 캐스팅의 최우선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산업의 스펙트럼이 확장되면서 내면적 깊이를 갖춘 배우들이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여배우들의 수명도 늘어나고 있다. 이미연과 김혜수, 전도연은 현재 한국 영화에서 가장 눈부신 활동을 보이는 배우들이다. ‘친절한 금자씨’는 그런 점에서 한국 영화의 변화를 증명하는 작품이 될 수 있다. 분명한 건, 다른 시도들이 어떠하든, 이영애는 성공했고, 이영애가 우리 곁에 머무는 시간은 훨씬 길어질 것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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