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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불편한 韓·日 관계 속 스타들에게 민감한 질문 … 말 한마디 실수했다 안티팬 공격 ‘몸살’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독도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영화사 직원 J씨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싶었다. 일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 개봉에 맞춰 내한한 주연배우 야기라 유야(15)의 기자회견장. 영화사는 사전에 몇몇 기자들의 의사를 타진해보고 ‘설마’ 열다섯 먹은 어린 배우에게 영화 내용과 전혀 관계 없는 한일 관계 질문을 하진 않을 것이란 내부 결론을 얻긴 했지만, ‘역시나’였다. J씨는 질문을 통역하지 않고 “배우가 어려서 독도 문제 자체를 모른다”고 ‘설명 반 사정 반’ 하여 아찔한 고비를 넘겼다.

‘일본 신사 참배 오보’로 가수 조영남 씨가 곤욕을 치르고 있지만, 독도와 교과서 문제로 한일 외교 갈등이 표면화한 된 전문가들도 해법이 엇갈리는 한일 외교관계를 ‘풀라’는 시험에 드는 연예인들은 조 씨나 야기라 군뿐이 아니다.

대표적인 한류 스타 배용준 씨는 새 영화 ‘외출’ 촬영 현장에서 ‘독도 시험문제’를 받고 “유감스럽다”고 답했다가 그 ‘진의’를 해석하려는 언론사들과 안티팬 및 팬들에게 혹독하게 시달렸다. 그는 이후 홈페이지에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라는 글을 올렸고, 언론매체들은 이를 국제재판소의 판결인 듯 대서특필했다.

배 씨의 매니저는 당시의 상황을 묻자 “‘독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입을 다물었다.



영화 얘기 없이 독도 문제만 부각

한 영화사 직원은 “영화계에선 이 일을 ‘외출 사태’라고 부른다. 촬영 현장에 기자와 팬들을 부르는 일은 영화사로서 오랫동안 엄청난 준비를 해온 큰 행사다. 그런데 영화 얘긴 안 나오고 독도 얘기만 시끌벅적하다. 인터넷엔 다 찍지도 않은 영화를 보네, 마네 하는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거 보고 ‘조심하자’며 서로 단속했다”고 말했다.

‘외출 사태’ 때문에 영화 ‘달콤한 인생’ 시사회에선 ‘영화와 관계없는 질문은 삼가달라’는 사회자의 특별한 부탁이 있었다. ‘달콤한 인생’에 한류 스타 이병헌이 나오는 데다 일본에 고가로 입도선매돼 많은 일본 기자들이 동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지운 감독은 ‘매’를 먼저 맞겠다는 작전인지, “어쨌든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선수를 쳤다. 김 감독은 일본의 산케이신문과 인터뷰하면서도 묻지도 않았는데 “일본은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대국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달콤한 인생’의 주연배우 이병헌 씨는 ‘독도는 한국 땅’이므로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구 제안도 거절하고 인기 프로그램 ‘스맵’ 출연도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확인 결과 이 씨 측은 “한 번도 일본 관련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일본 제안을 거절한 것은 영화 홍보에 도움이 안 돼서”라며 ‘오보’임을 강조했다.

한 한류 스타의 매니저는 “일본과 관련해서는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한다”며 “뭘 해도 초점이 한일 문제로 맞춰진다. 수많은 매체들이 따라다니며 돌발적으로 한일 문제를 물어보니 불안하기만 하다”고 털어놓았다.

일본의 영화매체에 한국 영화 기사를 써 보내는 스치다 마키 기자는 “한국 배우들이 일본에 영화 홍보하러 가서 일본을 나쁘게 말할 수도 없는 일 아니냐. 그러나 그들은 일본에서 말하는 게 한국에 ‘친일’적으로 전해질까 봐 전전긍긍한다”고 말한다.

“한일 관계를 묻는 건 한국인들이죠. 일본인들은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요. 일본에선 연예인들이 정치나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일도 극히 드물고, 설사 말한다 해도 자기 분야가 아니므로 크게 다뤄지지도 않습니다. 일본 고위관리들이 망언을 계속 하는 데다 한국인들에게 독도는 어떤 정신적 지주의 의미를 가지므로 민감하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단, 한국 언론이 그런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면서 작은 말들을 계속 문제 삼으려고 하는 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 관련 일거수일투족 주의보

한류 스타들의 입에서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명확한 답이 나올 것을 요구하고, 조영남 씨와 오보 당사자인 산케이신문의 해명에도 ‘퇴출’ 의지를 꺾지 않는 일반 관객들이나 누리꾼(네티즌)들과는 달리, ‘독도수호대’나 ‘민족문제연구소’처럼 일본 관리들의 망언과 친일 문제를 직접 비판하는 단체들은 한류 스타나 연예인들의 대(對)일본 발언에 ‘무심’한 반응이다.

독도수호대의 홍보담당자 김병구 씨는 “연예인들의 발언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나 지속성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고, ‘민족문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도 사견임을 전제로 “연예인들의 우발적인 발언보다 심각한 문제는 식자층을 파고드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조 씨는 다소 억울해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독립기념관 김삼웅 관장처럼 “조 씨의 생각은 일반 일본인들을 보고 느낀 낭만적이고 순진한 사고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대중 연예인이라도 국민 대다수의 감정을 훼손하면 곤란하다”는 주장이 주류이긴 하다.

모든 예술 작품은 사회·경제적 구조를 반영한다는 이론이 설득력을 얻고, 예술가 혹은 스타의 ‘천재성’에 대한 신화가 허구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대중 예술인들의 정치적·사회적 발언은 필수불가결한 예술적 행위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일제강점기에서 80년대 군사정권까지 예술가들의 발언은 통치 이데올로기의 찬양으로 이용됐을 뿐이었다. 그것은 예술인 스스로의 지위를 낮추고 대중의 불신을 받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젊은 예술가들의 정치적 발언, 혹은 일탈적 행위가 대중의 공감을 얻는 것은 낭만적·감정적인 호소일지라도 나름의 논리와 진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이상 연예인들로 하여금 ‘독도가 누구 땅이냐’고 무턱대고 묻는, 답이 뻔한 시험에 들게 할 이유가 없다. 소모적인 질문과 일회성의 대답은 그저 자위용일 뿐이다.

“일본 우파 언론의 왜곡 보도에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문제 삼아서 정식으로 항의할 수 있 었던 일을 우리끼리 와, 떠들고 있는데, 이 또한 우리가 말려든 게 아닌지 심하게 걱정된다”는 조영남 씨의 우려를 냉정하게 되새겨봄 직하다.





주간동아 2005.05.10 484호 (p56~57)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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